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버킷리스트] “그동안 고생했다”란 듣고 싶던 한마디
…하늘이 보여준 10분 간의 ‘빛’사위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아침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이 책장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알람 소리를 한껏 시끄럽게 바꿨다. 별무소용이다. 마음이 닫히니 귀도 닫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까스로 욕실로 몸을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대차게 찬물로 온몸을 내리쳤다. 잠시 놀랐다. 그뿐이다. 정상 체온으로 회복하려는 몸의 신호만이 전해졌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누군가는 무기력증이라고 하는 증상이 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싶었다. 매일같이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찬바람이 거세던 어느 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단 일상에서의 탈출은 성공이다. 하지만 그냥 여행이 아닌, 일로 가는 여정이기에 몸과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목적지는 밴쿠버. 대략 열 시간 가까이를 꼼지락하지 않았다. 기내식도 먹는 둥 마는 둥 눈을 감은 채 음악만 들었다. 밴쿠버 날씨는 잔뜩 흐림이다. 마치 내 요즘 기분 같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종 목적지인 옐로나이프(Yellowknife)에 가기 위해서다. 3시간가량을 북동쪽으로 날았다. 원래 2시간 30분이면 닿는데, 날씨가 좋지 않다는 안내가 뒤따랐다. 활주로 양끝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북극과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인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하 27℃. 공항을 나서자마자 맞는 매서운 칼바람에 옷깃을 최대한 여몄다.
“이곳에서는 일 년에 240일 동안 오로라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3박을 머무를 예정인 만큼 95% 행운이 깃들테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가이드는 거침없을 정도로 오로라 관측을 장담했다. “물론 3박 내내 못보고 돌아간 분들도 있어요.” 한국인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 사람 말도 끝까지 들어야 했다. 실제로 주간 날씨 예보는 흐림과 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설마 5%에 내가?”라는 뜻 모를 자신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첫날 오로라 헌팅에 나섰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아주 희미한 청록빛 빛줄기를 본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조상이 도와야 볼 수 있다는 오로라를 추억에 담을 수 있을까. 5%의 불운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담감에 첫날밤을 뒤척이며 보냈다.
둘째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젖혔다. 밤새 눈이 내린 모양이다. 큰 삽을 앞에 단 제설트럭 두 대가 마주보며 도로를 지나갔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로라를 보기는 무리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앞섰다. 시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중심부에 있는 오로라 빌리지를 들렸다. 그날의 오로라 관측 확률부터 오로라 헌팅업체 알선 및 관광 정보 안내까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무리의 대화가 귀에 꽂혔다. 대만·홍콩인들이 주축인 한 팀은 우리처럼 어젯밤 오로라 관측을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에 브라질에서 왔다는 이들은 오로라를 봤다며 서로 자신이 찍은 것을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다. 오로라를 봤다는 이가 있는 만큼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
주간 일정은 개 썰매 타기. 12마리의 썰매 개가 뛰기를 간청(?)하듯 앞 두발을 연신 들어올렸다. 입에서 나오는 뽀얀 입김이 증기기관차의 연기처럼 뿜어졌다. 썰매 운전사의 신호가 떨어지자 썰매 개 모두 일제히 땅을 내딛었다. 그들이 달리는 설원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방불케 했다.
검은 것은 나무요, 흰 것은 눈이었다. 온 세상이 하얀 눈의 세상을 썰매 위에 앉아 내달리다 보니 흙빛 일상이 서서히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열렬히 힘쓴 썰매 개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교차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꽤 많은 이들이 오로라 스테이션에 모여들었다. 가이드 역시 분주했다. 오로라가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 연신 스마트폰 앱과 자신의 경험치를 결합해 확인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날씨가 관건이었다. 예보대로 구름이 짙게 퍼져 있다. 결국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무기력증 보유자의 능력치를 여기서 발휘했다. 한 마디로 널브러졌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넘어서던 그때, 어디선가 환호성이 들려왔다. 무릎 반사하듯 그곳을 향해 뛰었다. 고개를 꺾을 필요도 없었다. 정면 하늘에 에메랄드빛 빛줄기가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모양을 바꿔 구불구불 알파벳 소문자 m을 연상케 하더니, 어느새 가로세로 형태의 분수 물줄기마냥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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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주영 여행+ 기자
사실 눈으로는 오로라를 담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우와!”만 되풀이했다. 어떤 말로도 그 현장의 감동을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청록빛 오로라 한 줄기, 한 줄기는 어느새 “기다려줘 고맙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듯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자연이 어루만지는 진심어린 위로에 눈물마저 ‘핑’ 돌았다. 오로라는 쉼 없이 모습을 변신했다. 마치 춤사위 한판을 벌이는 듯 했다. 사진에 담는 족족 다른 모습이 찍힐 정도였다. 그렇게 오로라 축제는 10여분 만에 끝났다. 아주 옅은 빛만이 아쉬운 여운을 전했다.
셋째 날은 오로라 관측 실패였다. 둘째 날 누린 행운 덕에 결국 95%의 확률 성공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달라진 나를 마주했다. 생기가 넘쳤다. 생면부지 옆 사람에게 오로라 관측 무용담을 털어놓자 부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친 일상의 특효약은 역시나 여행만한 것이 없다. 거기에 오로라같은 너른 품의 존재가 함께한다면 천군만마, 금상첨화일테다.
▶▶▶ 옐로나이프 100배 즐기는 법
1. 2025년은 11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태양활동 극대기라 강렬하고 밝은 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매년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오로라 관찰 최적기다.
2. 매우 추운 지역답게 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금세 닳는다. 때문에 대용량 보조배터리와 충전선은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3. 옐로나이프까지는 직항 편이 없어 밴쿠버나 캘거리, 에드먼튼 등을 경유해야 한다. 2개 도시 이상을 여행하기 용이한 만큼 미리 여행정보를 준비해두면 좋다.
옐로나이프(캐나다) =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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