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판 돈 하루 당겨 받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비즈워치 조회수

현재 2일(T+2일)이 걸리는 주식 결제일을 하루 앞당기는(T+1일) ‘주식 결제주기 단축’이 또 미뤄졌다. 금융당국이 당초 내년 10월 시행을 목표로 준비를 했지만, 이번엔 그 다음해로 1년 더 미뤄졌다.
결제주기 단축은 지난해 10월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증권사 등 관계기관과 워킹그룹을 구성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적인 자본시장 불합리 사례로 언급하며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거래소와 예탁원이 워킹그룹을 만든지 1년이 흐른 2일에도 결제주기 단축은 여전히 추진중인 과제로 남았다. 언제 어떻게 당길 지 밑그림을 그리는 로드맵을 이제서야 공개한 수준이다.
그마저도 확정되지 않은 목표에 가깝다. 박상욱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장은 2일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2028년은 해외 사례를 감안해서 도전적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가시적인 목표는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2028년 하반기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로 오는 2028년 하반기 중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인데, “주식은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모레 주냐”는 투자자들의 원초적인 궁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간단한 문제 아니더라…”미국도 2년반 걸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등 증권유관기관이 2일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을 공동 발표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시행 시기 지연에 대한 해명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선 거래소와 예탁원의 결제시스템만 개편하면 금방 될 것 같은데, 다시 또 1년 뒤로 시행이 늦춰지면서 불만도 커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행시기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복잡함’으로 꼽혔다. 현재 국내외 금융회사들은 2일 동안 ‘매매 → 확인 → 정정 → 보증 → 청산(상계) → 배분 → 매칭 → 환전 → 승인 → 결제’의 10단계 이상 결제업무를 거치는데, 이를 하루 당기려면 금융업계 전반의 전산시스템 및 업무체계 변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준비기간도 확보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결제절차는 그대로인데, 업무를 처리할 가용시간은 하루 단축되기 때문에 야간과 새벽 근무인력이 필요하며, 안정적인 결제 이행을 위해 거래소와 예탁원뿐만 아니라 관련 모든 금융회사의 전산개발과 인력운용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결제주기 단축을 위해선 증권사 54곳, 자산운용사 468곳, 수탁기관 20곳, 사무관리사 10곳 등 600곳이 넘는 기관의 시스템이 일괄 개편돼야 한다.
박상욱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장은 “워낙 참여기관이 많고 대규모의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어서 중간중간 변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최종 이행 시기는 600여개 기관이 한 번에 가능한 시점이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제일 중요한 통합테스트도 실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이어 “미국도 통합테스트를 9차례까지 반복했고, 유럽도 통합테스트를 여러차례 준비중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전산개발과 관련한 특수성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이 2021년 12월에 발표됐고, 이후 약 2년 5개월여간 준비와 통합테스트를 거쳐 2024년 5월에야 도입됐다. 유럽도 2년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 10월에 시행을 앞둔 상황이다.
변화에 따른 비용부담도 걸림돌 중 하나다. 박 본부장은 “600개 기관의 역량과 구축현황이 달라 비용을 현재로서는 추산조차 할 수 없다”며 “초기 전산개발 비용뿐 아니라 구축 후 유지보수비용, 시차 대응을 위한 야간데스크 운영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상상 이상의 많은 자금이 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외국인 투자자가 싫다더라”
유관기관 워킹그룹이 내세운 또하나의 지연 사유는 외국인투자자다. 외국인투자자는 국내외 보관은행을 거쳐 결제하기 때문에 환전 등을 거쳐 국내 투자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되고, 이에 따라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은 결제주기 단축 시 시차로 인해 실제 업무에 활용할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데, 한국시장만을 위한 야간 데스크를 별도로 설치하는 등 노무 부담이 예상된다는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 증시 주요 업무시간은 유럽과 미국 현지에서는 새벽과 야간시간대가 된다.
이에 따라 준비기간도 상당기간 필요하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앞서 거래소가 해외증권사 5곳, 보관기관 6곳, 해외투자자 21곳 등 32개 해외기관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결제주기 단축을 위해 ‘최소 18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3.2%에 달했고, ’24개월 이상 필요하다’는 응답도 21.9%로 나타났다.
특히 33.3%에 해당하는 7개사는 준비 부족상태에서 결제주기 단축을 시행할 경우 ‘한국시장 투자 비중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응답도 내 놓은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결제주기 단축에 따른 해외투자자 우려에 대한 지적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해외 IR을 갔을 때, 런던과 싱가포르에서 그런 지적을 계속 받았고, 성급하게 되면 투자운용이 어렵다는 지적도 받았다”고 대답했다.
이와관련 증권유관기관은 업계와 외국인투자자의 안정적인 이행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업무표준안과 이행점검표 등을 올 연말까지 제공하면서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홍콩이 2028년말로 늦췄다
다른 아시아 국가 증시와의 연동도 결제주기 단축 일정에 영향을 줬다.
홍콩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결제주기 단축을 시행하려했으나 최근, 2028년 하반기로 그 일정을 연기했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의 경우 아시아 시장을 묶어서 본다는 측면에서 다른 아시아권 증시 동향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워킹그룹의 판단이다.
실제로 미국증시의 결제주기 단축은 캐나다와 멕시코와 함께 움직였고, 유럽은 EU국가로 묶여 동시에 결제주기 단축이 진행중이다.
박상욱 본부장은 “캐나다와 멕시코 등은 미국 시장 중심으로 강력한 상호 연계가 존재했고, 유럽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에 결제주기 단축뿐 아니라 다른 시장의 혁신이 있을 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있다”며 “아시아는 시스템과 각 시장의 배경, 참여자가 달라 굉장히 독립적이어서 협의가 쉽지 않지만, 아시아도 권역 내에서 함께 가는 부분을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결제취소? 우린 용납 못하는 편
워킹그룹이 민감하게 고려중인 또 하나는 시스템 불안정에 따른 결제실패 위험부담이다.
한국 증시는 세계적으로도 결제실패율이 0%에 근접할 정도로 가장 낮은 시장 중 하나다. 대만이 0%로 우리와 가깝고, 일본이 0.01~0.05%, 싱가포르는 0.02~0.13%, 홍콩이 0.05~0.12%로 뒤를 잇는다. 하지만 미국은 결제실패율이 2~3%로 높고, 유럽은 7.14%로 무려 7%를 넘긴다. 유럽은 결제 100건 중 7건 이상이 실패하는 셈이다.
박 본부장은 “해외에선 결제실패가 빈번한데 정서적인 차이가 있다”며 “우리는 완벽주의가 강해서 결제가 안되면 굉장히 중요하게 보지만, 서구권은 결제실패도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아시아증권산업협회(ASIFMA)가 결제주기 단축과 관련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외환시장 유동성과 결제업무 자동화 및 결제실패 증가 우려 등에 대해 우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시행 목표시기가 아닌 준비도에 따른 추진”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한국자본시장연구원도 “우리나라 증시가 세계적으로 가장 결제실패율이 낮은 시장이므로 결제안정성이라는 강점을 유지하면서 결제주기 단축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