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소개하는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는 김제 금산사로 김제시와 완주군 경계에 있는 모악산 자락의 전통사찰이며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며 김제 여행을 하시는 분이라면 필수 코스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해발 795m의 모악산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유명해 난리가 났을 때의 안전을 담보하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앙의 본거지라 할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었습니다.
모악산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전기까지 형성된 불교 종파의 총칭인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로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된 김제 금산사와 더불어 귀신사, 대원사 등의 유명 사찰이 있습니다.
김제금산사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전라도 여행지 추천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 김제 금산사 영상 3분 21초.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이라 하는 전통사찰을 찾아가는데 성문으로 인식되는 건축물이 보인다.
의아하여 살펴보니 현판에 개화문(開化門)이라 적혀 있고 성문이 맞다. 이유인즉 후백제 당시 김제 금산사는 견훤의 원찰이었고 견훤은 금산사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으로 성을 쌓았는데 바로 그때의 성문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성인 금산산성을 ‘견훤석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후 세월이 흐르며 무너진 것을 최근 복원한 것이라고.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라 적힌 현판이 달린 일주문.
일주문 왼쪽으로 걷기 편한 길이 있고 더 왼쪽으로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휘이휘이 걷기에 좋다.
걷기 좋은 길, 이러한 풍경과 길을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이라 해도 좋을 듯.
얼마 걷지 않아 일주문 다음의 금강문(金剛門)을 만나게 된다.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금강문이라 부른다.
모악산(母岳山) 등산로가 사찰 오른쪽으로 나 있다.
해발 795m의 모악산은 산 정상에 어미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 보이는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주변 평야에서 필요로 하는 물이 모두 모악산에서 흘러들기에 아이에게 젖을 주는 어미의 형태이니 ‘모악’이란 산 이름이 더욱 어울린다. 여행지가 아닌 등산을 할 곳으로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듯.
금산사지(金山寺誌)에 한자가 들어오기 전 불리던 ‘엄뫼’, ‘큰뫼’라는 말이 있었고 이는 아주 높은 산을 의미했다고 한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모악산에서 주변 평야로 흘러드는 생명수.
금강문을 지나면 멀리로 천왕문이 보인다.
사찰의 문을 순차적으로 보면 일주문 – 금강문 – 천왕문으로 이어지는데 금강문 없이 천왕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들이 모셔져 있는 문이기에 사천왕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석주는 당간지주다.
정확한 명칭은 ‘김제 금산사 당간 지주’이며 보물 제28호로 지정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김제 금산사를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 중 전북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하는 것은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며 이 당간 지주는 많은 문화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8세기 후반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커다란 이 나무는 느티나무로 아름다운 수형과 풍부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안정적인 형태로 말미암아 사찰, 사원, 마을 등의 정자목으로 활용되어 온 나무다.
천왕문 앞에도 차량이 있고 많은 차량이 줄을 서고 있어 무슨 일인가 살펴봤다.
이유인즉 태공 송월주 스님의 추모전시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 명은 ‘토끼뿔 가북털’
저 앞이 전시회가 열리는 금산사 처영문화 기념관이다. 어쩌면 이런 전시회 하나만으로도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사찰의 확장성을 엿본다.
그 오른쪽의 2층 전통건축물 형태의 콘크리트 건축물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인데 이른 아침 방문한 탓인지 오픈 전.
천왕문을 지나면 누문 형태의 누각 건물이 보인다.
현판에 보제루(普濟樓)라 적힌 이 건물은 정확한 건축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중기에 만세루(萬歲樓)라는 12칸짜리 누각이 있었으나 어떠한 사건인지 알 수 없으나 소실되었고 이후 지어진 건물이 보제루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을 들어가 보면 이런 누각 형태의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잦은 외침에 따라 승병이 조직되고 사찰이 의승군의 결집 장소가 됨에 따라 군사적 필요성이 누각 건축으로 드러났고 이후 승병이 사라지면서 남은 누각 건물의 법회와 강설, 대중집회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그러한 실용성이 부각되어 규모가 큰 사찰은 거의 누각 누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제루를 지나 뒤돌아 보면, 개산 천사백 주년 기념관이란 글자가 쓰인 현판이 보인다.
이 현판은 우리나라 진보학계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문학가이며 서예가인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씨다.
신영복 선생은 젊은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간 징역살이를 했으며 수감 생활을 하며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몰랐던 인물, 몰랐던 내용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가 된 것일까?
여러모로 좋다.
시대의 스승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쇠귀 신영복 선생은 금산사 보제루의 현판 이외에도 소설가 조정래의 ‘한강’ 표지에 친필을 담았으며 소주 ‘처음처럼’ 포장지의 글씨,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의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문구의 글씨체 등이 있고 여러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보제루를 등 뒤로하고 정면에 정면 7칸의 커다란 법당이 보이는데 이 당우가 김제 금산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
대적광전으로 가기 전 왼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범종각이 위치하고 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불교 사물이 있다.
보물 제827호인 대장전(大藏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장전은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웠다고 한다. 미륵전을 짓고 정팔각원당형으로 조성했던 건물로 탑과 같은 산개형의 층옥으로 꼭대기 옥개에는 솥뚜껑 모양의 철개를 덮고 다시 그 위에 불꽃 모양의 석조 보주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후 인조 13년인 1635년에 중창하면서 지금과 같이 전각 형태로 변형하며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192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된 것이다. 이러저러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도 전각 꼭대기에 복발과 보주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라 때의 목탑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대장전 안의 불상은 전라북도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공식 명칭은 ‘김제 금산사 대장전 목조 삼존불상과 광배’다.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의 입상이 놓여 있다.
보물 제828호 김제 금산사 석등.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우는 건축물을 석등이라 한다.
이 석등은 본래 미륵전 앞에 있던 것을 1922년 대장전을 이전할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으며 조각이나 지붕돌에 새겨진 꽃 조각 등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의 양식으로 추정된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의 주불인 지장보살은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다는 도리천(忉利天)에 살면서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며 함께 모셔진 십왕은 128개의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명계의 왕이다. 그러하기에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 부르는데 본래 지장전과 시왕전은 독립된 전각이었으나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豫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된 이후 종래의 현세 기복 신앙이 내세 구원 신앙으로 바뀌면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고려 말 이후 지장전과 시왕전이 명부전으로 결합되었다.
전북 김제 가볼 만한 곳인 어느 전통사찰에서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변화를 이해하고 배웠다고 하면 그 역시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이 된다.
보물 제22호 김제 금산사 노주(露柱).
노주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돌로 조성한 좌대 위에 보주(寶柱) 형태의 돌기둥이 놓여 있어 명칭을 노주라 했으며 미륵전 앞에서 미륵부처님을 광명으로 공양했던 광명대 역할일 것이라 추정한다.
1922년 대장전을 이건하며 같이 옮겼다고 하며 조각이나 양식을 고려했을 때 고려 전기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주불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은 ‘화엄경’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연화장세계를 다른 말로 대정적(大靜寂)의 세계라고 하며 이 말에서 대적광전의 이름이 유래한다.
김제 금산사의 대적광전 본래 명칭은 대웅대광명전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인조 13년인 1635년에 절을 중창하면서 대웅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불상을 모두 한 건물에 모시고 전각의 이름을 대적광전으로 바꿨다. 법당 내부에는 왼쪽으로부터 5여래인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불이 모셔져 있고 그 사이에 왼쪽에서부터 6보살인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월광보살, 일광보살이 모셔져 있다.
본래의 대적광전은 1968년에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큰 화재로 전소되면서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고 현재 건물은 1990년에 복원된 신축 건물이다.
보물 제23호 김제 금산사 석련대(石蓮臺).
석련대라 함은 불상을 모시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를 말한다.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의 화려한 양식을 띄고 있어서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하며 그 규모나 조형미로 미루어 동일 목적 동일 형태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27호인 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 석탑.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모양에서 장식이 화려한 고려 시대의 양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세워졌다. 본래 봉천원 터에 있었으나 정유재란 이후 수문 대사가 전각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국보 제62호 김제 금산사 미륵전(彌勒殿).
진표율사가 통일신라 경덕왕 23년인 764년부터 연못을 참숯으로 메우고 거대한 철조 미륵불을 조성하여 혜공왕 2년인 766년 5월 1일 미륵전 금당에 봉안했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3개월 동안 감금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본래의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에 의해 전소되었고 선조 33년인 1600년에 수문대사를 중심으로 한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인조 13년인 163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외부에는 각 층에 미륵전, 용화지회, 대자보전의 현판이 부탁되어 있어 전형적인 3층 목탑 양식을 갖추고 있고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19호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
미륵전 내부에 모셔진 불상은 중앙에 미래불인 미륵불, 좌측 법화림보살, 우측 대묘상보살의 미륵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미륵전에는 중창할 때 모셔진 미륵삼존불이 있었으나 1934년 화재로 주불인 미륵불상이 파손되었고 이후 1936년 공모에서 당선된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복진이 석고미륵여래입상을 조성했다.
여래입상의 높이는 12m로 신체의 비례, 얼굴의 표현, 사실적인 옷 주름 등에서 서구적 조각 수법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나무, 금속이 아닌 석고로 조성해 금박을 입혔다는 것이 특이하다.
원통전(圓通殿)이 보인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 당우를 지칭하는 용어이며 일반적으로는 관음전(觀音殿)이라 부른다.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김제 금산사.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로 손꼽히는 이유가 있으며 전북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진 이유가 충분하다.
사찰이라는 종교적 의의를 빼고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로 휘휘 둘러보되 보유하고 있는 많은 문화유산을 한 장소에서 하나하나 살펴보는 즐거움이 꽤 큰 김제 금산사.
방등계단(方等戒壇) 옆의 적멸보궁(寂滅寶宮).
방등계단이란 정사각형의 넓은 석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석종(石鍾) 모양의 탑을 올린 구조물을 의미하며, 승려들에게 계(戒)를 주는 장소다. 적멸보궁이 있는 자리는 과거 나한전이 있던 자리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보물 제25호인 김제 금산사 오층 석탑.
석탑은 고려 경종 4년인 979년부터 성종 원년인 982년에 걸쳐 세워졌다. 본래는 9층 탑이었으나 현재는 5층만 남아있다. 당시 석탑의 위 기단 사리공에 정광여래 사리 2과, 석가여래 진신사리 5과, 청동 불상을 모셨으나 정광여래 사리는 분과하여 총 3과가 되었고 사리를 제외한 유물들은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오층 석탑 앞에서 바라본 미륵전이 웅장하다.
이곳 김제 금산사는 꼭 한 번은 와봐야 할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다.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수행자인 아라한을 모신 전각 나한전(羅漢殿).
방등계단과 오층석탑 동쪽으로 적멸보궁과 나란히 자리하며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인 삼성각.
선종 사찰에서 그 종파를 연 조사를 봉안하는 전각인 조사전(祖師殿)을 끝으로 사찰 기행을 마친다. 김제 금산사는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전통사찰로 단순하게 전라도 여행지 추천 장소로만 생각하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헤아리며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곳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