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AI, 작은 나라의 기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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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1/50748_44435_1654.jpg)
AI는 돈이 많이 든다. 프로세서는 비싸고, 데이터센터도 비싸다. 전기와 물, 데이터를 확보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같은 거대 국가는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다음으로 인터넷 미연결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 같은 지역이 과연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포춘 이노베이션 포럼(Fortune Innovation Forum)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제약이 많은 현실을 짚으면서도 중견 국가들이 자기 나라에 맞는 AI에 투자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계은행(World Bank) 동아시아·남아시아·태평양 지역 디지털 담당 리저널 프랙티스 디렉터인 마헤시 우탐찬다니(Mahesh Uttamchandani)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스몰 AI(small AI)’라고 부르는 영역에 진짜 기회가 있습니다. 훨씬 더 타깃이 뚜렷하고,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쓸 수 있으며, 대형 국가에서 나오는 거대한 혁신과 정면 승부를 벌일 필요도 없는 방향입니다.”
텔레노르(Telenor) 아시아 대표 욘 오문 레우하우그(Jon Omund Revhaug)도 작은 나라들이 ‘소버린 AI(sovereign AI)’를 키울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동의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각자 AI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자국의 언어와 규제, 문화에 맞춘 새로운 AI 모델 개발을 장려하고, 전력·데이터센터 같은 인프라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한 규제 장치도 마련하는 식이다.
다만 여전히 할 일은 많다. ST 텔레미디어 글로벌 데이터 센터(ST Telemedia Global Data Centers) 동남아 CEO 리오넬 여(Lionel Yeo)는 “지금보다 데이터센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면서 “동남아에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급성장하는 데이터센터 산업이 무엇보다 전력 공급에 달려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발전소에서 최종 수요지까지 전력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란 거다. 그는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규제 당국과 함께 전력망 구축과 송전·배전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도 걸림돌이다. 싱가포르는 물 사용량 증가를 우려해 2019년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 조호르(Johor) 주 역시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투자를 유치하려 애쓰는 한편, 2027년 중반까지 물 공급에 제약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탐찬다니는 물 문제도 “국경을 넘는 협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모든 나라가 각자 데이터센터를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물과 전력 같은 자원을 국가 간에 공동 활용하는 모델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재 부족도 큰 걸림돌이다. 로봇 소프트웨어 기업 인트린식(Intrinsic) CEO 웬디 탄 화이트(Wendy Tan White)는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실제로 구축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을 전 세계 어디에나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작업은 자동화도 쉽지 않다. 그는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 가운데 하나가 케이블 처리입니다. 지금까지 이 부분은 여전히 사람 손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화이트는 “아시아에는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아시아는 글로벌 제조 허브이면서, 동시에 인구 감소와 지정학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규제와 정책 측면에서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시아 각국 정부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우탐찬다니는 최근 필리핀 사례를 소개했다. 이 나라는 신규 통신 사업자 진입에 대해 의회의 개별 승인 절차를 없애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여전히 옛 제도와 규제가 곳곳에 남아 투자자에게 진입 장벽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규제를 걷어내는 것이 첫 단계라는 의미다.
다만 어느 시점이 되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는 이 때문에 일정 수준의 ‘자기조절(self-moderation)’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모두가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뛰어들고 있지만, 인프라·인재·전력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결국 기업들은 주어진 인프라 안에서 버텨야 합니다. 그 안에서 효율을 극대화해, AI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구조를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 글 Nicholas Gordon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