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Pick]”고기와 대화하라”…그가 ‘첫 점’에 집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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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두툼한 소고기 덩어리를 그릴에 통째로 구워낸 후, 묵직한 접시 위에 매시드 포테이토와 크림 스피나치를 함께 곁들여 내놓는 곳. 기분 좋은 날이면 와인잔을 부딪치며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스테이크하우스’다.
하지만 이 스테이크하우스라는 공간은 막상 수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메뉴판부터 낯설고 긴장되는 미지의 공간이다. 어떤 부위를 골라야 할지, 굽기는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부터 막막해지기 십상이어서다.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의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를 이끄는 주방장 김재헌 셰프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김 셰프는 스테이크하우스가 처음인 손님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공들여 스테이크를 구운 후 손님이 첫 점을 입에 넣는 순간까지 홀에서 지켜본다. 김 셰프가 걸어온 스테이크 외길과 ‘고기와의 대화’에 대해 들어봤다.
감동을 주는 요리
김재헌 셰프의 출발점은 주방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 시절 전공은 컴퓨터였다. 하지만 군 복무 시절 ‘전역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진로는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그가 내놓은 답은 ‘외식업’이었다.
외식업을 새로운 진로로 결정한 것은 단순히 가게를 차리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요리에서 주목한 것은 ‘사람에게 건네는 감동’이었다. 김 셰프는 “내 삶의 목표는 봉사하면서 사는 삶”이라며 “음식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이 대개 인생의 기쁜 날을 맞이한다는 점도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레스토랑은 손님이 좋은 날 찾아오는 곳이라 그 자리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첫 직장은 광화문 인근 서울파이낸스센터의 대형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처음 배운 주방 일은 쉽지 않았지만 김 셰프는 몸으로 부딪치며 버텨낸 그 시절의 고생이 지금의 단단한 자신을 만든 밑거름이었다고 돌아봤다. 김 셰프는 “힘들고 어려웠던 그 첫 과정을 초석 삼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셰프가 스테이크로 방향을 튼 것은 약 15년 전이다.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를 만들어 보자는 한 외식업 경영자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모델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하우스와 미국식 레스토랑들을 구석구석 돌며 맛보고 체험했다.
김 셰프는 “격식을 차린 파인다이닝과 달리 손님과 가깝게 소통하고 접시에 담아내는 모습도 투박한 식당을 좋아하는 손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스테이크하우스의 그런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셰프는 서울의 여러 스테이크하우스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23년 개관을 앞둔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로 자리를 옮겼다.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의 오픈 멤버로 합류하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경기 전에 스테이크를 즐겼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스테이크하우스다. 북미 지역 외에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가 문을 연 곳은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뿐이다.
숙성의 길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를 대표하는 메뉴는 ‘델모니코 스테이크’다. 45일 동안 드라이에이징한 꽃등심을 쓰는 스테이크다. 드라이에이징은 도축한 고기를 공기 중에 두고 수분을 날리며 숙성해 고기 특유의 향을 끌어내는 숙성법이다.
김 셰프는 드라이에이징을 오징어 건조법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숙성하지 않은 고기는 생물 오징어처럼 신선하고 육즙이 많다”며 “드라이에이징한 고기는 해풍에 말린 마른오징어처럼 육즙은 줄지만 씹는 맛이 좋아지고 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김 셰프는 숙성한 고기와 숙성하지 않은 고기 사이에 우열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생물 오징어도 마른오징어도 맛있듯 느낌이 다를 뿐”이라며 “드라이에이징한 고기와 숙성하지 않은 고기 모두 맛이 좋기 때문에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굽기 정도를 고르듯 손님은 숙성 일수를 보고 어떤 향과 식감의 고기가 나올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스테이크하우스에 따라 고기를 21일 숙성하는 곳도 있고 90일까지 숙성하는 곳도 있다. 델모니코 스테이크에서는 그 중간인 45일 숙성한 고기를 쓴다.
김 셰프는 “보통 28일쯤 지나면 드라이에이징 향이 나기 시작해 육향이 강해지고 식감도 부드러워진다”며 “45일 숙성한 고기는 ‘드라이에이징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정도로 견과류와 치즈 같은 향이 난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건 45일 숙성을 마친 같은 고기도 각 부분의 맛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드라이에이징을 마친 고기 한 덩이를 열 조각으로 나누면 바람을 많이 맞은 바깥쪽은 숙성이 잘 돼 있고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덜 돼 조각마다 다른 맛이 난다”고 밝혔다. 그래서 김 셰프는 스테이크하우스를 자주 찾는 손님에게는 더 육향이 뚜렷한 부위를, 처음 경험해 보는 손님에게는 중간 부위를 권한다.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는 스테이크하우스가 처음인 손님을 위해 스테이크와 샐러드, 사이드를 한꺼번에 내는 셰어 플레이트 코스도 제공한다. 리조트 이용객이나 외국인 방문객이 많다 보니 스테이크하우스를 처음 접하는 고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 셰프는 “파스타집에 가면 늘 먹던 알리오올리오나 카르보나라를 고르면 되지만 스테이크하우스는 어떤 고기를 먹어야 하고 샐러드는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 몰라 막막해하는 손님이 많다”며 “그래서 문턱을 낮추려고 구성을 세트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릴 앞에서의 대화
스테이크 전문가로 10년 이상을 보낸 김 셰프지만 지금도 그릴 앞에서 지키는 원칙이 있다. ‘고기와 이야기하라’는 원칙이다. 스테이크하우스를 처음 준비할 때 미국의 드라이에이징 전문 셰프에게 들은 조언이다.
김 셰프는 “처음 이 조언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내가 굽고 있는 고기에게 ‘지금 미디엄이니’ ‘시즈닝은 어느 정도 됐니’ 하고 말을 건넬 만큼 고기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러려면 그만큼 많이 조리해 봐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금 김 셰프는 고기와 ‘대화’를 한다. 김 셰프가 고기와 열심히 대화하는 때 중 하나는 굽기를 알맞게 맞출 때다. 손님이 레어부터 웰던까지 하나의 굽기를 고르면 그 굽기에 정확히 맞춰 테이블에 서빙할 수 있도록 불에서 내리는 시점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그는 “고기를 담는 접시의 온도도 제각각이고 서버의 사정에 따라 손님에게 전달되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며 “이 모든 변수를 헤아리며 불에서 내리는 타이밍까지 정확히 맞출 수 있어야 고기와 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셰프는 굽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고기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다. 김 셰프는 “굽는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익힐 수 있지만 고기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쉽게 배울 수 없는 일”이라며 “농부가 좋은 과일을 맺기 위해 가지치기부터 하우스 환경까지 맞춰 가듯 고기 역시 유통과 숙성 과정 전체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김 셰프는 업장으로 들어오는 고기의 유통까지 직접 점검한다. 그는 “미국에서 오는 배의 항로가 홋카이도 쪽을 거칠 경우 고기가 한 번 얼었다 녹을 수 있는데 이걸 신경 쓰지 않고 숙성하면 고기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셰프가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항공으로 들여온 소고기를 쓰는 이유다.
김 셰프가 선호하는 소고기는 마블링이 지나치지 않고 뼈가 붙은 부위다. 김 셰프는 “보통 두 명이 500~600g의 스테이크를 나눠 먹는 만큼 마블링이 지나치면 손님이 느끼해할 수 있어 마블링이 많지 않은 부위를 쓴다”며 “고기 뼈를 구우면 ‘본팻’이라는 기름이 나오는데 이 기름으로 고기를 구워야 향과 맛이 훨씬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김 셰프가 음식만큼 신경 쓰는 것은 손님의 반응이다. 김 셰프는 자주 홀에 나가 직접 손님이 스테이크의 첫 점을 먹는 순간의 반응을 지켜본다. 고기가 손님 입에 맞았는지 그 표정에서 가늠하기 위해서다. 김 셰프는 “손님이 첫 점을 먹은 후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보면 음식의 맛이 괜찮으셨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셰프는 종종 서버에게 테이블 분위기를 확인한 후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특히 기념일 손님과 알러지 손님에게는 예외 없이 직접 찾아가 인사한다. 김 셰프는 “손님에게 음식이 어떠신지 물으면 거의 100% ‘너무 맛있다’고 답해 주신다”며 “그러면 ‘다음에 오시면 더 맛있게 해드리겠다’고 인사하고 바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는 이런 김 셰프의 노력 끝에 서울에서 1시간 넘게 걸려서도 찾아올 가치가 있는 스테이크하우스가 됐다. 실제로 이곳은 최근 세계적인 와인 전문 매체 ‘와인 스펙테이터’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베스트 오브 어워드 오브 엑셀런스’를 수상한 데 이어, 글로벌 시상식 ‘월드 컬리너리 어워즈’에서도 ‘한국 최고 호텔 레스토랑’에 선정되며 미식 경쟁력을 공인받았다. 인스파이어 리조트 개관 전부터 브랜드의 뼈대와 운영 체계를 다져온 김 셰프와 동료들의 노력이 일궈낸 결실이다.

그는 “마이클조던 스테이크하우스가 영종도에 있어 오히려 좋다고 말해주신 손님이 있었다”며 “청담동에 있었다면 예약이 밀려 먹지도 못했을 텐데 오는 시간만 들이면 최고의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구나 싶어 뭉클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김 셰프는 주방을 더욱 엄격하게 이끈다. 그날의 첫 번째 손님이든, 150번째 손님이든 같은 퀄리티의 음식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객 만족이 가장 우선”이라며 “직원들에게 조금 엄하게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헤드 셰프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셰프는 요즘 기본을 자주 되짚는다. 그는 “연차가 쌓일수록 기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며 “장작과 숯으로 향을 입히는 우드파이어 그릴을 지금보다 더 활용하는 등 스테이크의 가장 기본인 고기와 불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손님에게 감동을 주는 요리사는 결국 시간이 만든다”며 “그 시간을 함께 쌓아 온 직원들과 함께 스테이크하우스라는 문화를 더 멀리 알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