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운 날씨에 지쳐 모든 의욕이 저하됐다면 때가 온 거다. 쉬어 갈 때 말이다. 한국관광공사는 8월 추천 가볼 만한 여행지 테마를 ’시원한 여름나기‘로 정했다. 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전시관 지붕 아래에서 나만의 인문학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원한 실내 여행지를 소개한다.
# 돌사람의 귀향, 서울 우리옛돌박물관
위치 :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2015년 설립한 우리옛돌박물관은 즉 우리나라 석조유물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만들어졌다. 세계 유일의 석조유물 전문박물관으로 처음엔 2000년 경기도 용인에서 시작했다. 세중옛돌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으나 석조유물을 비롯해 자수 등 다양한 유물을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2015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으로 자리로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성북동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북악산 부근에 위치해 거대한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북동은 수려하고 쾌적한 자연경관 덕분에 오랜 세월 여러 문화예술인이 교류하고 거주해온 곳이다. 한용운, 정지용, 염상섭, 조지훈 등 저명한 문인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성북동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전체 부지면적 1만4000㎡에 달한다. 너른 공간에 석조유물 1250여 점을 전시했다. 천신일 재단법인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의 노력 아래 국내외로 흩어진 한국 석조유물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우리옛돌박물관은 규방 문화의 결정체인 전통 자수작품과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작가의 회화작품도 함께 전시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변 여행지로는 만해 한용운의 얼이 서린 ’심우장‘, 1998년 문을 연 전통 찻집 ’수연산방(壽硯山房)‘이 있다. 수연산방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상허 이태준의 고택이었다. 이태준 작가가 1946년 무렵 월북 전까지 살던 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올해 3월 개관한 성북근현대문학관을 추천한다.
# 산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곳, 국립산악박물관
위치 : 강원 속초시 노학동
국립산악박물관은 산림청이 설립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산악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 관람은 맨 꼭대기인 4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내려가는 동선이 좋다. 4층 야외 하늘정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왼쪽으로 설악의 대청봉과 중청봉, 소청봉이, 오른쪽은 미시령과 신선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나 겨울철 얼음이 얼면 토왕성 폭포의 모습도 눈에 잘 띈다.
3층은 우리나라와 세계 등반 역사에 관한 전시가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랐던 순간을 재현한 조형물, 실제 등정에 사용했던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산악인물실로 걸음을 옮기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름을 알린 산악인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2층은 관람객이 산에 관련한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가장 흥미를 끄는 공간은 고산 체험실. 해발 3000m와 5000m의 온도와 산소량을 구현해 고산의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자칫 위험할 수 있어 기압은 구현하지 않았다고. 3000m는 그리스 올림푸스산(2917m), 5000m는 유럽의 몽블랑산(4805m)이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산의 마웬지봉(5419m)과 비슷한 환경이다.
산악자율체험실에서는 클라이밍 경기 중 하나인 볼더링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볼더링은 암벽에서 수직이 아닌 옆으로 이동하는 종목이다. 4개의 난이도로 이루어진 구간마다 번호와 이동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가 표기되어 있어 스스로 난이도를 조절해 즐길 수 있다.
주변 여행지로는 속초시립박물관, 부엉이박물관 ’해피아울하우스‘ 그리고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이 있다. 부엉이박물관 해피아울하우스는 정희옥 작가가 만들고 수집한 작품을 모아 놓은 공간으로 부엉이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건물 외관부터 재밌다.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은 조각가 김명숙 부부가 설립한 현대 조각 전문미술관이다. 돌의 정원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울산바위와 어우러진 풍경이 압권이다. 관람 후 어른 입장권을 가지고 카페에 들르면 무료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 철수야, 바둑아 놀자! 세종 미래엔교과서박물관
위치 : 세종 연동면 청연로
미래엔교과서박물관은 교과서 변천사를 통해 우리 교육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국내 유일의 ‘교과서박물관’인 이곳에서는 서당에서 사용하던 서적부터 개화기, 미 군정기, 1~7차 교육과정기까지의 교과서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월인천강지곡(국보)’ 영인본. 세종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직접 지은 불교 찬가로, 훈민정음 창제 직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 활자본이다. ‘용비어천가’와 함께 가장 오래된 국문 시가로 평가된다. 본래 상중하 3권이었으나 현재는 권상과 일부 낙장만 전해지고 있어 희소성이 높은 문헌이니 주의 깊게 바라보자.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1월 조선어학회에서 편찬한 한글 입문 교본인 ‘한글 첫걸음’ 역시 귀중한 자료다. 1970년대는 한글 전용으로 바뀌었고, 1975년부터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등 정책마다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뿐 아니라 미국·영국·프랑스·체코·튀니지 등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교과서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북한 교과서도 있다.
1960년대의 교실 풍경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과 교복의 변천사 전시는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1층 교과서 전시실을 지나 복도를 따라가면 인쇄 기계 전시실이 나온다. 근대 인쇄 기계의 발달사를 한눈에 확인할 장소다. 자모 조각기부터, 활판 인쇄기, 활판 교정기 등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실제 교과서 인쇄에 사용된 기계 30여 종을 만날 수 있다.
연계 관광지로는 국립어린이박물관, 베어트리파크 그리고 조치원문화정원이 있다. 2023년 12월 문을 연 국립어린이박물관에는 도시·건축·디자인·지구 등 체험전시가 가득하다. 베어트리파크는 송파(松波) 이재연 설립자가 ‘일구는 즐거움’으로 50여 년 가꾼 비밀의 정원이다. 도시재생의 대표사업으로 꼽히는 조치원문화정원은 2013년 정수시설 운영 중지 이후 줄곧 방치되어오던 조치원 옛정수장과 평리 근린공원을 활용해 재탄생한 복합문화공간이다. 1935년에 지어진 조치원정수장 자리에 오픈한 ‘방랑싸롱’ 카페는 세종의 핫플레이스로도 꼽힌다.
# 포항은 오감철철 스틸아트 천국, 포항시립미술관
위치 :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은 산업도시에서 매력적인 예술의 도시로 변신했다. 도시 곳곳 철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들이 수두룩하고, 스틸아트페스티벌도 해마다 연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스틸아트 미술관도 있다.
2009년에 개관한 포항시립미술관은 경북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시민이 감동하는, 작지만 차별화된 세계적인 미술관’을 목표로 개관했다. 바다를 닮은 푸른빛의 외관에서 시원함이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오면 콘크리트와 목재가 어우러진 인테리어와 통창으로 쏟아지는 빛 설계가 예사롭지 않다. 1층 제1전시실은 스틸을 테마로 한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주 무대다. 2층 전시실로 걸음을 옮기면 장두건 미술상 수상 작가의 전시가 기다린다.
포항시립미술관에는 ‘초헌 장두건관’이라는 특별한 전시실이 있다. 초헌 장두건 화백은 한국 구상회화 영역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고, 포항 미술문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장두건관으로 들어서면 푸른 벽이 장두건 화백의 그림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포항시립미술관은 지역 차세대 미술가들을 등용하고 포항 미술문화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해마다 장두건미술상을 운영한다. 지금까지 고집해온 영남청년작가전도 포항이 예술의 도시로 성장해온 이유 중 하나다.
스틸아트의 백미는 스페이스워크다. 야외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발길은 포항의 명물로 떠오른 스페이스워크로 이어진다. 거대한 철제 작품은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처럼 아찔하다. 한 발 한 발 트랙을 올라가면 울창한 숲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은 구름 속을 걷는 듯 스릴이 넘친다.
지붕 없는 미술관은 포항 도심 곳곳으로 이어진다. 가까운 영일대해수욕장은 또 하나의 ‘스틸아트의 천국’이다. 해변을 따라 수준 높은 철제 조각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포항의 대표 축제로 꼽히는 ‘스틸아트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작품들이다. 포항 최고의 예술작품은 바다다. 호미반도 해안선을 따라 걷는 호미반도해안둘레길은 탁 트인 바다와 신비로운 기암들이 절경이다.푸른 바다를 눈으로만 담기 아쉽다면 창바우어촌체험휴양마을로 발길을 돌려보자. 깨끗한 백사장은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고둥잡기체험, 투명카누타기, 통발체험 등 시원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한류의 샘이 깊은 물,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위치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뿌리깊은 나무’는 한창기가 발행한 잡지로 정기구독자만 무려 6만 5000명에 달했던 잡지계의 전설로 통한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부터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기까지 5년 남짓 발간됐다. 우리나라 최초 순수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선언한 잡지였다. 발행인 한창기는 창간사에서 ‘우리 문화의 바탕이 토박이 문화’라며,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겠다 말했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낙안읍성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다. 한창기의 유물 6500여 점을 중심으로 꾸렸다. 일상에 가까운 옛 물건이 많다. 한창기실은 옛 집무실을 재현하고, 옷가지와 생활용품, 친필 원고 등의 유품들을 전시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뿌리깊은 나무’ 전권.
한창기실에서 지하로 내려서면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나타난다. 상설전시실은 그가 수집한 유물 6500여 점 가운데 600여 점을 전시한다.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백자청화매죽문필통 등 희소 유물에서 일반 서민이 쓰던 소반이나 책장, 고무신, 한글 소설까지 다채롭다. 첫 방문이라면 조선 시대 한글 편지를 눈여겨볼 일이다.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가 정경부인 김 씨에게 보낸 편지, 사촌 동생이 형님에게 보낸 편지 등이다. 시누이가 아우의 변비를 걱정하며 도토리를 쑤어 꿀에 타 먹으라 권하는 편지는 잔잔한 미소를 자아낸다.
박물관 건물 맞은편에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간문화재) 백경 김무규의 고택 수오당이 자리한다. 수오당은 영화 ‘서편제’에 등장했는데 영화에서 백경 김구뮤가 실제로 거문고를 연주했다. 순천의 다른 여행지를 같이 돌아보고 싶을 때는 순천시 관광지 통합입장권을 구매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습지, 낙안읍성, 드라마촬영장,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자연휴양림 등 6개소를 1박 2일 동안 돌아볼 수 있는 관람권이 1만 2000원이다.
순천 나이트 가든 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이색 피서법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시크릿어드벤처와 정원드림호 수상 퍼레이드를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짱뚱어, 칠게 등 순천만국가정원을 상징하는 8척의 캐릭터 배가 밤의 물길을 누빈다. 스페이스 브릿지의 환상적인 야경 또한 배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정리=홍지연 여행+ 기자
자료 및 사진=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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