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집은 왜 그래요”..해외여행 못 가 놀림받은 아들, 사연 전해지자 ‘공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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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보인 아들에 아빠는 ‘착잡’
교실에도 만연한 빈부격차
개근거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집값 갚고 생활비, 보험비, 저축하면 남는 게 없다”

“사는 게 쉽지 않다”

결석 없이 성실하게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수여되는 개근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근상은 성실하고 모범적인 아이들의 상징과도 같았다.

몸이 아프더라도 개근상을 받기 위해 일부러 학교에 출석할만큼 개근상에 진심인 아이들도 학급에서 한두 명씩 어렵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퇴색되고, 이제 개근상을 부끄럽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자신의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개근거지’라고 놀림 받았다는 사연이 전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해외여행 안 가고 개근상 받으면 ‘개근거지’?

개근거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근거지라는 게 그냥 밈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들이 겪어버렸네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의 작성자 A씨는 자신을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이 하나 있는 아빠라고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A씨는 “어제 아들이 친구들이 ‘개거’라고 한다고 울면서 말하더라”며 “‘개거’가 뭔가 했더니 ‘개근 거지’의 줄임말이었다”고 말했다.

‘개근거지’란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고 학교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아이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개근거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해외여행을 못 간다고 판단하고 ‘거지’라는 단어를 붙여 비하하고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A씨는 “우리 집은 외벌이에 실수령은 200~350만 원 정도다”라며 “집값 갚고 생활비, 보험비, 저축하면 남는 게 없다”고 가정형편을 덧붙였다.

이어 A씨는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어 알아보자고 했다”며 “그런데 체험학습도 다른 친구들은 괌, 싱가폴, 하외 등 외국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국으로 국내 여행을 갔다가는 어디 갔다 왔다고 말할 때 쪽팔린다는 이유로 국내 여행을 거부한 A씨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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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아내와의 상의 끝에 A씨는 가지 않고 아들과 아내 둘만 다녀오기로 했다며 A씨는 씁쓸함을 토로했다.

이어 A씨는 “요즘 비교 문화가 극에 달한 것 같다”며 “결혼 문화나 허영 문화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이며 “사는 게 쉽지 않다”고도 말했다.

가정형편을 기준으로 갈린 교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동급생의 가정형편을 짐작하고 비하하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개근거지
출처 : 연합뉴스

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거주하는 아이를 조롱하기 위해 등장한 ‘휴거(휴먼시아 거지)’ 외에도 ‘엘사(LH아파트에 사는 사람)’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빌거(빌라 사는 거지)’,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전세 사는 거지)’와 같은 단어도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가정형편과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경제력이 비교적 약한 가정의 아이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있었다.

물론 해당 표현들이 실제로 교실의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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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극소수의 어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유튜브 등의 콘텐츠를 통해 알려지면서 아이들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11살의 B양은 “주변 친구들을 보면 방학 때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 한 번씩은 다 다녀왔다”며 아이들의 실태를 전했다.

“사실 해외여행이 크게 재밌진 않지만, 해외 가족여행을 안 가면 주변 친구들이 거지 취급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학생의 과반 曰 “한국은 돈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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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이처럼 가족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편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은 결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 학생의 과반은 돈에 따른 차별이 사회에 만연하다고 느끼고 있다.

지난 2023년 발표된 ‘사회와 교육에 관한 학생 가치관 및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돈에 따라 차별한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60.5%에 달했다.

올해 2월 발표된 ‘초중고생의 사회인식’에 따르면 학생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모습은 ‘돈을 잘 버는 것’이 32%에 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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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아이들이 편을 가르고 조롱하는 것은 곧 부모가 그렇게 알려주기 때문이라는 비판 또한 제기되었다.

지난 2021년 인천의 브랜드 아파트에서 입주자 대표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비입주민 어린이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어른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전문가는 “혐오 표현이 생겨나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현상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계층 격차를 당연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곧 저출산과 같은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혐오의 재생산을 막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 또한 요구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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