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큰 인기를 누렸던 디즈니+ ‘무빙’에서 치킨 가게를 운영하며 극중 딸 고윤정을 홀로 키웠던 아버지 역의 류승룡. 작품 속 그의 부성애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치킨과 딸. 이 두가지는 류승룡의 연기 인생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신작 ‘닭강정’도 그렇다.
갑자기 닭강정을 변한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류승룡. 그리고 그와 함께한 안재홍, 두 사람의 활약이 담긴 ‘닭강정’은 현재 시청자들의 엇갈린 평가 속에 인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닭강정’, 적당히를 모르는 이병헌의 말장난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과 민아를 짝사랑하는 백중의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연출·극본 이병헌)은 그 설정부터 두 눈을 의심하게 한다.
박지독 작가의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한 ‘닭강정’ 속 세상은 다소 황당무계하고 기이하다. 2019년부터 연재된 웹툰은 ‘사람이 닭강정이 된다’는 기발한 소재와 현대와 조선시대를 넘나들고 외계인까지 등장하는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주목받았다.
만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닭강정’을 드라마화하면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 또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지난 3월15일 공개된 이후 ‘닭강정’에 대한 반응은 양분됐다. 넷플릭스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닭강정’ 영상에는 “뇌 빼놓고 멍 때리면 꿀잼”과 “나만 웃음 포인트를 못 찾는 건가”라는 상반된 평가가 눈에 띈다.
● ‘닭강정’에서 ‘적당히’는 찾지 마라
이야기는 닭강정을 사들고 아빠 최선만(류승룡) 사장을 만나러 온 최민아(김유정)가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고백중(안재홍)의 말을 듣고 의문의 기계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백중이 떨군 닭강정에 무심코 “닭강정”을 외친 민아는 그렇게 닭강정이 된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딸바보’ 선만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은 민아를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기계의 정체를 파헤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계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면서 조선시대 지구에 놀러 온 외계인, 기계를 추적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미물로 2년이나 살아간 존재 등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닭강정’은 진입장벽이 높은 설정에 극중 유인원(유승목) 박사의 말처럼 ‘적당히’를 모르는 전개가 펼쳐진다. 유 박사는 선만과 백중에게 상황을 설명하다가 “이게 뭐야? 이야기가 이게 뭐 적당히 해야지”라며 마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대뜸 화를 낸다. 그렇지만 ‘닭강정’은 극 초반부터 명확하게 이 작품이 걸어갈 길을 보여준다.
1회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노란 바지의 분홍 셔츠, 파란 조끼를 입은 고백중을 바라보는 한 여학생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백중의 모습을 보며 여학생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이걸 계속 보고 있냐고? 뭐랄까? 딱한데 보게 돼. 이상해. 보게 돼.”
드라마 시청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소는 이병헌 감독 작품의 특징 중의 하나인 허를 찌르는 ‘말맛’과 류승룡, 안재홍 등을 비롯해 ‘닭강정’의 세계에 완벽하게 버무려진 배우들의 열연이다.
선만이 닭강정을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민아야”를 외치거나 실수로 다른 닭강정들과 섞이자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 모습은 황당하지만, 애틋한 부성애가 느껴진다.
‘닭강정’에는 선만과 백중의 실없는 농담과 말장난, 4차원 개그가 난무한다. 이병헌 감독은 류승룡과는 영화 ‘극한직업’을, 안재홍과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함께했다. 이 감독은 두 배우의 능청스러운 매력을 한껏 살려냈다.
특히 진지한 상황 속에서 유 박사가 ‘멜로가 체질’을 언급하며 “2번 이상 봐야 더 재밌다. 꼭 봐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저항 없이 폭소가 터져 나온다. 이병헌 감독은 본인의 전 작품까지 영업하며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한다.
여기에 외계인들이 선만, 백중 등 인간들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지구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미사일과 핵이라며 이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B급 코미디의 정점을 보여준다.
‘닭강정’은 극 후반부 원작에서 더 나아가 외계인들의 말을 통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의 욕심으로 뜻하지 않게 지구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했던 외계인이지만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무기도 전쟁도 모두가 사라질 것”이라며 “그 진화의 정점에서 모두가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무려 200년이나 지구에 머물며 인간을 바라본 외계인의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다소 직접적인 메시지에 대해 이병헌 감독은 “원작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바람을 대사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연출·극본 : 이병헌 / 출연: 류승룡, 안재홍, 김유정 외 / 플랫폼: 넷플릭스 / 공개일: 3월15일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코미디, 판타지, 미스터리 / 회차: 10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