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행 만월산 약사사(藥師寺) 인천절

산행을 종종 다니는 덕에 인천에 만월산이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올라본 산이 아니었기에 그곳에 약사사라는 사찰이 있음도 몰랐었습니다. 그러던 중 항상 다니던 인천여행 코스 이외의 곳을 찾아보던 중 알게 된 인천절 약사사를 처음으로 방문해 봤습니다. 덕분에 알기만 하던 만월산 산기슭도 다녀오게 된 인천여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약사사

인천광역시 남동구 풀무로 48

만월산은 그리 높지도 크기도 않은 산이지만 평지가 많은 인천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산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만월산에 산기슭에 자리한 인천절 약사사는 1932년 한능해(韓凌海)가 오래전 절터에 약사암을 짓고 수행을 시작함으로써 시작된 최근에 생겨난 절이다.

물론, 그 기원을 찾아보면 더 오래된 역사를 지닌 사찰이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지만 그건 과거일 뿐.

일제강점기 시작인 1932년 약사암으로 시작된 약사사(藥師寺)는 1959년에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용궁당 등을 신축했다.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 각각의 전각에 대해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칠성각(七星閣)

무병장수, 소원성취, 자녀의 복된 성장, 안녕과 태평 등을 관장하는 칠성신(七星神)을 봉안한다.

칠성여래불(七星如來佛) 또는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이라고도 부르며 불교의 칠성여래불과 도교의 칠성신이 우리의 민속신앙과 습합되어 굳혀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12세기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노무편(老巫篇)의 시문에서 칠성이 무신(巫神)임을 찾아볼 수 있고, 6세기 신라 김유신의 탄생에 대하여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칠요(七曜)의 정기를 타고 났으므로” 등의 기록으로 볼 때 본래 우리의 무속신앙 가운데 칠성신이 있었으며, 이와 흡사한 외래 신앙이 들어오면서 이들과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산신각(山神閣)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르는 산신각은 불교가 도래하기 이전의 토착신으로 도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고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정성 딱 들어맞는다 하겠다.

이후 불교가 들어오며 습합되어 현재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산왕대신 또는 산령대신으로도 부르나 그냥 산신으로 대표되는 이 신은 인간의 행운과 복됨, 장수, 부귀영화 등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독성각(獨聖閣)

독성을 모시는 전각으로 독성은 석가모니의 십육나한 중 제1존자를 이르는 말이다.

독성을 모시는 신앙은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이라 하겠고 부처나 보살이 아닌 독성(나반존자)에게 기도를 올리는 건 성취가 빨리 이뤄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독성은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친 독각의 성자를 이르는 말인데 어떻게 십육나한 중 제1존자와 연계된 것인지는 자료를 찾아봐도 모르겠다.

화엄회관 건물을 먼저 만나게 된다.

전통사찰의 경우라면 법당이 위치하기에는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라 생각되지만 전각이 포함된 다용도 건물이랄까? 지하부터 살펴보면 공양실(지하), 화엄회관 사무국(1층), 화엄법당(2층), 정토원(3층), 영산전(4층)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인천절 약사사의 주차장은 하나로 되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는 아마도 초기에 비해 사세가 확장되면 필요에 따라 주차장을 계속 이어 짓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창건자인 한능해는1959년 미륵불을 봉안한 뒤 약사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66년 한능해는 화엄종을 창종하고 종정에 취임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하늘, 인간 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을 의미하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이라 부르고 다르게는 명부전(冥府殿)이라 부른다. 또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다 하여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실 때 명부전에서 재를 모시는 이유는,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환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현대 사찰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곳 인천절 약사사 역시 불교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함에 적극적이란 생각이 든다. 불교인들 역시 사람이기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며 지옥에 가지 않도록 자비를 구하는 것일 텐데 그러기 위해서 사찰에서는 기업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서비스를 하듯 유효적절한 것을 마련해 줘야 신도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인천절 약사사를 돌아보며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할까?

약사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에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대웅전(大雄殿)을 격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극락전(極樂殿)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무량수불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부르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셨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無量光), 수명 또한 한량없어 백천억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無量壽)라는 말에서 무량수전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대웅전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전각으로 손꼽히며 극락전을 높여 극락보전이라 부르기도 하며 아미타불을 모셨기에 아미타전 또는 미타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위에서 인천절 약사사가 창립된 1932년을 언급할 때 옛 절 터를 이야기했는데 그 기원을 살펴보면 성종 12년인 1481년 이전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481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약사사에 대한 기록이 있었기에 확인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정조 23녀인 1799에 편찬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나와 있고 사찰명도 주안사 또는 주병사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절터만 같을 뿐이지 같은 사찰의 명맥을 잇고 있다 말할 수는 없다.

전통사찰 전각과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어우러진 인천절 약사사는 중생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전달하는지…

모든 종교가 다 이로운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기를 바랄 뿐이며

도심지 사찰이라 말할 수 있는 약사사가 그러한 길의 선두에 서 있기를…

타종을 함에 있어 별도의 제약은 없다.

가장 아름답고 간절하게 종이 울릴 수 있도록 하면 될 듯.

인천여행 길에 만나는 종소리?

만월산자락에서 바라보는 도심지 아파트.

생각지도 않게 만월산이란 곳에 와보게 된 듯.

다음엔 산행을 포함해 약사사를 다시 방문해 봐야겠다.

다음의 인천여행은 산행과 함께할 거라는.

괜한 흥미로움 뽈뽈~

소원이란 무엇일까?

한자 그대로 읽자면 원하는 바, 바라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 등이라고 하면 되려나?

다르게는 소원에 대한 갈망이 넘쳐나면 과한 욕구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하니 소원하는 바가 넘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저 소소하게 소원하는 바기 이뤄지도록 간절한 기도 선에서 멈추는 게 아름다운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소원지를 매달아 놓고 갔다.

이렇게 매달아 놓으면 소원이 이뤄지려나?

아마도 소원지를 달아놓고 그리되려고 노력하겠지.

그래야 이뤄짐을 알 테니.

소원을 빌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곳을 걷고 또 걷고…

사찰 기행을 와서 엄한 생각으로 삑 ~

다니다 만난 미륵불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뒤 출현하게 될 부처님이라 한다. 그때가 되면 세상은 유리와 같이 평탄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인다고 하며 인간의 수명은 8만 4,000년이나 된다고…

다 좋은데 산이 없어지네 그럼.

그거 맴이 별로구만.

작은 사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넓은 것 같다.

인천여행을 계획하며 잠시 들른다 마음먹었던 만월산기슭의 인천절 약사사.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듯한 천태각.

빙글 돌아 계단을 따라 만월산기슭을 내려간다.

산행은 아니지만 산행처럼 느껴지는 인천여행.

기력이 딸려서 그러는지도…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 덕분에 나뭇잎이 더 싱그럽다.

인천절 약사사 입구에서 만난 무궁화.

비 맞은 무궁화의 색이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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