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결과를 맞히는 게 아니라 ‘만드는’ 시장…예측시장의 덫

FORTUNE Korea 조회수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예측시장은 원래 터무니없어 보이던 사건에도 베팅을 붙여 그 결과를 ‘합법성’으로 세탁해 버릴 수 있다.” ‘Z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경제 해설가’로 꼽히는 경제학자 카일라 스캔런(Kyla Scanlon)이 이렇게 경고했다.

스캔런은 최근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기고문에서 “금융시장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인식을 움직여 왔지만, 예측시장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사건에도 너무 이른 ‘허용 구조(permission structure)’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 전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관찰했던 ‘시장 기대가 현실을 단순히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형성한다’는 역학을 끌어왔다.

주식·채권·통화·원자재 시장의 트레이더들은 이미 벌어진 사건에 반응하며 그 사건을 바탕으로 전망을 세운다. 스캔런이 보기에 예측시장이 이와 다른 지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마치 ‘합의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불편한 진실은 예측 기계가 사건 결과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인프라가 돼 버렸다는 것”이라며 “아무리 황당한 사안이라도, 시장이 민주적 제도(의회 등)가 숙의하기 전에 정치 이벤트를 먼저 처리해 버리면, 그 시장 결과가 정치적 행동의 ‘검증’이자 ‘허가’로 취급된다”고 설명했다.

스캔런은 예측시장이 사건에 가격을 매기는 속도 자체도 문제라고 봤다. 특정 결과의 확률을 두고 트레이더들이 입찰 경쟁을 벌이는 순간,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지는 다른 서사가 반박할 기회도 갖기 전에 하나의 내러티브가 먼저 굳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정당성은 점점 ‘불확실성을 가장 먼저 처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며 “시장은 속도를 위해 최적화됐고, 민주주의는 숙의를 위해 설계됐다”고 썼다. 또 예측시장에서는 큰손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고, 내부 정보를 가진 참여자가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논란은 이달 초 미국 군이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를 생포한 사건 이후 불거졌다. 작전이 실행되기 직전, 폴리마켓(Polymarket) 계정 하나가 ‘2026년 1월 31일 이전 마두로 퇴진’에 3만 달러 이상을 베팅했고, 이후 4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이 철저한 군사 기밀로 다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 정보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다.

이에 리치 토레스(Ritchie Torres) 미국 하원의원(민주·뉴욕)은 연방 공무원이 비공개 정보를 활용해 정책 결과에 베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1월 9일 CNN 인터뷰에서 “정부 내부자이면서 예측시장 참여자라면, 개인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 결정을 옹호할 유인이 생긴다”며 “그런 예측시장 ‘차익’은 연방정부 조직 안에 있을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스캔런은 일부 미디어 기업이 예측시장과 제휴해 특정 사건의 확률이 오르내리는 흐름을 상시 보도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런 보도가 시장이 ‘합의’라고 인식하는 방향을 더 밀어붙이고, 확률이 ‘전망’으로 바뀌어 결국 “불가피함이 곧 수용”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큰손이 시장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합의’로 보도되면,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가장 많은 정보(내부자든 아니든)를 가진 이들’의 자본 가중치가 반영된 베팅”이라며 “하지만 그런 베팅이 집단지성, 진실 기계 같은 언어를 통해 정당성으로 세탁되고, 규제는 느슨하게 따라붙는다”고 주장했다.

스캔런은 예측시장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힘을 약화시키려면 △고객확인(KYC) 기준 도입 △단일 참여자가 시장을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총 베팅액 공개 △합의가 즉시 형성되지 않도록 정산(settlement) 기간 연장 △이벤트 정산 결과에 ‘계약상 중재(contractual arbitration)’라는 라벨 표기 같은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스포츠 베팅과 예측시장은 Z세대 사이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재정 전망에 비관적인 분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이를 ‘수입원’처럼 바라보는 경향도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스캔런은 이 흐름이 자신이 널리 퍼뜨린 표현인 ‘경제적 니힐리즘(economic nihilism)’으로 이어지면서, ‘둠 스펜딩(doom spending)’, ‘디스일루전노믹스(disillusionomics)’, 그리고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현상까지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경로가 모두 좁아질 때 사람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며 “현실에서는 위험이 크더라도 ‘진짜 상승 여력’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 몰리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썼다. 이어 “사람들이 경제를 게임처럼 대하기 시작했다면, 전통적인 ‘승리 방식’이 더는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신호”라고 덧붙였다.

/ 글 Jason Ma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1
0
+1
0
+1
0
+1
0
+1
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