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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너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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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뒤상 [샘] 1917.=작품 이미지
                   마르셀 뒤상 [샘] 1917.=작품 이미지

[뉴스플릭스] 이동현 기자 = 행위적 자태에서 우리는 철학을 발견하고, 철학적 사유 속에서 예술의 자유를 인식한다. 예술은 감각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유에서 완성된다.

아름답고 미적인 예술적 논평은 이제 지겹도록 반복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예술과 해석을 접해왔고, 반복된 감정의 이입은 사골을 우려내듯 소진되어왔다.

음악은 귀로 듣고, 미술은 눈으로 본다는 전통적인 예술의 방식은 이미 여러 시대를 거치며 전복되었다.

오늘날의 행위적 예술은 점점 난해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온건한 미적 사고를 넘어 철학적 사유로 밀어붙이려는 시도 속에서, 이미 정해진 질서와 규범은 뒤집히고 편안한 미보다 불편한 괴이가 미래 예술의 자리를 차지해가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풍경조차 녹아내리고, 그 속에서 번지는 염증과 회의, 그리고 절망의 감각이 오히려 현대예술을 대변하는 정서가 되었다.

형이상학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의 사유는 스콜라 철학을 거쳐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정신을 지탱하는 틀이 되었다.

그러나 베이컨의 경험론적 반항을 기점으로 철학은 다시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종교철학이 지닌 한계를 날카롭게 짚어내며 시대에 굳어진 관념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외쳤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기원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오류의 근원을 내면으로 돌려 세웠고, 이를 수학적 방법으로 풀어내려 했다. 스피노자는 인식과 존재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며, 사유를 삶으로 확장시키는 실천적 철학의 길을 열어갔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에도 이어져 아방가르드라는 거대한 변혁을 낳았다. 이제 예술은 더 이상 감각 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미술은 눈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음악은 귀가 아니라 감각 전체로 듣는다.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는 음악을 시각으로 번역한 형상이 되었고, 음악 또한 심장으로 토로되는 감각으로 확장되었다.고요한 언덕 위에 촘촘히 자리한 초롱불 켜진 초가집 풍경에서 서양인이 느끼는 낯선 감동처럼, 이제 예술은 보이는 것을 넘어 상상 가능한 서사와 개념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전제 없는 사유를 위해 익숙한 세계를 부수고, 무한한 사건과 차이를 발생시키는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기대하게 된다.

꽃은 단순한 외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향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의미 없는 장식적 미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어 새로운 매체와 기술의 등장은 모든 맥락적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기존의 형식적 질서를 밀어낸다.

19세기에 등장한 사진은 미술의 영역에 균열을 일으켰다. 사진은 어느새 포스트미디어로 확장되었고,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며 아카이빙과 데이터베이스 중심의 미학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미술 내부의 자기비판적 성찰은 설치미술과 조각을 중심으로 장소성과 기념비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며, 고정되어 있던 예술의 기반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새로운 매체와 기술은 가능성을 확장했고, 자기 성찰은 미술의 경계를 다시 그려내고 있다.

결국 만물은 ‘서로를 가리키는 맥락’ 속에서만 존재한다. 세계는 의미의 그물망이며, 존재는 은닉된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열림’이다.만물이 포함된 예술은 그 드러남이 이루어지는 자리, 곧 열린 터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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