
초여름의 습지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기척이 곳곳에 남는다. 갯벌에 난 작은 발자국, 진흙 위에 떠오른 구멍, 바위 틈새를 비추는 붉은색 집게. 눈에 띌 듯 말 듯한 붉은발말똥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2일 안산시에 따르면 안산 갈대습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붉은발말똥게 500여 마리가 집단 서식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이 게는 한동안 수도권에서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이번 발견은 반가움을 넘어 생태 회복의 신호로도 해석되고 있다.
붉은발말똥게는 갑각의 길이가 약 30mm, 폭이 35mm 정도인 중간 크기의 게다. 껍질은 사각형이며, 등면이 볼록하고 가운데 홈이 깊다. 눈 뒤에는 작고 뾰족한 돌기 하나가 나 있고, 이마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손과 이마는 선명한 붉은빛을 띤다. 걷는다리에는 흑갈색의 거친 털이 숭숭하게 나 있으며, 집게다리에는 좁쌀 같은 과립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는 흙빛이지만 붉은 부위가 확연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풀밭·돌담 속에 숨은 생물… 자연을 기록하는 존재

붉은발말똥게는 바다에서 직접 살지 않는다.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 주변의 풀밭, 돌담, 언덕 등 육상 환경에 굴을 파고 살아간다.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는 그늘진 공간을 좋아하며, 물이 마르지 않는 진흙지형에서 안정적으로 서식한다. 이 게는 갯벌 주변에서 살아가지만, 실제 생활은 대부분 육지에서 이뤄진다.
서식 범위는 넓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하류 장항습지를 비롯해 전남 순천만, 가로림만, 경남 마산, 제주 해안 등에 드물게 서식한다. 대부분은 서해와 남해 하구 근처에 집중돼 있으며, 제주 해안의 숲과 습지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적으로는 일본,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사모아, 마다가스카르 등 태평양과 인도양 해안에 걸쳐 존재한다. 특히 동남아 맹그로브 해안에서도 일부 관찰된다.
알에서 성체까지, 붉은발말똥게의 성장 과정

붉은발말똥게는 육지에서 생활하지만, 짝짓기와 산란은 바닷가를 통해 이뤄진다. 8월에서 9월 사이, 알을 품은 암컷들이 자주 관찰된다. 이 시기 암컷은 몸에 수천 개의 알을 붙인 채 얕은 바다로 이동해 알을 흘려보낸다. 이 알은 부화하면서 ‘조에아’라는 유생 단계를 거친다.
조에아 유생은 머리 가까운 등면에 가시 하나가 솟아 있고, 가슴에는 수영을 위한 부속지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스스로 헤엄칠 수 있으며, 물속을 떠다니는 플랑크톤 형태로 살아간다. 이후 몇 차례 탈피를 거쳐 메갈로파 단계로 진화하며, 이때부터는 어른 게와 비슷한 모습을 띤다. 메갈로파는 바닥에 정착해 본격적인 저서 생활을 시작하며 육지로 향하게 된다.
이처럼 붉은발말똥게는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한살이를 이어간다. 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산란 시기나 이동 경로 등은 연구되지 않았다. 개체 수 자체가 적고, 야외에서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저서무척추동물이라는 특성도 연구를 어렵게 만든다.
말똥게, 도둑게와는 어떻게 다를까

붉은발말똥게는 이름만큼이나 다른 말똥게류와 닮아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말똥게와 도둑게가 있다. 말똥게는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며, 다리에 긴 털이 있고 껍질이 울퉁불퉁하다. 붉은발말똥게와는 외형상 구분이 쉽지만, 같은 사각게과에 속해 생활 방식은 유사하다.
도둑게는 색상이 붉고 육지 깊은 곳까지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사람 사는 부엌에도 나타난 사례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도둑게는 집게발이 매끄럽고 돌기가 거의 없으며, 붉은발말똥게처럼 선명한 붉은색을 띠지 않는다. 무엇보다 붉은발말똥게는 기수역 중심의 하천과 연안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며, 손·이마의 색상이 또렷하다.
사라졌던 이름, 다시 기록되는 자연

붉은발말똥게는 말똥 냄새가 나는 게류 가운데 다리가 붉은 특징에서 이름이 붙었다. 집게발은 물론 몸 전체가 대체로 붉은 빛을 띤다. 환경부는 2016년 4월, 붉은발말똥게를 ‘이달의 해양생물’로 지정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이 게를 발견하기 어려웠고, 생태도 거의 연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실내에서 붉은발말똥게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하며 연구 기반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 상태에서 관찰은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일부 복원과 증식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 붉은발말똥게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번 안산 갈대습지에서의 집단 서식 확인은 단순한 개체 수 발견이 아니다. 갯벌과 하천이 맞닿는 습지의 생태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복잡하지 않은 생물 같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생태 연결망이 얽혀 있다. 붉은발말똥게의 붉은 손은 사라진 자연을 향한 미약한 신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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