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멜랑콜리의 시네아스트.’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한 미겔 고메스 감독을 표현한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지만 포르투갈 특유의 멜랑꼴리(우울감)와 유머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평가에서 비롯됐다. 올해 영화제는 ‘포르투갈의 거장’인 미겔 고메스를 초청해 장편 전작을 소개하고, 그의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조명한다.
그가 연출한 ‘그랜드 투어’는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이를 기념해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겔 고메스 감독은 “저의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곧 질의응답도 하게 될 텐데,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지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보였다. ‘그랜드 투어’는 지난 5월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고메스에 따르면 ‘그랜드 투어’는 잉글랜드 출신의 유명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1987년~1965년)이 20세기 썼던 책이 토대다. 그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두려워서 도망가는데, 여자는 계속해서 전보를 보낸다. 겁쟁이 남자와 고집스러운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영화가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랜드 투어는 20세기 초에 유럽 지역에서 유행했던,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 또는 일본에서 끝나는 아시아 투어 여정을 뜻한다.
“책을 읽을 당시 저도 결혼을 막 하려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더 재미있더라고요.”
● 실험정신으로 중무장한 ‘그랜드 투어’
‘그랜드 투어’는 1918년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버마(현 미얀마)에서 영국인 공무원 에드워드(곤칼로 와딩톤)가 약혼녀 몰리(크리스티나 알파이아테)와 결혼을 앞두고 도망치면서 시작한다. 에드와드와 결혼을 결심한 몰리는 사라진 연인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다.
영화는 정형화된 형식을 탈피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흑백 영화이지만, 불규칙적으로 컬러를 밝힌다. 에드워드는 몰리를 피해 싱가포르, 태국 방콕,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사이공, 일본 오사카 등으로 도피하는데 그때마다 각기 다른 아시안 내레이터가 그 국가의 언어로 에드워드와 몰리의 행동을 설명한다.
중간중간 인형극과 그림자극 등이 등장하고, 등장인물과 관련 없는 인물이 나와 열창을 한다. 분명 1918년도인데 마스크를 쓴 군중이 등장하거나 스마트폰을 쓰는 장면이 등장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고메스 감독은 내레이터가 바뀌는 설정에 “이 영화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며 “공간을 이동하는데, 언어 간의 여행이라고 한걸음 더 생각했다. 편집을 끝내고 내레이터가 태국어에서 베트남어로, 일본어로 바뀌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관객들의 몫입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것 같아요. 멍청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현대 배경을 두고)실수로 넣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죠. 아니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요. 관객이 그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고메스 감독은 “영화의 이미지는 현실과 판타지를 같이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영화를 ‘배터리’에 비유했다.
“배터리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두 개의 반대 극이 있습니다. 두 개가 있어야지 전기가 발전되죠. 한 가지만 있으면 안 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반대의 두 가지가 있어야 영화가 만들어져요. 저에게 두 가지는 ‘현실’과 ‘픽션’입니다. 저는 그 설계에 집착합니다.”
2019년부터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에서 영화를 찍고 있던 감독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중국의 국경이 폐쇄되자, 중국 현지에 촬영팀을 꾸렸다. 자신이 머물던 포르투갈에서 원격으로 중국 촬영을 감독하는 도전이었다.
“중국 국경이 개방될 때까지 2년을 기다렸지만 결국 안되겠더라고요. 100% 중국인으로 이뤄진 촬영팀을 꾸렸습니다. 당시 저는 리스본에 있었는데, 아주 초현실적인 촬영 방식이었죠. 기술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서 과연 가능할지 몰랐지만, 결국 해냈어요.”
영화평론가 출신인 고메스 감독은 2004년 ‘네게 마땅한 얼굴’로 장편영화 연출로 데뷔했다.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흑백 영화이자 세 번째 장편 ‘타부'(2012년)를 시작으로 미래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이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의 장편영화 8편을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고메스 감독의 영화관과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마스터클래스도 오는 5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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