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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쉽게 답할 수 없어, 더 오래 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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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능한 사랑’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해고 노동자인 남편 호석, 열 살 난 아들 철이와 함께 살고 있는 미옥은 어느 날 호석의 전 직장 동료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녀의 남편 상우를 만난다.

예지는 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며 미옥 부부에게 인터뷰를 제안하고, 인터뷰를 꺼리는 호석과는 달리 미옥은 예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카메라 앞에 선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예지는 미옥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며 친구가 되자고 제안한다. 

미옥은 자신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예지와 가까워지는 것이 기쁘면서도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종종 예지의 촬영을 돕는 상우와 마주칠 때마다, 미옥은 그가 친절하고 따뜻하게 자신을 대하지만 좀처럼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

예지는 인터뷰를 거부하는 호석의 마음을 열기 위해 다 같이 여름휴가를 가자고 제안하고, 두 가족은 서해안에 있는 상우의 여름별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의 숨은 욕망을 드러내게 된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 분)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분),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분)와 그의 남편 상우(조인성 분),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으며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도 함께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 영화답게 쉽게 감상을 내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노동과 자본, 계급과 욕망, 사랑과 관계, 나아가 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창작자의 윤리까지 여러 겹의 질문을 쌓아 올리는데 어느 하나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16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저항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고 또 곱씹게 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계급에 놓인 두 부부를 마주 세우는 방식이다. 자본가인 상우와 영화감독 예지, 해고 노동자인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분명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들의 만남은 갑과 을,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만나 같은 자리에 앉고, 함께 먹고 마시며 가까워진다. 미옥은 예지에게 거리낌없이 충고를 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평등한 관계다.

그럼에도 계급의 차이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틈에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남긴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체감하게 하는 인물이 상우다. 

상우는 돈도 많고 잘생겼으며 매너도 좋다. 아내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이고 미옥과 호석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은 상우에게 자연스럽게 밴 사회적 얼굴에 가깝다. 누구든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품을 수 있지만 그들과 완전히 섞이지는 않는다. 노골적인 오만함이나 악의 없이도 자신이 속한 세계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상우는 영화 전반에 묘한 긴장과 불편함을 불어넣는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꺼낸 이야기, ‘가능한 사랑’ 스틸. / 넷플릭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꺼낸 이야기, ‘가능한 사랑’ 스틸. / 넷플릭스

반면 미옥은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숙이 묻어뒀던 욕망과 마주한다. 특히 상우에게 자꾸만 시선이 향하지만 미옥이 정말 탐했던 것은 상우라는 남자만은 아닌 듯하다. 상우를 통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유를 향한 욕망을 꺼내고, 마침내 온몸으로 자유의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상우가 다가오는 순간 미옥은 물러난다. 다른 삶을 욕망하면서도 그 욕망에 자신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가치와 가족의 가치를 지키는 미옥의 선택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남는다.

예지 역시 서로 다른 마음과 욕망 사이에 놓여 있다. 미옥과 호석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곳에는 이들의 삶과 고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 싶은 창작자의 욕망이 자리한다.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기보다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진심과 욕망이 뒤엉킨 예지의 시선은 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창작자의 태도와 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영화의 형식으로도 이어진다. ‘가능한 사랑’은 극영화임에도 해고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심리치료 과정을 상당한 비중으로 담는다.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을 따라 실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방식으로 해고와 파업, 그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본다. 카메라는 누군가의 고통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좀처럼 카메라 앞에 서지 않던 호석도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해고와 파업을 직접 겪은 그는 누구보다 큰 상처를 품고 있지만 네 사람 중 가장 말이 없는 인물이다. 예지의 카메라 앞에서 그날의 기억과 감정을 쏟아내는 호석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복잡하게 얽힌 다른 인물들의 욕망과 달리, 사랑하고 믿었던 이들에게 버려진 호석의 아픔만큼은 어떠한 해석 없이도 고스란히 가슴에 와닿는다.

그런 호석의 감정은 설경구를 통해 오롯이 전달된다. 첫 등장부터 별다른 대사 없이 거친 숨소리만으로 호석이 품고 있는 분노와 상처를 고스란히 전한다. 스스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여러 감정이 뒤엉킨 호석의 내면을 숨소리 하나로 느끼게 한다는 점이 놀랍다. 애써 눌러둔 감정이 순간순간 건드려질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호석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끝내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순간에는 함께 숨죽이게 만든다.

이창동 감독은 “삶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지 인간이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유’에 대한 생각이라고 믿는다”며 “한 가지 분명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사랑, 그리고 결국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야 하는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23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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