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 5만 년 전 운석 충돌해 만들어진 분지 마을, 직접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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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운석충돌구, 적중초계 분지

5만 년 전 직경 200m 운석 충돌

지름 7㎞가 넘는 분지 형성

우리 마을은 5만 년 전 별똥별이 떨어진 곳이랍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몰랐다. 대대로 지켜온 고향 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가 될 줄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별똥별 떨어진 마을’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높이 200~600m 봉우리에 굽이굽이 둘러싸여 마치 왕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합천 적중-초계 분지(이하 초계분지)다.

초계분지는 동서로 약 8㎞, 남북으로 약 5㎞ 규모의 ‘운석충돌구’다. 5만 년 전 직경 최소 200m에 달하는 운석이 떨어졌고 그 여파로 땅이 움푹 파여 분지가 됐다. 감히 가늠도 안 되는 기나긴 시간을 보내면서 운석충돌구는 호수로 변했다가 전답이 되었다가 하는 등 본모습을 감추고 짐짓 평범한 척 위장을 했다. 여느 분지처럼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졌겠거니 그 누구도 태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5만 년이 흘러 밝혀진 ‘출생의 비밀’을 들으러 직접 합천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 운석충돌구로 밝혀진 이곳

합천 운석충돌구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2020년 12월이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 연구팀은 같은 해 1월부터 초계분지 현장 조사·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초계분지가 ‘한반도 최초 운석충돌구’로 인정받게 됐다. 연구팀은 분지 땅을 142m까지 파내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약 5만 년 전에 운석 충돌로 인해 분지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초계분지는 중국 슈엔 운석충돌구(2010년 발표)에 이어 동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공식 인증된 운석충돌구로 이름을 올렸다.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에 맞아 형성된 지형이 오롯이 남아있어요.

대암산에 올라가면 그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니까.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

소식을 전한 건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였다. 국내 오지 여행 전문가인 이 대표는 운석충돌구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답사를 진행했다.

24번국도를 타고 초계면으로 접어들자 ‘합천운석충돌구의 고장 초계면’이라고 적힌 커다란 조형물이 보였다. 이 대표는 몇 달 전만 해도 없던 것이라고 했다. 합천군은 초계면과 적중면 일대를 ‘합천운석충돌구 지질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 관광자원 기초조사와 지질공원 활성화 방안에 대한 용역 보고서를 완성했다.

운석충돌구 세계지질 테마공원 조성은 합천군수는 물론 경남도지사의 선거 공약에서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지역 정책 과제로도 선정됐다. 앞으로 초계면 일대가 어떻게 바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마을 안은 그저 평범했다. 논과 밭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군데군데 농사용 저수지가 보였다.

면사무소가 있는 초계리도 평범했다. 우체국과 마을회관, 지구대, 시장, 초·중·고등학교가 모여있고 산내천을 따라 공원이 펼쳐지는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다. 특이한 건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보인다는 것. 험하지 않은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져 동그랗게 감싸 안은 품에 집과 논밭이 들어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계리의 한 다방에서 마을 해설을 하는 권정석씨를 만났다. “지금 합천에서 운석과 관련한 상표등록이 늘고 있어요. 한 식당에서 ‘운석 짜장’ ‘운석 짬뽕’으로 상표등록을 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초계면 토박이라는 권정석 해설가가 말했다. 한국국학진흥원 근대기록문화조사원으로도 활동 중인 권정석 해설가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운석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준비 중이다.

100여 년 전 별똥별이 떨어진 마을은 면이 아닌 ‘초계군’이었다. 1914년 합천군으로 통합되면서 면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현청이 있던 곳으로 그 규모가 꽤 컸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초계 변씨가 바로 이곳 출신이다. 초계는 이밖에도 이순신과 인연이 깊다. 여동생도 초계 변씨에게 시집을 갔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할 때도 초계를 거쳤다.

초계면으로 바뀌고서도 얼마간은 규모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 어릴 적에만 하더라도 하번 동부권의 중심이 바로 초계면이었어요. 시장도 크고 우시장이랑 도축장도 있었어요. 국민학교 졸업생이 140명이나 됐던 큰 마을이었죠.”

초계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대암산(591m) 정상이다. 대암산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차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에 ‘대암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치고 가면 된다. 여행 고수들 사이에서는 일출과 별 맛집으로도 입소문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온다. 초계면사무소 기준 차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가다보니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나무 사이로 분지 모습이 보였다. 정상 근처에는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 차를 대고 이정표를 따라 가로지르는 길로 갈 수 있는데 아직 길이 정비되지 않아 넓은 임도를 따라 걷는 것이 좋겠다.

산 정상에서 보니 완벽한 타원형 분지 지형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최고봉 천황산(687m), 미타산(662m), 봉산(564m), 태백산(578m) 그리고 초계면쪽 야트막한 단봉산(201m)까지 분지를 원형으로 둘러싼 산줄기는 황매산과 멀리 지리산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운석충돌구 초계분지와 엮어서 가볼 만한 곳

이 계절에 어울리는 합천 여행지로 황매산과 정양늪을 추천한다. 억새와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황매산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겨울 철새들이 막 찾아오기 시작한 정양늪에서 한 해를 보내는 연말 여행을 즐겨보자.

<황매산 일몰>

소백산맥에 속하는 황매산은 높이 1113m에 달한다. 합천 군립공원으로 지정돼있다. 산이 높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상 부근 철쭉군락지와 억새 평원 근처까지 차도가 나있어 편안히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철쭉과 억새사이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반달 모양으로 길쭉하게 굽어져있는 철쭉과 억새사이 관광안내소는 2019년 건축가 임영환이 설계한 건물로 2021년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정양늪 철새>

약 1만년 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양늪은 41만㎥ 규모의 배후습지다. 늪 주변으로 약 3.2㎞의 탐방로가 있어 산책하듯 걸으며 습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지금 이계절 무채색 습지를 채우는 건 겨울 철새다. 큰기러기, 큰고니, 청둥오리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습지 옆에는 생태학습관이 있다. 생태학습관에서 철새 관찰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망원경을 빌려준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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