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1000만] 최민식부터 이도현까지 ‘역대급 앙상블’의 성취
영화의 후속편을 향한 바람보다 주연 배우 4명이 다시 뭉친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크다. 멀티캐스팅을 내세운 영화들은 많았지만 ‘파묘’처럼 주연 배우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역대급 앙상블’을 구축한 작품은 없었다. 빈틈 없는 앙상블의 힘이 ‘파묘’를 1000만 흥행으로 이끌었다.
지난 2월22일 개봉한 ‘파묘'(제작 파인타운프로덕션)가 이르면 3월23일과 24일 사이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의 치밀하고 대담한 세계관이 새로움을 원하는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지만, 사실 1000만 흥행의 ‘결정타’는 일명 ‘묘벤져스’로 불리는 주인공 최민식과 유해진·김고은·이도현의 완벽한 앙상블이 꼽힌다.
‘파묘’는 과학으론 도무지 설명할 길 없고, 이성으로도 판단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상의 묘를 팠더니 그 아래서 우리 땅의 기운을 막은 험한 것이 등장한다는 이야기. 무속 신앙과 풍수 지리 등 토속적인 소재가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여러 명의 스타들을 주연으로 발탁한 기존 한국영화 멀티캐스팅 작품들이 주로 오락성이 짙은 범죄물이나 대규모 시대극에 집중한 것 달리 ‘파묘’는 이처럼 다소 황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마이너한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결과는 드라마틱하다.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주연 4명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성취를 맛보고 있다.
● 최민식… ‘항일’의 목소리로 ‘명량’ 이어 또 1000만
배우 최민식은 ‘파묘’를 촬영하는 내내 “장재현 감독을 돕는 조감독이 된 마음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 같은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최민식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작품이 공개된 직후, 최민식의 말은 증명되기 시작했다.
영화가 숨겨 놓은 항일의 이야기가 개봉 초기 일부 관객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흔들림없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끈 주역은 다름 아닌 최민식이다. 경험 많은 풍수사 상덕 역을 통해 최민식은 관객을 무속이 깃든 풍수의 세계로 안내하고, 이내 우리 땅에 박힌 아픔의 역사까지 파헤치는 여정으로 이끈다. 그 과정에서 최민식은 역량과 내공을 남김 없이 쏟아냈다.
극 후반부 항일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최민식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한다. ‘험한 것’의 존재를 밝혀내고, 그와 맞붙는 과정은 모두 비현실적인 상황이지만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게 만든 인물, 역시 최민식이다.
덕분에 최민식은 2014년 이순신 장군으로 맹활약한 영화 ‘명량'(1761만명)에 이어 생애 두 번째 1000만 영화를 품에 안았다.
특히 항일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1000만 성과를 거두는 최민식의 흥행 공식도 눈에 띈다. ‘명량’ 역시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7년을 배경으로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을 물리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을 그렸다. ‘명량’은 국내 극장 개봉작 가운데 역대 흥행 1위에 등극한 작품이기도 하다.
● 유해진… 대체자 없는 ‘흥행 엔진’ 4번째 1000만 축보
풍수사 상덕과 오래 호흡을 맞춘 덕분에 집안의 대소사까지 훤히 알고 있는 장의사 영근은 교회 장로님이지만 무속에 기반한 풍수와 무속에도 열린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전직 대통령의 염을 하고 국장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강하지만, 부잣집의 묘를 이장할 땐 관에서 쏟아져 나온 금붙이를 슬쩍 옷 속에 숨기는 영약함도 지녔다. 열지 말라는 관뚜껑을 열고 나쁜 일을 벌일 것 같은데 알고보면 누고보다 선한 마음을 지녔고,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의리를 지킨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인물, 장의사 영근을 유해진이 아닌 누가 표현할 수 있을까.
유해진은 최근 ‘공조’ 시리즈를 비롯해 ‘달짝지근해 7510’ ‘올빼미’ ‘봉오동 전투’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으로 활약하며 흥행도 맛봤다. 이번 ‘파묘’는 최근 주연한 작품들과 비교해 극의 주도권이 상대적으로 최민식과 김고은에 있다는 점에서 유해진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작품만 좋다면,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다면, 유해진에게 문제될 건 없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황당할 수 있는 ‘파묘’의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은 인물도 바로 유해진이다. ‘험한 것’에 맞서는 상덕, 무속인 화림과 달리 영근의 시선은 의심을 품은 관객의 눈높이와 맞닿아 있다. ‘파묘’의 이야기가 스크린 안에만 머물지 않고, 스크린 밖 관객까지 끌어들인 데는, 유해진이 소화한 영근이 강력한 엔진으로도 작동했다.
그 선택으로 유해진은 데뷔 후 통산 4번째 1000만 흥행작을 안았다. 2005년 ‘왕의 남자'(1051만명)로 시작해 2015년 ‘베테랑'(1341만명), 2017년 ‘택시운전사'(1218만명)를 잇는 새로운 성과다.
● 김고은… ‘파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존재감
김고은은 ‘노력파’로 유명하다. 영화와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이 작품과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만, 김고은은 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뮤지컬 영화 ‘영웅’을 찍을 땐 제작진이 그쯤하면 됐다고 만류하는 데도 소화해야할 노래 연습을 위해 밤낮을 쏟았다.
이번 ‘파묘’도 마찬가지. 화려한 외형은 물론 넘볼 수 없는 실력까지 갖춘 젊은 무당 화림을 위해 촬영 전부터 실제 무속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오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전문 직종’의 캐릭터를 맡는 배우들이 실제 그 직업을 가진 인물과 만나 사전 취재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김고은은 이번에도 달랐다. 영화 자문으로도 참여한 무속인들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술도 나누면서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자칫 관객이 느낄 이질감을 좁히기 위한 철저한 준비의 과정이었다.
사실 30대 초반의 배우가, 돼지를 칼로 자르면서 ‘신들린’ 연기를 해야하는 젊은 무당 역할에 도전한 것부터 모험의 시작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뒤 대살굿 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김고은은 후반부 ‘험한 것’을 속이는 장면이나, 생사를 오가는 동료 봉길(이도현)을 구하기 위해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도깨비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쉼 없이 빼앗는다.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신을 속이는 대살굿을 펼치는 김고은의 연기를 옆에서 지켜보던 최민식은 “저러다 정말 신들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걱정할 정도. 그만큼 역할과 작품에 몰입했다.
김고은은 ‘파묘’로 데뷔 후 처음 1000만 기록을 달성했다. 2012년 영화 ‘은교’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해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면서 스타로 떠올랐지만 이번 ‘파묘’를 계기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앞으로 김고은에 대한 평가는 ‘파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 이도현… 작품 선구안으로 더 빛나는 ‘대세’
최민식과 유해진, 김고은과 비교해 연기 경험은 미약하지만 존재감은 이들 못지 않다. 배우 이도현에게 ‘파묘’는 첫 영화 출연작. 데뷔작에서부터 1000만 흥행을 달성한 그는 이견을 가질 수 없는 ‘대세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장재현 감독은 이도현이 연기한 전직 야구선수 출신의 젊은 무당 봉길 역을 두고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앞서 감독이 연출한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 ‘사바하’의 이재인을 잇는 새로운 얼굴의 발탁이다. 수많은 신인들이 후보에 오른 그 자리를 이도현이 차지했고,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활약으로 ‘묘벤져스’를 구축했다.
이도현은 처음 주연을 맡은 KBS 2TV 드라마 ‘오월의 청춘’을 시작으로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 이어 출연한 ‘나쁜 엄마’를 거쳐 이번 ‘파묘’까지 빠짐없이 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흥행 보증 수표’로 부상하고 있다. 주연한 작품이 어김없이 성공한다는 사실은 탁월한 선구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맡은 배역과 작품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도현이 그린 봉길은 묘에서 나온 ‘험한 것들’로 인해 공포심이 한껏 고조된 순간마다 위기를 돌파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봉길의 든든함은 스크린 밖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봉길과 함께라면 ‘험한 것’과 마주해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도 준다. 모두 이도현의 힘이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이도현은 지금도 숱한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받고 있다. 1000만 흥행까지 거둔 만큼 그와의 작업을 원하는 제작진의 러브콜을 더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