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 여자배우와 애틋했던 나훈아의 화려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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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난다”는 ‘가황’ 나훈아, 스크린 맹활약 추억도

나훈아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 사진제공=예아라·예소리
나훈아의 공연 모습. 사진제공= 사진제공=예아라·예소리

‘가황’ 나훈아(77·최홍기)가 데뷔 58년 만에 가요계 은퇴를 시사한 가운데 그의 가수로서 삶과 함께 배우로서도 각광받았던 사실이 새삼 눈길을 끈다.

나훈아는 27일 오는 4월 인천을 시작으로 여는 전국 투어 ‘고마웠습니다(LAST CONCERT)’를 마지막 무대 삼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소속사 예아라·예소리를 통해 공개한 편지에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면서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소리로 외쳐드리고 싶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은퇴 결심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뒤 특유의 카리스마와 현란한 무대 퍼포먼스, 뛰어난 가창력과 감성으로 가수로서 오랜 시간 대중을 사로잡아온 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스크린의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나훈아는 1971년 정진우 감독의 ‘풋사랑’으로 본격적인 스크린 주연에 나섰다.

나훈아의 스크린 주연 데뷔작 '풋사랑'의 한 장면.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나훈아의 스크린 주연 데뷔작 ‘풋사랑’의 한 장면.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앞서 1967년 ‘관광열차’와 1971년 ‘인생유학생’에 조단역으로 출연한 그는 극중에서도 인기가수 역을 연기했다. 당대의 톱스타 문희·노주현과 호흡하며 삼각관계에 빠진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나훈아는 당시 남진과 함께 가요계 팬덤을 양분하며 ‘원조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경쟁은 스크린으로도 이어져서 두 사람은 각기 연기로도 맞섰다. 그런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섰다. 1971년 최인현 감독의 ‘기러기 남매’였다.

영화는 극중 여대생 문희와 그의 오빠 나훈아, 그리고 문희를 사랑하는 재벌가 외아들 남진의 이야기를 그렸다. 신분의 차이로 이루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문희와 남진, 두 사람을 바라보는 오빠 나훈아의 갈등과 화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영화는 두 가수의 경쟁구도만큼 뜨거운 화제의 시선을 모았다.

나훈아와 남진이 함께 출연한 영화 '기러기 남매'의 포스터.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나훈아와 남진이 함께 출연한 영화 ‘기러기 남매’의 포스터.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1982년 5월1일자 동아일보는 두 사람이 당시 싸우는 장면을 촬영하다 실제 때리고 맞는 장면을 연출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2년작 ‘친구’에도 함께 출연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가수와 배우로서 한창 활동하던 1976년 7월 나훈아(29)는 10살 연상의 배우 김지미와 약혼한 사실을 공개해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4년 전인 1972년 한 공연 무대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쌓았던 두 사람은 이때 결혼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화제에 기댄 충무로는 두 사람을 한 작품에 출연시키려 애썼다.

1977년 3월7일자 경향신문은 “김지미 양의 영화 출연 계획이 좌절됐다”면서 “김 양은 영화 ‘과부’에 출연키로 했었는데 영화사 측에서는 약혼자인 나훈아 군과 함께 출연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 양인 나 군과의 동시출연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두 사람은 행복한 사랑을 나누다 1982년 결별하고 말았다.

나훈아는 그해 또 한 편의 영화를 선택했다. 이원세 감독이 연출하는 ‘울긴 왜 울어’였다.

나훈아의 1969년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는 1983년 개봉 당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 타이틀을 바꿨다.

1982년 6월28일 경향신문은 “제작 경쟁이 치열했던 예”로 이 영화를 소개하며 주연 나훈아에게 “8개 영화사가 상당한 출연료를 제시, 서로 영화화겠다고 나설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나훈아는 500만원에 합동영화사(대표 곽정환)와 계약을 끝냈다”고 밝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한 장면.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한 장면.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누리집 갈무리

무려 2000만원까지 치솟았던 출연료가 4분의 1로 줄어든 것에 대해 신문은 “개런티를 적게 주는 대신 다른 스태프·캐스트(출연진)에게 많은 개런티를 줘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선의였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당대의 톱스타 정윤희와 연기를 펼쳤다. 인기가수 역으로 사랑과 집착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1982년 10월25일자 경향신문은 “두 사람 모두 프로답게 농도 짙은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이듬해 나훈아는 정윤희 그리고 유지인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한 장미희와 함께 새 영화를 선보였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 인연을 맺은 이원세 감독의 ‘삼일낮 삼일밤’이었다.

이 작품을 끝으로 나훈아는 더 이상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출연작 대부분이 크게 흥행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는 가수로서 활동에 매진해갔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이 같은 연기 활동을 통해 모두 23편의 작품을 필모그래피(한국영상자료원 집계 기준)에 새겨 넣었다. 다만 대표곡만을 묶어 담은 두 편과 다른 가수들과 함께한 공연 영상 그리고 가수로서 단역 출연한 ‘관광열차’ 등을 제외하면 18편의 극영화가 온전히 연기자로서 그의 이름을 주조연 크레딧에 올려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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