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게임 산업 대상으로 규제와 개방 정책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국내 게임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규제 불확실성이 부각되고는 있으나, 중국은 세계 최대 게임 시장으로 꼽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한 접근 전략이 요구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측 어려운 中 게임시장…”고? 스톱?”
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국 국가신문출판서(NPPA)는 ‘네트워크 게임 관리 방법(网络游戏管理办法·초안)’을 발표했다. 국내 게임 업계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제3장 네트워크 게임의 출판·경영 항목에서 제16조 ‘금지 콘텐츠’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울러 제18조 ‘게임 과도 사용 및 고액 소비 제한’이 매출 창출을 제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8조는 매일 로그인과 최초 충전, 연속 충전 등 유도적인 보상을 설정할 수 없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게임 업계에선 중국 시장 불확실성이 다시 나타났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예전부터 규제 불확실성 리스크가 있었다”며 “그래서 게임 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올인하는 전략보다는 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규제의 디테일이 어떻게 확정될지 모르고, 규제 완화가 갑자기 이뤄질 수도 있는 곳이 중국”이라며 “이미 중국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 게임의 경우 규제가 어떻게 확정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중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넋 놓고 포기하기엔 너무 큰 시장이라서다. 중국은 게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이 세계 최대 규모다. 업계는 이달 22일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업계와 이용자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결정한다고 밝힌 시점이라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규제는 중국에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과도한 과금을 예방하고 플레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본다”며 “게임 산업을 축소시키려는 제재까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중국 당국이 온라인 게임을 대상으로 규제한다고 밝혔는데, 어떤 게임이 대상인지, 언제부터 적용되는지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중하게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규제와 동시에 개방도…”예의주시”
중국 당국은 규제를 예고하면서 외국 게임 대상으로 개방도 했다. 규제가 발표된 날 국내 게임사들은 ‘판호’도 받았다. 판호는 중국이 자국 시장에서 유통되는 게임에 발급하는 일종의 서비스 인허가권이다.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2’와 위메이드 ‘미르M’, 그라비티 ‘라그나로크X : Next Generation’ 등이 이번 판호 획득의 주인공이다.
어떤 규제가 있더라도 기회를 살리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회의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크다. CADPA(China Audio-Video and Digital Publishing Association)에 따르면 중국의 게임 이용자 수는 2021년 기준 6억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시장조사기관 PwC는 아시아·태평양 게임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2.3%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11.3% 수준이다.
이런 까닭에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아끼면서 중국 현지화 준비를 비롯한 게임 출시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그라비티는 글로벌 시장에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 역량을 바탕으로 중국 현지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라그나로크X는 2020년 대만·홍콩·마카오 등 중화권에 선보여 매출 1위를 달성한 기대작이기도 하다.
엔씨소프트도 ‘블소2’를 연내 중국에 출시할 목표로 현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원작 PC 게임 블레이드&소울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만큼 모바일 게임에서도 성과를 내겠다는 포부다. 엔씨가 모바일 게임을 중국에 출시한 경험은 없으나, 시장은 성장하고 있어 기대되는 대목이다. CADPA의 ‘중국 게임 산업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모바일 게임은 중국의 전체 게임 산업 매출에서 76%에 달한다.
위메이드는 장기간 중국 시장에서 게임 사업을 벌인 노하우를 기반으로 미르M의 현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르’ 지식재산권(IP) 관련 저작권 분쟁에서도 승기를 잡는 저력도 갖췄다. 회사 관계자는 “위메이드는 중국 내 게임 서비스 노하우가 20년에 달한다”며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부, 퍼블리셔(유통회사)와 적극적 소통을 통해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시장이 자국 이익 위주로 구성됐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내 기업은 돌파구를 마련해왔다. 지난 5일 현재 중국 텐센트 위게임에서 서비스되는 신작 게임 중에서 매출·인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마일게이트(RPG)의 ‘로스트아크’도 대표적 사례다. 인기 요인으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가 중국에서 철수한 뒤 등장했다는 배경도 있으나, 탄탄한 게임성과 함께 텐센트라는 우수 퍼블리셔와 2015년부터 계약을 맺은 덕에 현지화 준비 기간 역시 충분했다는 분석이다.
기업 단위의 이같은 노력에 더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은 국내 게임 시장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지만 한국 기업은 중국 규제에 취약한 구조”라며 “한·중 관계가 녹록지 않은 것은 알지만 이런 무역 불균형 문제도 정부가 살펴봐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