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50만원 줄 테니 부모님 없이 시설에서 딱 1년만 살아 보세요”[르포 With. 노랑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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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50만원씩 드릴 테니, 부모님 없이 딱 1년만 시설에서 살아 보세요.

자립 준비 청년 겸 사회 활동가인 박태양 군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만 23살 박태양 씨가 자립 준비 청년들이 받는 보조금을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한 말이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가정위탁 등 시설에서 보호를 받다가 18세 이전이나 이후 세상에 홀로서기 해야 하는 보호 종료 5년 이내 청년을 뜻한다.

직판 여행사 노랑풍선이 해외여행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2박 3일 깜짝 여행을 선물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진행한 제4회 노랑풍선 꿈 만들기’ 행사에는 자립 준비 청년 18명이 참가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이가 바로 박태양 씨다. 박 씨는 자립 준비 청년이자 사회공헌활동가다. 공무원 시험도 합격한 그였으나 ‘나와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과감히 임용을 포기하고 사회공헌활동가의 길을 택했다.

꿈 만들기 행사는 노랑풍선이 여행 업계에서 최초로 2018년도부터 지금까지 시행해 온 사회공헌활동이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항공권과 숙박비 등 여행 경비 전액을 지원한다.

올해는 복지 단체 ‘함께하는 사랑밭’과 손잡고 20세~25세까지 자립 준비 청년을 선정해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청년들의 얼굴은 공항서부터 잔뜩 상기했다. 올해 1분기 국적사 여객 수만 2200만 명을 넘었다는 숫자가 무색하게 어른이 될 때까지 그 흔한 해외여행을 못 가봤으니 당연하다.

2박 3일 일정은 알찼다. 첫째 날은 오사카 번화가 신사이바시 도톤보리를 둘러봤다.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리를 따라 빼곡하게 붙어있는 옥외광고물이 이곳의 명물이다. 거대한 다리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대게와 험상궂은 얼굴 모형까지. 생소한 광경에 연신 감탄하던 청년들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성 여행+ 기자

여행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첫 끼는 초밥이었다. 장어 한 마리를 올려놓은 듯한 초밥, 두툼한 참치 초밥, 신선함이 생명이라는 고등어 초밥 등 푸짐한 식사는 청년들을 미소 짓게 하기 충분했다.

이소원(남, 만 21세) 참가자는 “여행 오기 전에 제일 먹고 싶은 게 초밥이었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다”며 “말하다 보니까 또 먹고 싶다”고 말하며 흡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꿈 만들기 행사는 기존 노랑풍선 묶음 여행 상품(패키지)을 이용한다. 여기에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담았다.

박상욱 노랑풍선 기획 팀장은 하나라도 더 좋은 걸 경험시켜 주고 싶어서 여행 막바지까지 식당 목록을 바꿨다고 밝혔다. 박 팀장은 “아, 그때 노랑풍선 여행에서 먹은 초밥 진짜 맛있었는데, 그때 일본 진짜 좋았는데” 라는 말을 청년들 입에서 듣는 게 이번 행사 기획의 최종 목표였다며 웃어 보였다.

다음 일정은 오사카성.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도 연관이 있는 곳이라 성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여행 내내 청년들을 챙기며 함께한 김동규 안내원은 방문 전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이자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성이라 우리가 굳이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다”며 역사적 사실을 청년들에게 분명히 설명했다.

노랑풍선 여행의 초점이 청년들의 단순한 눈요기나 기업의 겉치레 따위에 맞춰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방문 당시 기쁘게도 벚꽃이 만개한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꽃구경을 하지 못하고 왔다는 청년들은 또다시 서로를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도톤보리강을 따라 흐르는 작은 유람선도 탔다. 청년들은 현지인 관광 안내원의 말을 따라 생전 처음 보는 이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서로 어색해하던 청년들끼리도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행사 참여자가 아닌 평범한 여행자였다.

자유 관광 시간 청년들은 서로 손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지는 여행 전 일본 제과회사 간판인 글리코상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숨은 명소였다.

이번 여행에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왔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자유 시간이었음에도 네가 먼저 찍으라고 배려하던 청년들은 각도에 맞춰 자세 조언까지 주고받으며 카메라에 서로의 모습을 담았다.

일본은 지난해 700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 방문객이 찾아간 1위 국외 여행지다. N차 여행객에게는 지루한 일본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저녁 식사 장소는 정해진 시간 내에 고기 등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샤부샤부 뷔페. 먹성 좋은 청년들이었지만 음식이 늦어져도 볼멘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외려 서로의 빈 접시에 반찬과 우동 사리 등을 덜어주며 차분히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른의 부재로 어릴 적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청년들이었다. 그 청년들은 남을 먼저 살필 줄 아는 어른으로 컸다. 매 순간 따뜻한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청년들이었지만, 그들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청년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랑풍선 측에서 청년들이 편의점 등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5만원을 충전한 선불카드를 준비했기 때문. 객실에 부지런히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온 청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편의점에서 만났다. 각자가 고른 간식을 힐끔 훔쳐보던 청년들은 자신의 장바구니만 채우기에도 모자랄 수 있는 이 돈을 서로를 위해 썼다.

같은 객실을 쓰는 형에게 간식을 사준 윤민우(남자, 만 21세) 참가자는 “베풀면 나중에 다 돌아온다고 그러더라고요”라며 “저는 그 말 믿어요”라고 덧붙였다. 한 참가자는 선불카드에 든 5만원으로 핫팩을 사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돌렸다. 비가 와서 다소 쌀쌀했던 현지 날씨에도 참가자들의 한쪽 주머니는 뜨거웠다.

참가자들은 새벽까지 일본 전통 다다미 객실에 앉아 사진도 찍고 대욕장에서 온천물도 끼얹어 주고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얘기를 들었다.

교토로 이동해야 하는 두 번째 날이 밝았다. 부지런히 조식도 챙겨 먹고 약속한 시간에 빠짐없이 나온 청년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이 전날보다 많았다.

대나무숲 치쿠린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교토의 유명한 대나무 숲 치쿠린에 방문하는 게 첫 일정이었다. 일본의 유명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끝을 보려면 고개를 치켜들어야 할 정도로 울창하게 자란 좁은 대나무 길.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곧게 담고 있는 대나무가 주는 감동이 있었다. 이곳을 나란히 걷던 청년들은 서로에게 부쩍 다가가 있었다.

강민희(여, 만 22세) 참가자는 “선생님 같이 사진 찍어요”라며 기자의 옷가지를 조심스레 당겼다. 대쪽 같은 대나무가 뒤에 있어서인지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강 양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배불리 일본 가정식을 먹고 란덴 열차에 탑승했다. 청년들은 열차 안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어울리며 깔깔댔다. 꾸벅꾸벅 조는 서로의 모습을 몰래 찍으며 놀다 보니 어느새 도착.

목적지는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원인 청수사. 이곳에서 연애나 사업 등과 관련한 소원을 빌면 이뤄질 확률이 높다고 알려진 효험 좋은 사원이다. 청수사 입장권은 계절별로 달라져서 소장 가치가 있으니 간직하는 편이 좋다.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나무와 그 사이로 기모노 등 일본 전통 복식을 갖춰 입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곳이 일본 역사의 진수를 품은 도시 교토임을 실감케 했다.

청수사로 가기 위해서는 807년 다이도 시기 2년에 지어진 니넨자카와 808년 다이도 3년에 만들어 진 ‘산넨자카’를 지난다. 김 관광 안내원에 의하면 이곳에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다. 일본어로 숫자 2를 의미하는 ‘니’와 3을 의미하는 ‘산’ 때문에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이윽고 청수사 본당에 다다르자 청년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찰 앞 향로 근처에 동전을 두고 향을 꺼내 간곡히 기도를 올렸다. 한 청년의 기도는 어찌나 길고 간곡했던지 그 옆자리가 3번이나 바뀔 동안 끝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장소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아베노하루카스 안에 있는 게 뷔페. 대게를 무제한으로 맛볼 수 있다는 말에 청년들은 한껏 들떴다. 접시에 반찬을 꽉꽉 채운 채 부지런히 게 껍데기를 까는 데 집중하느라 그날 저녁은 유난히 조용했다.

배불리 먹고 호텔 침대에 몸을 뉘니 문득 비행기 정비사가 꿈이라는 김호성 청년의 말이 생각났다.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여동생이랑 같이 그냥 평범하게요.

평범한 삶조차 ‘꿈’꿔야 하는 자립 준비 청년들은 늘 세상에 홀로서기 할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언제 복지 시설에서 내던져져도 덜 아플 수 있도록 말이다.

최근 아동 의사에 따라 별도의 사유가 없어도 24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했다. 다만 아직 현장은 바뀐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시설에 더 머무르고 싶어도 복지시설이나 전담 인력이 부족해 편히 선택할 수 없고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지속가능한 자립: 자립지원 전담기관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 자립 준비 청년들을 지원하는 전담 인력은 청년 1인당 71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한 참가자는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으면 네가 개인적으로 받은 장학금을 나눠 써야 한다”는 협박성 발언에 결국 쫓겨나듯 나왔다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삼켰다.

또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립정착금이라 불리는 보조금이 있지만 지역마다 편차가 큰 게 문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자립정착금은 전국 17개 시·도 모두 복지부 권고 기준인 1000만 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서울은 2000만원, 경기 등은 1500만원, 경남은 1200만원, 대구나 세종 등은 1000만원 등 천차만별이다.

이 지원제도 역시 귀한 목숨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바뀌었다. 2022년 광주에서의 두 명의 자립 준비 청년의 자살, 그리고 2023년 천안에서도 한 달 간격으로 두 명의 자립 준비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만이 맴돌 뿐이었다.

이 청년들 모두 보호 기간이 끝난 뒤 국가가 돌보고 있는 사후관리 대상자였다. ‘자립준비청년’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목격 등으로 유년 시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탓이 크다. 자립 준비 청년 중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라는 문항에서 50%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문제에 관해 박태양 청년 활동가는 “갑자기 혼자가 된다는 무기력과 고립감이 언제든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 있다”며 “지원금 지급 기간, 자립 준비 청년에 대한 정의, 형제자매의 경우에는 하나로 묶어서 더 적게 들어오는 수급비, 시설에서의 과한 통제 등에 있는 허점을 살펴서 막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청년들에게 ‘처음’이 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노랑풍선이 준비한 이번 여행에 자립 준비 청년들은 처음이 주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비단 여행이 주는 새로움 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비밀로 하고 싶은 특이한 나의 이야기가 이곳에서는 ‘흔한’ 이야기로 변하는 새로움까지 말이다.

여행의 끝무렵 참가자들은 여행 내내 마음이 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내 얘기를 숨길 필요가 없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비슷한 상황임을 알아서. 또 청년들은 자신들이 아는 유용한 지원 제도 등 정보도 부지런히 나눴다.

이번 행사처럼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는 서로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주는 장이 필요하다. 잘난 공주와 왕자의 얘기만 나오는 동화책보다 실수 투성이인 미운 오리 새끼 동화에 더 손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청년들끼리 꾸준한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역시 어른이다. 물리적 어른이 아니라 마땅히 기댈 사람이 없는 이 청년들에게 종종 기꺼이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독학으로 일본어 능력 시험(JLPT)에서 가장 높은 급수를 맞은 박한서 군은 꿈이 일본 관광 안내원이다. 그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노랑풍선과 함께하는 사랑밭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훗날 일본 관광 안내원으로 다시 일본에 올 날이 기대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의 말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난 그 후자에 동감한다.

일본=김혜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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