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황정민의 ‘전두광’…전두환 실명 영화에서 못쓰나? 안쓰나?
전두환이라는 이름. 영화에서는 늘 긴장감을 유발한다.
전두환을 다룬 영화가 또 나온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해 11월22일 개봉하는 ‘서울의 봄'(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이다.
‘서울의 봄’은 한국영화로는 처음 12·12 군사반란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1979년 12월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과 이에 맞선 군인들이 벌이는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렸다.
황정민이 절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을 맡아, 수도 서울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군인 정신에 입각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과 대립한다. 영화에서 전두광은 신군부 세력을 규합해 군사반란을 주도한 12·12의 주동자 전두환을 극화한 인물이다.
1979년, 19살이었던 김성수 감독은 한남동 집에서 밤하늘에 울리는 총성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30대 중반이 돼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는 감독은 마음속에 품은 ‘그날’에 대한 의구심과 호기심이 결국 ‘서울의 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 황정민 이전에 이덕화→장광→서현우, ‘전두환’ 연기
그간 전두환을 그린 작품들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로 이어졌다. 하지만 실명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는 MBC가 2005년 방송한 41부작 드라마 ‘제5공화국'(극본 유정수·연출 임태우)이 유일하다.
‘제5공화국’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변곡점들을 다룬 작품이다. 1979년 10·26 사태에서 시작한 드라마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이어진 6·29 선언을 넘어 제6공화국 성립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드라마에서는 배우 이덕화가 전두환 역할을 맡았다. 신군부 세력을 앞세워 정권을 찬탈하고 대통령에 오르는 전두환의 모습을 연기한 이덕화는 특징적인 외모로 실존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덕화는 역할을 위해 데뷔 이후 줄곧 착용해왔던 가발까지 벗고 연기해 숱한 화제를 모았다.
‘제5공화국’과 달리 전두환을 다루는 영화들은 실명 대신 다른 이름을 창작해 그 인물을 극화하는 시도를 벌인다.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영화 ’26년'(2012년)은 5·18 당시 군인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가족들이 주동자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나서는 복수극이다. 영화에서 지칭한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전두환. 배우 장광이 그 역할을 맡아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고도 반성 없는 모습의 인물을 그려 관객의 공분을 샀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년)에도 주요 캐릭터로 전두환이 등장하지만 실명은 쓰지 않는다. 대신 실명과 흡사한 느낌을 풍기는 전두혁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0·26 사태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은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겪은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첩보영화다.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정승화 등 10·26으로 연결된 실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등장인물 누구도 실명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배우 서현우가 연기한 전두환을 빗댄 캐릭터 전두혁 역시 마찬가지다.
‘남산의 부장들’의 전두혁은 이번 ‘서울의 봄’의 전두광과 일면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축한다. 서현우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야망을 숨긴 채 권력자 앞에 충성하는 보안사령관 전두혁을 통해 관객에게 소름끼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는 대통령 서거 뒤 대통령실 금고에 숨겨진 금괴와 스위스 은행 계좌를 몰래들고 빠져나가면서 대통령의 자리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영화가 ‘서울의 봄’이다. 황정민은 군사반란을 주도하는 전두광 역할을 맡아 권력을 찬탈한다.
전두환을 빗댄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거치는 필수관문도 있다. 바로 헤어스타일을 똑같이 바꾸는 ‘비주얼 도전’이다. 서현우는 역할을 위해 6개월 동안 머리카락을 민 상태로 촬영에 임했다. 황정민 역시 4시간에 걸친 특수 분장을 통해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 “전직 대통령 이름 사용 무관하지만…”
드라마 ‘제5공화국’을 제외하고 ’26년’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서울의 봄’까지 전두환이 주인공 혹은 핵심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실명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영화는 어느 정도의 픽션이 들어가는 만큼 원치 않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제5공화국’ 제작진은 전두환을 비롯해 현대사를 관통한 실존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에 대해 법적인 문제가 일어날까 봐 방영 전부터 변호사와 함께 대본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방송 당시 제5공화국 주요 인물들이 드라마 속 묘사를 두고 반론보도를 요청했고, 관련한 소송도 제기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완전하게 과거로 가면 역사를 다루는 폭이 넓지만, 시대가 가까울수록 여전히 생존한 인물들도 있기에 영화로 창작하기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전두환처럼 여전히 국민의 기억이 명확하게 남은 현대사의 인물을 영화로 다루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과 시비를 사전에 막기 위한 제작진의 선택이라는 의견이다.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의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무관하지만 제가 변형시킨 인물이라 이름을 바꾸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감독은 “전두광을 악마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며 “그는 인간이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존 인물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사람이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의 전두광은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본인이 승리한 순간에 ‘이 승리가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 나쁜 부메랑이 돼서 올 수 있다’고 순간적으로 느꼈다고 생각했다”며 “양심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갖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