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이상용
심장병 환우 기금 횡령 루머로 인해
미국까지 건너가 중노동한 사연
아직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기 전인 1944년 미숙아로 태어난 뽀빠이 이상용.
그가 1990년대 일어났던 공금횡령 누명 사건에 대해 언급한 가운데, 그의 근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린 시절 미숙아로 태어나 몸이 병약 했던 이상용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한 탓에 고등학교 시절 보디 빌딩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 입학한 대학교에서 ‘대학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1971년 건강한 몸을 이끌고 방송계에 진출해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이상용은 1990년대 중반 ‘심장병 환아들의 수술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으로 인해 방송일이 거의 끊기게 되었다.
이상용이 지난해 TV 조선 시사·교양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심장병 후원금을 횡령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처음 돕게 된 계기에 대해 “한 프로그램에서 사회를 보던 중에 어떤 부모가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와 함께 출연했다”면서 “수술비 때문에 정작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당시 MC출연료가 1만 4000원 수준이었다. 그때 수술비는 1800만 원 정도였다”면서 “그때 600만 원짜리 전세에 살던 내가 (사비로) 아이 수술을 빨리 시켰다”라고 밝혔다.
그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 야간업소에 오른 상황도 전했다. “그 아이의 수술비를 위해 3개월 정도 야간 업소에 다녔다”면서 “이후 소문이 났는지 집 앞으로 심장병 환우들과 부모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수중에 돈 없이 (수술비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라며 당시 본격적으로 환우들을 지원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그의 옆에 있던 김홍신 작가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 정말 억울한 사연으로 힘든 시기였다”면서 “심장병 환우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아준 우리 시대의 영웅이.. 갑작스럽게 모함에 처해졌다”면서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회상했다.
이상용은 이에 대해 “평생 바쳐 600명의 심장병 환우들을 수술했다. 그래서 (다들) 잘 살고 있었다”며 “근데 (언론에서) 수술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고 후원금을 내가 횡령했다고 해서 당시 국민들이 엄청나게 지탄했다”라고 언급했다.
당시 그는 74억여 원이나 되는 심장병 어린이 치료 비용 중 상당 부분을 부담했고, 당시 1번 수술하는 데 쓰인 비용이 무려 1800만 원 정도였다.
이상용은 이 당시 수술비의 1/3 밖에 되지 않는 집에 살고 있었던 그는 이 일로 생계가 끊겨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밥줄이 다 끊겨 미국으로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서 “사람 만나기도 무서웠다. 밖에도 못 나가고 스트레스가 극심해 한 달 동안 머리가 하얗게 셌다”라고 밝혔다.
“당시 정말 죽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면서 “건강 이상으로 인해 눈도 제대로 안 보였다”라며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미국에서 하루 13시간씩 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라고 전하면서 아내의 제안으로 다시 한국에 들어가 농촌에 가서 하루 2만 원씩 받으며 일한 상황을 덧붙였다.
이상용은 “이후 후원금 횡령 루머가 전부 무혐의로 판결이 났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방송 복귀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당시 무죄 선고가 나왔는데 신문에 안 내주더라”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이상용은 누명에서 무혐의 처리가 된 이후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