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엠파스처럼…네이버도 역사 속으로?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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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에 포위…미래의 新시장 AI 분야 체급차 커져

인스타그램에 밀리고 C커머스에 쫓기고…라인 개인정보 유출로 日시장도 타격

변화 무감각·단기 성과에 목맨 경영진에 주가도 부진…도전·혁신 정신 찾아야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네이버 이해진-최수연ⓒ데일리안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네이버 이해진-최수연ⓒ데일리안

과거 네이버는 벤처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로 불렸다. 그랬다. 네이버는 차별화된 형태의 검색 포털을 내세워 뉴스 배급망과 모바일, 전자상거래 업체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상위포식자였다.

그 식성만큼 대번에 기력을 채우고 입맛을 되돌려 놓는 활력 넘치는 조직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네이버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주변 소식과 지표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첫 번째 소식.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들이 잇달아 대규모 인공지능(AI)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먼저 MS와 오픈AI가 AI용 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슈퍼컴퓨터에 수백만개의 AI 칩이 장착될 것으로 알려졌다. 6년에 걸친 프로젝트 비용이 1000억달러(약 139조원)에 달한다. 기존 데이터센터와 비교해 100배 이상 많은 것이다.

클라우드 시장의 강자 아마존도 앞으로 15년간 데이터센터 건설에 1500억달러(약 205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역시 최근 구글이 AI 기술 개발에 1000억달러 이상을 쓸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반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AI 시대가 되면서 칩 비용이 가장 큰 고민”이라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추정에 따르면,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각각 15만대 가량의 H100를 사들였다. H100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로 AI 훈련 및 구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H100의 가격은 대당 3만~4만달러 선이다. 두 회사가 H100 구매에 최소 45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썼을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드러난 숫자만 이 정도다. 네이버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9조6706억원이다.

두 번째 소식. 글로벌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이 네이버와 유튜브를 제치고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 2위에 올랐다. 최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인스타그램의 1분기 월평균 실행 횟수는 149억3374만회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카카오톡, 네이버, 유튜브에 이어 4위에 머물러 있던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4분기 유튜브를 제치고 올해 1분기 네이버까지 뛰어넘은 것이다.

짧은 영상(숏폼)의 인기로 앱 사용 시간도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사용 시간은 올해 1분기 201억9644만분으로 유튜브, 카카오톡, 네이버의 뒤를 이었다. 네이버와의 격차는 지난해 1분기 88억5000만분에서 올해 1분기 4억8000만분으로 크게 줄었다.

세 번째 소식. 이른바 ‘알·테·쉬·톡'(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틱톡샵)으로 불리는 중국 e커머스의 국내 공습이 거세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3월 알리와 테무의 월간 활성사용자수(MAU)는 각각 887만명, 829만명으로 합치면 1700만명 정도다. 지난 2022년 본격 영업을 시작한 알리는 2년 새 한국 고객이 4배 늘었고, 지난해 7월 상륙한 테무는 알리를 턱밑까지 따라잡았다. 패션에 특화된 쉬인도 급성장하고 있다.

인천공항 집계 중국 직구 건수는 2022년 일평균 2만건에서 지난 1월 14만건으로 7배 뛰었다. 한국 업체들은 이에 대응하느라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도착보장’ 상품에 대해 당일배송과 일요배송도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네이버 전체 매출에서 커머스 부문이 차지했던 비율은 26.3%였다.

네 번째 소식. 일본 소프트뱅크가 한국 네이버가 보유한 라인야후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한 협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을 계기로 일본 총무성이 내린 행정지도에 따른 조치다. 일본에서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를 위해 만났다는 보도도 나왔다. 라인야후는 지난해 11월 “라인 이용자와 거래처, 종업원 등 개인 정보 44만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관계사인 네이버의 클라우드를 통해 제3자의 부정한 접근이 있었다고 밝혔다. 추가 조사에서 개인 정보 7만9000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피해 규모는 총 51만여 건으로 늘었다.

일본 정부는 라인 이용자 유출과 관련한 행정지도를 내리면서 “네이버의 관리 감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라인 서비스는 2011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NHN재팬에서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는 출시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부 시스템의 개발과 운영, 보수를 위탁받아 수행 중이다. 네이버는 원청인 라인야후의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네이버가 동시에 라인야후의 대주주여서 안전 관리가 곤란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라인야후의 최대주주는 지분 64.5%를 보유하고 있는 A홀딩스다. A홀딩스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해 세운 회사다. 라인야후는 일본 1위 메신저인 라인과 최대 포털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서비스하고 있다.

사실 라인은 네이버의 글로벌 시장 공략의 선봉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특히 일찌감치 일본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두며 현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만과 태국 등 일본 경제와 긴밀히 연결된 국가들에서 라인의 인기가 높은 이유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그린팩토리 본사.ⓒ데일리안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그린팩토리 본사.ⓒ데일리안
"네이버 혁신이 죽었습니다."

성공의 덫에 걸려 변화 노력에 무심한 기업들은 대체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고인물에서 시름시름 앓는 황소개구리’, 요즘 네이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네이버는 이제 성장이 다 한 포털, MZ세대들의 방문이 줄어드는 사이트, 주가가 오르지 않는 종목이 돼 버렸다. ‘지식인’ 같은 창의적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22년(2002년)전 일이다. 너무 오랫동안 과거의 명성에만 기대 살았다.

나름대로 공들여 내놓았다는 것이 지난달 서비스를 개편한 숏폼 서비스 ‘클립’과 이달 중 공식 오픈하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틱톡, 인스타그램, 트위치, 숲(아프리카TV)에서 하던 것의 재탕·삼탕이다. 경쟁기업들의 혁신 속도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AI 분야도 빅테크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체급이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변 환경도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눈초리도 매서워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모든 게 자리보전을 위해 단기 성과에 목맨 경영진과 조직주도층의 ‘자업자득’이다. 미래의 신(新)시장 고민 없이 방어만 몰두한 탓이다. 기술 경영이 중요한 시기에 네이버는 사내이사 2자리를 홍보실 출신인 최수연 대표, 채선주 대외·ESG정책대표로 채운 것만 봐도 그렇다.

변화무쌍한 기술 변화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창업당시의 도전·혁신 정신의 상실이야말로 네이버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다. 1999년 네이버가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는 다음, 엠파스,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등 여러 검색엔진이 경쟁하던 상황이었다.

이들은 시장 잠식이 아니라 아예 교체됐다. 경영진 스스로 특단의 전향적 변화가 없다면, 종국에는 네이버가 이들의 전철을 밟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네이버 혁신이 죽었습니다. 혁신이 필요한데 자화자찬식의 말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는 한 주주의 외침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투자자들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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