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단백질 구성, 분자 단위로 분석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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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의 연구팀이 대변 샘플을 통해 인체에 어떤 단백질이 과도하거나 부족한지를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건강 상태를 더욱 폭넓게 진단하고, 건강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고 전했다.

인간은 단백질의 집합체

인간의 몸은 약 2만여 종의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머리카락이나 피부, 근육, 뼈처럼 우리가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돼 있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체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포, 호르몬, 효소, 항체 등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장내 환경을 구성하는 미생물도, 심지어 질병을 일으키고 인체에 해악을 미치는 바이러스도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건강’ 자체가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에 의해 좌우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단백질의 집합체’라고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다.

바이츠만 연구팀은 생물학 분야 국제 저널인 「셀(Cell)」을 통해, 대변 샘플로부터 어떤 음식을 주로 섭취하는지부터 장내 미생물군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어떤 단백질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변 샘플에는 신체에서 소화된 음식물을 비롯해 미생물의 부산물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해당 샘플의 주인이 어떤 건강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표현에 따르면 이 방법은 “미생물군을 연구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DNA 시퀀싱’보다 더 정밀한 방법”이다.

단백질이 수만 가지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단백질이 약 20종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아미노산의 조합과 순서, 그리고 결합을 통해 어떤 구조를 이루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단백질의 기능 차이는 구조의 차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때로는 전체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띠면서도 작은 차이로 기능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단백질이라는 것을 식별해내기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대변 샘플로 체내 단백질 구성 파악

바이츠만 연구소에서는 기존 DNA 시퀀싱과 질량 분석법을 결합해, 보다 세밀한 단백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연구팀은 이를 ‘아이폼드(IPHOMED)’라고 명명했다. ‘숙주와 미생물군, 그리고 식단을 토대로 만들어낸 통합 단백질 유전체 데이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IPHOMED를 활용하면, 대변 샘플에서 발견된 단백질이 어떤 박테리아 균주로부터 나왔는지,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생물군 전체의 구성이나 활동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한, 미생물군의 구성과 활동을 파악하게 되면, 그로부터 나오는 신호를 바탕으로 장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을 식별할 수 있다. 이렇게 확인한 정보를 통합하면 체내 미생물 군집부터 단백질 구성까지 포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츠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인간의 장에서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수십 종류의 항균 펩타이드가 분비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항균 펩타이드는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짧은 단백질이다. 이것이 천연 항생제처럼 작용해, 미생물군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중 일부를 선별적으로 죽일 수 있다. 인간의 장이 스스로 미생물군 구성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부터 미생물 구성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 Designed by Freepik
장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부터 미생물 구성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 Designed by Freepik

음식으로 얻은 고유 단백질까지 파악

연구팀은 대변 샘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단백질의 97%를 식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나머지 3%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것들이 외부에서 섭취한 식단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이츠만 연구팀은 이후 수백 가지 식품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데이터베이스를 추가로 작성하고, 각 식품에서 발견되는 고유한 단백질이 무엇인지를 정리했다. 이를 기존에 구축한 ‘IPHOMED’에 통합함으로써 어떤 사람이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연구팀은 독일과 이스라엘 출신의 자발적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검증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의 대변 샘플을 분석해 단백질을 검출한 결과, 두 그룹 모두 비슷한 수준의 밀을 섭취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독일 그룹은 돼지고기를 더 많이 섭취했으며, 이스라엘 그룹은 대부분 가금류 고기를 섭취했다는 차이점을 확인했다.

또한, 참가자들에게 날마다 다른 식품을 다양하게 섭취하도록 한 다음, 어떤 식품을 언제 먹었는지 판단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언제 땅콩 5개를 먹었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사실까지 추적해낼만큼 민감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또 다른 실험을 통해서는 ‘셀리악 병’을 진단받은 어린이를 정확하게 식별해내기도 했다.

질병 진단 및 치료에도 응용 가능

이와 같은 정밀한 분석은 의료적으로도 응용할 수 있다. 바이츠만 연구팀은 미국, 독일, 이스라엘에서 각각 염증성 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대변 샘플을 확보해 분석했다. 장과 미생물군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자 단위로 해독함으로써, 같은 질환임에도 구체적인 원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질환의 유형을 진단하고, 현재 중증도를 판단하며, 어느 정도까지 병이 진행돼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백질들을 식별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식단을 분석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현재 장내에 문제가 되고 있거나 부족한 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정량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방법은 매우 정밀한 수준의 ‘단백질 지도’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케이스에 대한 분석 결과가 누적될수록 정확도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주면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라는 시대적 메가 트렌드에 한층 더 부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체내 단백질 분석으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Designed by Freepik
체내 단백질 분석으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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