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자다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 돈때문에 일어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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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아닌, 철저히 인간의 욕심과 부주의가 불러온 인재였다.

삼풍백화점은 건축 당시부터 부실시공의 문제가 있었다. 설계에 들어가야 할 철근과 콘크리트를 절반으로 줄이고, 기둥의 직경도 80cm에서 60cm로 축소시켰다. 또한 용도를 바꾸면서 구조적으로 필요한 기둥까지 없애버렸다.

결국 건물은 원래 설계보다 훨씬 무거운 하중을 기둥에 떠안기게 되었고, 붕괴는 시간 문제였다.

사고 전부터 건물 곳곳에는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며, 정전도 반복됐다. 붕괴 당일에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영업을 중단할지 여부를 두고 회의에서 영업을 계속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고객과 직원의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시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오후 5시 57분, 다섯 개 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502명이 목숨을 잃고 937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참사가 벌어졌다. 시루떡처럼 건물이 내려앉았다.

이 사고가 인재라 불린 이유는 명확했다. 건축 당시 서초구청 일부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부실한 시공을 눈감아주었고, 경영진은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구조를 변경했다. 이미 전문가들은 5년 동안 버틴 것이 기적이라며, 붕괴는 예고된 일이었다고 증언했다.

사고 직후 회장은 회사 재산도 함께 무너진 것이라고 거만하게 말해 국민적 분노를 샀다. 서초구청 관계자들은 잠적했고, 경찰은 그들을 공개수배하기도 했다.

더 큰 충격은 참사 현장에서조차 귀중품을 훔치려는 절도범들이 붙잡혔다는 사실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무려 800여 건의 절도가 적발됐다고 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안타까웠다. 유족들은 시신을 먼저 찾은 사람을 부러워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 사망자 502명 가운데 31명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살아남은 죄로 잘 살아야했고, 어떤 이들은 복권 맞은 거 아니냐, 보상금 얼마냐 받았냐는 말들이 상처가 되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 후 세월호 침몰, 순살 아파트 붕괴 등 돈때문에 안전이 무시된 인재가 반복됐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추모공원이 아닌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당시에 땅값이 떨어진다며 추모 공간을 반대했던 일이 있었고, 법원은 회장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지만, 그 형량이 충분했는지 관계자 모두 처벌받은건지 모르겠다. 이준 회장은 2003년 출소 후 사망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얼굴과 장소만 바꾸어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인간의 탐욕과 무책임이 빚어낸 사회적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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