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기아 대리점 방문기
기아, 올해 사우디서 5만대 판매 돌파 예정… 9년 만
EV5 시작으로 전기차 투입 공세… 선두 토요타 ‘추격’
불이라도 날 듯 강하게 내리 쬐는 햇볕 아래, 달궈진 모래 사막이 펼쳐지는 이 곳은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온 몸에 흰 천을 두르고 머리에는 빨간색 두건과 검은 링을 쓴 낯선 이들이 위화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사막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금방 반가움이 솟는다. 한국에서 지겹도록 봐온 현대차·기아의 차량들이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내달리는 모습을 꽤 자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차량 5대 중 2대는 현대차·기아의 모델이다. 사우디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토요타(28%)에 이어 현대차(15%), 기아(8%)는 나란히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사우디 시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브랜드는 기아다. 사우디에서 전년 대비 판매량이 30% 이상 확대되는 등 ‘초고속 성장’을 이뤄내고 있어서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판매량이 1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 위치한 기아 대리점인 ‘NMC 기아’에서는 판매 확대 비결과 앞으로의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기아는 2015년 이후 9년 만에 연간 5만대 판매 돌파를 앞두고 있다.
NMC 기아는 사우디에서 기아 브랜드의 차를 단독으로 판매하는 딜러사다. 지난 2021년 설립돼 12개의 기아 애프터서비스(A/S) 센터, 13개의 쇼룸을 보유하고 있다. 타 브랜드 차량은 취급하지 않으며, 사우디 내 7개 행정 지역에서 기아 차량을 독점 공급한다.
이날 방문한 ‘NMC 기아 제다-킹 압둘 아지즈 로드 쇼룸’은 제다 국제 공항에서 홍해를 따라 알 안달루스 지역까지 연결하는 왕복 14차선 대로인 킹 압둘 아지즈 로드에서 커다란 덩치로 우뚝서서 ‘기아’를 몸소 알리고 있었다. 이 쇼룸은 사우디 제다에선 최고의 대리점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넓은 실내를 가득 채운 다양한 차종과 특별한 출고 방식이다. 건물 전면은 밖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이 기아의 차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통유리로 이뤄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연기관,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풀하이브리드 등 기아의 ‘모든’ 라인업이 방문자를 반겼는데, 총 24종의 차가 전시됐다고 한다. 주요 차종만 전시한 후 카달로그를 통해 차를 봐야하는 한국의 대리점과는 규모부터 다르다.
차량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은 대리점 직원들의 자부심이다. NMC 기아 사우디 전 지점 어디에서든 차량을 구매하면, 고객들은 2~3개월 후 ‘딜리버리 센터’를 통해 차를 출고 받는다. 고객들은 이 곳에서 직원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 차를 수령해갈 수 있는데, 토요타 등 경쟁사와 비교해 가장 차별화된 점이기도 하다. 구매, 계약 과정, 출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압둘라 알람 NMC 기아 프로덕트 매니저는 “기아의 차를 구매한 고객들은 특별한 경험을 한다”며 “쇼룸이 아니라 특별히 마련된 배송센터에서 초콜릿을 먹으며 황홀한 경험을 하게된다. 구매 후 쇼룸 뒤편에서 차를 수령하는 다른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NMC 기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은 놀랍게도 SUV다. 세단이 45%를 차지하는 사우디 자동차 시장에서 SUV로 판매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K3, K5 등 세단 모델도 잘 팔리지만, 올해 3분기까지 기아의 사우디 판매 상위 3개 차종은 소형 SUV인 페가스(1만 3000여대), 셀토스(7000여대), K5(4000여대) 순으로 나타났다. 소형 SUV가 3종 중 2종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날 방문한 제다 쇼룸의 인기 차종 역시 셀토스와 쏘넷이었다. 기아 쏘넷 역시 페가스와 함께 현지에서 잘 팔리는 대표적인 소형 SUV 모델이다. 점점 늘어가는 여성 운전자와 젊어진 소비자 층을 대거 흡수한 결과다. 올해 기아 차량을 구매한 여성 소비자는 전체의 38.8%를 차지했으며, 연령대는 20대 이하 구매 고객이 31.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알람 매니저는 “사우디에서 판매하는 기아 차량 중 약 15%가 셀토스, 약 10%가 쏘넷이다. 셀토스와 쏘넷 중 90%는 여성 운전자”라며 “젊은 여성들은 크기는 작지만 세단보다 SUV가 더욱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매장의 경우 여성들의 방문 빈도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우디에서의 전략도 전시장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시장 전면 가장 왼편에 전기차 모델인 EV5가 꽤 넓은 면적을 홀로 차지하고 당당하게 서있었기 때문이다. EV5는 올해 11월부터 사우디 시장에 판매되는 모델로, 기아가 사우디에서 처음으로 출시하는 전기차다. 지난해 중국 시장 전략 모델로 공개됐던 EV5를 사우디에서도 전략모델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NMC 기아 관계자는 “EV5가 이미 들어왔고 현재 정부 문서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곧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며, EV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크다”며 “도로에서 EV 차량이 흔하지 않지만, 기아가 전동화 드라이브를 걸면서 인식이 높아졌다. 실제 판매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EV 기술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체험해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기아는 사우디에서의 향후 시장 전략을 ‘전기차 시장 리더’로 잡은 듯 했다. 올해 EV5를 시작으로 전기차를 향후 11종까지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중동에서 26만대의 차량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토요타에 없는 ‘전기차’ 카드로 중동 시장에서 선두를 잡겠다는 복안이 읽힌다.
사우디 정부의 지원도 든든한 지원군이 될 예정이다. 산유국으로서 오랜기간 내연기관으로 국가 경제를 유지해왔지만, 친환경에 대한 전세계적 흐름이 거세지는 만큼 전기차 전환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사우디는 그간 수입에 의존했던 내연기관 시대와 달리 오는 2030년까지 연간 전기차 50만대를 생산하는 생산 허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아 관계자는 “중동 고객 선호도를 고려한 전략형 모델을 개발해 볼륨 모델로 육성하고, EV 전용 마케팅 및 쇼룸 전개 및 EV 서비스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고객이 전기차를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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