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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글래디에이터’라 불렸지만 폭망했는데… 25년 만에 넷플릭스 공개돼 1위 오른 영화

나우무비 조회수  

「무사」

영화 「서울의 봄」으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김성수 감독의 25년 전 대작이 뜻밖의 역주행을 시작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무사」가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하루 만에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1위에 오르며 다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무사」는 고려 우왕 1년인 1375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간첩 혐의를 받고 사막에 버려진 고려 무사들의 처절한 귀환기를 그린 작품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이들은 원나라 기병에게 납치된 명나라 부용공주를 구하면서 거대한 싸움에 휘말린다.

지금 다시 봐도 놀라운 건 출연진이다. 정우성이 노비 출신 호위무사 여솔을, 주진모가 용호군 장수 최정을 연기했고 안성기가 노련한 무사 진립으로 중심을 잡았다. 여기에 당시 「와호장룡」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던 장쯔이가 명나라 부용공주로 합류했다. 송재호, 박정학, 유해진, 우영광 등도 출연했다.

제작 규모는 더욱 놀라웠다.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대 수준인 총제작비 약 70억 원이 투입됐고 중국 대륙을 돌며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1만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고 현장 스태프만 3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다.

특히 「무사」의 백미로 꼽히는 것은 액션이다. 광활한 사막과 황무지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 돌진하는 기병대와 검·창이 맞부딪치는 전투를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화려한 와이어 액션보다는 무기와 갑옷의 무게가 느껴지는 거친 전투를 택하면서 당시에는 할리우드 대작 「글래디에이터」, 「브레이브하트」와 비교되기도 했다.

개봉 당시 평가도 스케일과 액션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다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캐릭터와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당시 첫 공개 후 “액션과 스펙터클은 놀랍지만 드라마와 캐릭터의 매력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결국 천문학적인 제작 규모에 비하면 극장 흥행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2001년 9월 추석 시장을 겨냥해 개봉한 「무사」는 초반 관심을 끌었지만 2주 뒤 등장한 신은경 주연의 코미디 「조폭 마누라」가 예상 밖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경쟁에서 밀렸다. 당시 집계로 「무사」는 순제작비 55억 원에 서울 관객 약 87만 명을 기록한 반면, 「조폭 마누라」는 순제작비 25억 원으로 서울 관객 146만 명을 동원했다.

그렇다고 「무사」를 단순한 실패작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당시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대규모 중국 로케이션과 사실적인 전쟁 액션을 구현했고, 25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 사극 액션을 이야기할 때 꾸준히 소환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에도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프랑스에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상당한 규모인 최소 개런티 40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시간의 반전이다. 극장에서는 막대한 제작비와 기대에 비해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영화가 25년 뒤 OTT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비트」, 「태양은 없다」를 거쳐 「무사」라는 거대한 도전에 나섰고, 훗날 「서울의 봄」으로 천만 감독이 된 김성수 감독.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야심 찬 작품 중 하나였던 「무사」가 2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새로운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무사 드라마, 액션2001김성수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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