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만 느껴졌던 2023년도 어느덧 연말을 앞두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여러 관심 가는 신작들이 매달 쉴 틈을 주지 않고 발매되면서 더욱 정신없이 흘러간 느낌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모두 그만큼 게임의 발전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라, 거기에 투자한 시간이 결코 아깝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만큼 눈길이 가는 신작들이 많았는지 잘 모르시겠다구요? 그런 여러분 위해, 2023년 주목할만한 작품 10개를 한번 모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올해는 어떤 의미 있는 작품들이 우리와 함께 했을까요?
#1
발더스 게이트 3
: 올해의 게임이 되다
올해 최고의 게임이라 한다면, 라리안스튜디오의 RPG ‘발더스 게이트 3’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최초의 RPG로 통하는 ‘던전 앤 드래곤’ 기반 시리즈 ‘발더스 게이트’의 3번째 작품으로, 일리시드 올챙이에게 감염되면서 우연히 함께 얽히게 된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기존 시리즈와 격차도 있고, 개발사도 달라지면서 앞서 해보기 시점에는 불만들이 적지 않았지만, 정식 발매 시점에는 그간 피드백을 바탕으로 보완을 거치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했죠. 특히,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몰입도 있는 ‘스토리텔링’은 이번 작품 최고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미가 곧 연말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GOTY)을 쥐어주는 영예로 이어졌죠.
이 작품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국내 한정으로 또 하나의 의의가 있는데요. 바로 인공지능(AI) 학습을 기반으로 한 번역이 조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죠. 지금은 공식 한국어화가 이루어지면서 시선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기술은 많은 이들이 보다 다양한 작품을 미리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젤다의 전설: 티어즈 오브 더 킹덤
: 형만한 아우 있다
2023년에는 강력한 올해의 게임(GOTY) 후보로 거론할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닌텐도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젤다의 전설: 티어즈 오브 더 킹덤’이 그 주인공이죠. 지난 2017년 발매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후속작으로, 다시금 주인공 ‘링크’와 하이랄의 공주 ‘젤다’가 얽힌 모험을 선보였죠.
전작도 역대급으로 잘 나온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후속작에 대한 사람들 기대감이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흔히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말처럼, 더 이상의 혁신을 보여주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번 작에 와서는 지상, 하늘, 지하를 아우르는 여정, 보다 명확해진 스토리텔링, 그리고 자유로운 오브젝트 조합이 가능한 ‘스크래빌드’ 시스템을 선보이며 그 재미를 전에 없던 수준으로 끌어올렸죠.
그런 의미에서, 닌텐도에 한해서는 “형만한 아우는 없다”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요.
#3
하이-파이 러시
: 누구보다 ‘빨랐던’ 다크호스
2023년에 꼭 대작이라고 주목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신규 IP로써 혜성 같이 등장해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온 탱고게임웍스의 액션게임 ‘하이-파이 러시’도 있었죠. 우연히 자신의 뮤직 플레이어와 한 몸이 되어버린 록스타 지망생 ‘차이’의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온 세계와 싱크로 된 것과도 같은 리듬감 있는 액션으로 단박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하이-파이 러시’는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공개와 동시에 발매가 결정됐는데도 불구하고,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흥행을 기록했죠. 모든 개발사가 신규 IP를 만들려고 매달리는 와중에, 잔잔한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지스타’ 강연을 통해 밝혀진 개발 비하인드들을 생각하면, 그 노력은 결코 어느 개발사에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4
스트리트 파이터 6
: 대전격투게임, 주먹이 아닌 손을 내밀다
2023년은 대전격투 장르에서도 남다른 변화를 던져준 작품 ‘스트리트 파이터 6’가 나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사실상 반다이남코의 ‘철권’과 함께 장르를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번에 그 한 축이 신규 유저 진입을 위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진행하면서 눈길을 모았죠.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가령,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스토리 진행 감각으로 게임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월드 투어’ 모드를 신설하는 한편, 입문자도 보다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신규 조작 방식 ‘모던 컨트롤’을 선보였죠. 일부분에 대해서는 기존 유저들 반발도 있었지만, 이런 부분은 확실하게 입문자를 늘리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신규 유저를 늘리는 것은 대전격투 장르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 앞으로 나올 ‘철권 8’도 이런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맞으면서 배우는 일은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지루한 플랫포머? 달라지면 된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는 대작이 많이 발매된 직후에 발매되면서 다소 묻힌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닌텐도의 횡스크롤 액션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플라워 왕국을 방문한 ‘마리오’ 일행이 갑자기 습격해온 쿠파로 인해 새로운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을 그리죠.
작품은 약간은 고전적인 횡스크롤 플랫포머 액션게임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지루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닌텐도는 여러 면에서 남다른 변화를 더했죠. 각 스테이지는 되도록 짧은 호흡으로 끝나도록 설계하고, 중간에 마주하게 되는 ‘원더 플라워’로 기상천외한 플레이 변화를 두고, 그리고 ‘고스트’ 멀티플레이 요소를 통해 달리 초대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감각을 제공했죠.
사실 일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에서도 마주할 수 있던 개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잘 갈무리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형으로 이끌어내는 것 역시 능력이겠죠?
#6
바이오하자드 RE:4
: 명작을 더욱 즐겁게 만든 리메이크
올해는 완전 신작도 많았지만, 그와 동시에 리메이크 신작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리메이크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그리 높게 평가하진 않는데요. 캡콤의 공포 액션 어드벤처 게임 ‘바이오하자드 RE:4’는 2023년 주목도 있는 작품 중 하나로 언급할만한 가치가 충분했죠.
‘바이오하자드 RE:4’는 그 이름처럼 2005년에 발매된 ‘바이오하자드 4’의 리메이크작인데요. 이미 기반이 되는 작품이 명작으로 통하던 터라,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래픽만 달라져도 충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결과물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맵 구조는 이전보다 연결성이 훨씬 강해졌고, 전투 역시 보다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죠. 아울러, 스토리와 퍼즐도 알차게 갖추며 제대로 된 발전을 보여줬죠.
보통 기존의 재미만 살려도 리메이크는 충분하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이렇게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 실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7
P의 거짓
: 국산 소울라이크 IP의 탄생
2023년은 여러모로 국산 작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네오위즈 라운드8스튜디오의 소울라이크 액션 RPG ‘P의 거짓’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P의 거짓’은 카를로 콜로디의 유명 동화 ‘피노키오’를 비틀어서 다크 판타지 스타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근대 유럽의 ‘벨 에포크’ 분위기에 더해, 스팀펑크와 디젤펑크를 융합한 독자적인 동화 세계관은 여러모로 게이머들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죠. 사실 소울라이크 작품이 호평을 받기 쉽지 않은데, 이번 작품은 첫 도전임에도 비교적 준수한 평가를 받으면서 기대할만한 IP로 자리하게 됐습니다.
이런 신규 IP를 한번 만든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소리! 실제로, 엔딩에서 쿠키 영상을 통해 다른 동화 캐릭터와 연관된 후속작이나 DLC를 암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8
데이브 더 다이버
: 게이머는 ‘웰메이드’를 원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은 또 다른 국산 작품으로는 넥슨 민트로켓의 해양 어드벤처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가 있습니다. 신비로운 블루홀에서 식당을 차리게 된 잠수부 ‘데이브’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깊은 바다를 탐사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재미를 선사한 바 있죠.
이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분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 해보기 시점에도 그 분량은 완성된 게임에 준하고 있었으며, 정식 발매 시점에는 거기서 서브 콘텐츠가 더 늘어나기도 했죠. 지금에 와서는, 그저 깊은 바다를 탐사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게임으로는 설명이 안될 분량이 된 상태입니다.
게임 시장에 앞서 해보기란 개념이 도입되고 나서부터 갈수록 줄어드는 분량에 불만을 가진 게이머들이 많았던 것도 현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류에 맞서는 ‘웰메이드’ 게임에 더욱 큰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9
익스트랙션 RPG
: 출발은 꼬였지만, 새로운 장르의 시작
‘익스트랙션 RPG’는 달리 특정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2023년 큰 주목을 받은 신규 장르 중 하나입니다. 그 시작점에는 지금도 법정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다크앤다커’라는 작품이 불편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 ▲다크앤다커 모바일 ▲던전 스토커즈 등 같은 장르를 표방한 작품들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죠.
3개 작품 모두 독자적인 영역을 내걸고 있는데요.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는 한국을 무대로 한 좀비 서바이벌을, 다크앤다커 모바일은 보다 소형화된 플랫폼 변경을, 던전 스토커즈는 캐릭터와 액션 부문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죠. 그간 테스트 보여준 모습은 많이 투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능성도 엿보이기는 했습니다.
아직 앞으로 나올 작품 모두 테스트 단계에 있어서 지금 당장은 마주할 기회는 없지만, 다가오는 2024년에 게임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프라시아 전기/나이트 크로우
: 달라지는 모바일 MMORPG
주목도 있는 게임이라고 해서, 꼭 모두에게 통용되는 작품이란 법은 없습니다. 모바일 MMORPG 장르를 기준으로 본다면 넥슨의 ‘프라시아 전기’와 위메이드의 ‘나이트 크로우’ 2개 작품은 하나의 방식으로 고착화된 장르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작품들이라 할 수 있죠.
‘프라시아 전기’와 ‘나이트 크로우’는 양쪽 모두 모바일 MMORPG지만, 지향점이 정반대 수준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24시간 치열한 경쟁을 추구했지만, 후자는 경쟁을 특정 구역에만 한정 지었죠. 이런 지향점의 차이로 인해, 각 작품에 진입한 유저들도 차이를 보였다고도 할 수 있죠.
물론, 그 외에도 두 게임이 다른 지점은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모바일 MMORPG 유저들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리니지라이크’ 방식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르적으로 매번 비슷한 ‘리니지라이크’ 문법을 택해왔던 만큼, 이를 접하는 유저들이 가지는 피로도 역시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는데요. 앞으로는 이 두 작품이 보여준 것처럼 게임사들도 조금은 개발을 하면서도 다른 지향점을 고려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 작품들은 그야말로 엄선하고 엄선한 작품들… 사실 이 외에도 목록에 넣고 싶던 작품은 훨씬 더 많습니다. 꼭 게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야만 주목도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2023년을 돌이켜보면 그 어느 때와도 달랐던, 남다른 풍성함을 보여준 한 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얼마 뒤면 2024년도 찾아오기 마련. 우리의 사정과 상관없이 해가 언제나 뜨는 것처럼, 새로운 게임들도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올해만큼 모두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을 완성도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