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혹독한 고문 받고 감옥서 풀려난 독립운동가… 출소 3시간 만에 세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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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인 1943년 8월 3일, 한 노인이 쫓겨나듯 감옥 밖으로 나왔다.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노인을 기다리고 서 있었으나 노인은 사랑하는 사람들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기력을 회복할까 우유를 먹였으나 넘기면 토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 뒤 잠시 정신을 차린 노인은 아들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친척들의 소식, 가족이 운영 중인 과수원 일까지 자상히 묻고는 자식의 대답을 경청했다.

또 곁에 있던 손주들에게 다정히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해방을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해방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느냐” 아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했다. “못난 아비를 만나 너무 고생이 많았구나”

모든 말을 끝맺은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출소한 지 고작 세 시간이 지난 그 날 새벽 5시였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1년여간의 혹독한 고문 끝에 출감하자마자 숨을 거둔 백산 안희제 선생은 생전 내내 일제로부터 지명 수배를 받은 거물급 독립운동가였다.

188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백산 선생은 젊은 시절 비밀 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창설해 활동했다. 

지하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은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에 발각되지 않았으며 백산 선생과 당원들은 일제강점기 말기 끝까지 애국 활동에 힘썼다.

1914년 선생은 부산에서 상회를 열었다. 선생의 가게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었다. 해외 독립운동세력의 국내 연락 거점인 동시에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31년 만주로 건너간 선생은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이주 농민들을 돕고 이들에게 민족교육을 하며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그러던 1942년 일제에 체포됐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1년여간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은 백산 선생은 1943년 8월 3일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태였고 출감 세 시간 만에 순국한다.

당시 ‘출감 후 전신이 수척해 목불인견이었다. 의식이 없어 우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가족의 기록이 남아있다.

백산 선생의 별세 이틀 후 형무소 직원 두 명이 사망 확인차 찾아왔다. 일본인 직원이 정중한 태도로 “안 선생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더라” 말을 건넸다.

일본인까지 감화시킨 백산 선생의 기개. 형무소 생활 내내 백산 선생은 혹독한 고문과 회유를 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정부에서는 이같은 백산 안희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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