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조합장이 말하는 어민·자원 살리는 조건 7가지 [씨 마른 바다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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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어업 위태로운 수산업 현실

감척·TCA 등 어업행위 규제에도

연간 총어획량 갈수록 줄어

“면밀한 분석, 정책으로 이어져야”

고등어잡이 대형선망 어선 60여 척이 만선의 꿈을 안고 일제히 출항하고 있다. ⓒ뉴시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효과가 없다. 우리나라 어선이 6만7000척 정도 되다가 2만척 정도 줄여서 지금 4만 몇천 척 정도인데, 아직도 너무 많다. 해수부도 얘기하는 것처럼 줄이려면 노르웨이처럼 한꺼번에 확 줄여야 한다.”

김성호 경북 포항시 구룡포수협 조합장은 동해 지역 지속가능어업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대규모 감척’을 꼽았다. 지난달 조합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만난 그는 A4용지에 손수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과제 7가지를 써 내려갔다.

김 조합장은 1994년 시작한 감척 사업 결과로 현재는 어선이 2만여 척 줄어든 4만7000여 척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23년 등록어선 통계’에 따르면 등록 어선은 6만4233척이다. 지난 31년간 2조3758억원을 들여 2만1747척을 줄였는데, 결과적으로는 4400척 남짓 줄어든 게 현실이다.

어선 감척, 짧은 시간 대규모로

김 조합장이 대규모 감척 필요성을 말하면서 예로 든 노르웨이는 대규모 감척을 진행한 나라다.

공공재정 연구·분석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가 노르웨이 수산국 홈페이지를 분석한 결과 1960년대 노르웨이 등록 어선은 4만1464척이었다. 지속적인 감척 사업을 통해 1990년 1만7391척까지 줄이더니 2020년에는 5839척으로 줄였다. 1960년 대비 86%나 감소한 것이다.

노르웨이는 대규모 감척과 함께 어획쿼터제 등을 이용해 어획 강도를 낮췄다. 이런 구조개선을 통해 어선당 수산자원 생산량은 1994년 대비 2.5배 늘렸다. 참고로 우리나라 해역의 어선은 면적 대비 중국의 2배, 일본의 7배, 노르웨이의 12배 규모다.

감척 사업 속도가 더딘 부분은 다른 전문가들도 공감하는 문제다. 김도훈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언론 기고를 통해 “어선감척사업 기대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로는 어선감척사업이 소극적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라며 “연간 소규모 물량으로 너무 오랜기간 감척 사업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선 감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단기간 내에 대규모로 어획 강도가 높은 어선 위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팔았던 어민, 어업 복귀 막아야

감척 사업은 재진입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가 30년 넘도록 수만 대에 달하는 배를 줄였음에도 전체 어선 수가 그대로인 가장 큰 이유는 배를 판 사람이 다른 배를 다시 사기 때문이다.

2019년 감사원이 내놓은 수산어촌 지원사업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감척 사업에 참여했다가 어업에 재진입한 어업원이 125명이다. 이 가운데 27%가량은 폐업 지원금을 받고도 무조업 어선을 매입해 어업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는 배를 팔아 폐업 지원금을 받으면 5년(과거엔 3년) 내 같은 업종에 다시 진입할 수 없다. 이 경우 폐업 지원금 일부 또는 전체를 반납해야 한다. 감척 후 다른 배를 구매해 어업 행위를 다시 하는 경우가 늘자 지난 2021년 해당 규정을 마련했다.

문제는 재진입 금지 규정도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척 후 3년이 지나지 않아도 다른 업종으로는 얼마든지 재진입할 수 있다.

같은 업종으로 재진입하는 방법도 있다. 어업허가권을 가진 다른 사람 명의를 빌리는 경우다. 어민들에 따르면 이런 사례는 흔하다고 한다. 심지어 제도적 허점을 노리고 반복된 감척으로 폐업 지원금만 노리는 사례도 있다.

김성호 경북 포항시 구룡포수협 조합장.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규제는 과학적 분석·정확한 데이터로

김 조합장은 어업권과 어장, 어구 규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실제 어업 생산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어업허가를 재조정하고, 어항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했다. 어업 방식(어구 어업)을 다루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오는 2028년 총허용어획량(TAC) 제도를 모든 어선에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TAC 제도는 어종별로 자원 평가를 거쳐 정한 어획량 내에서만 어획을 허용하는 제도다. 현재는 고등어, 꽃게 등 15개 어종, 17개 업종(어획 방식)에 한해 지역 등을 제한하고 있다.

김 조합장은 TAC 제도를 전면 도입하려면 실제 어업별 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수반돼야 하고, 특히 기후변화가 이들 어업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 어업허가나 어장·어구에 대한 규제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 연구, 정책으로 연계하고 주변국 공유해야

어종 변화에 관한 연구를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김 조합장의 이런 주장은 기후 변화 문제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풀어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실제 기후변화에 따른 어장 변화는 바다라는 ‘공유 자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국가별 협력이 중요하다.

김 조합장은 “기후변화로 동·서·남해의 어종이 달라지는 만큼 어종별 산란 행태나 먹이, 성장 방식 등을 분석해 상호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각국에서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필요한 정책을 마련해야 장기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각종 연구 기관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 정책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석학들의 연구가 단순 정보에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조합장은 “매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해양수산전망대회를 한다. 해양수산 분야별 여건 변화 등을 분석하고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인데, 여기서 나온 결론들이 아직 정책으로 연계가 되지 않고 있다”며 “재해보험이나 어민 지원 등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물이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ODA 연계 해외어장 개척 확대

연근해어업 해외어장 진출도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김 조합장에 따르면 이미 100t 미만 한국 어선 3척이 아프리카에서 조업 중이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인근에서 골드 크랩, 오징어 등을 잡고 있다.

김 조합장은 “우리가 공적자금개발(ODA) 사업을 많이 하지 않나. 감척으로 줄인 연근해 어선들을 아프리카 ODA 국가에서 조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은 실제 가능한 방법”이라며 “이미 케냐 대사 등 관계자를 만나서 조업권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인데 해수부가 너무 소극적”이라고 아쉬워했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 수업에 전년대비 위판 실적이 기록되고 있다. 올해 위판량은 5월 현재 지난해보다 16억원 가량 줄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해수부가 연근해 어선의 해외 진출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문제다.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먼바다를 한 달 이상 가야 하는데, 운항 과정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해수부 판단이다.

김 조합장은 “아프리카로 가는 배는 인도양을 지나는 데, 인도양은 태평양과 달리 호수같은 바다다. 가끔 오는 폭풍은 그 시기를 비켜 가면 충분히 안전히 갈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연근해 어선과 별개로 해수부는 지난해 제4차 원양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계획은 ▲원양어선 국제규범 선도 ▲안정적인 선원 수급 ▲해외어장 확보 ▲원양산업 샌태계 고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어업협상 물꼬 터야

2015년 이후 중단된 한일어업협상도 재개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1999년 한일어업협정을 새롭게 체결하면서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주장이 겹치는 수역을 중간수역으로 하고, 그 바깥쪽을 상대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인정하고 EEZ 내에서의 상호 조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후 EEZ 내에서 조업할 수 있는 선박의 수와 어업별 어획 할당량, 입어 절차 등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매년 협상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이에 2001년 이후 양국은 매년 어업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거기에서 합의된 조건에 따라 상대국 EEZ에서 조업해 왔다.

그러다 2016년 협상(어업공동위)에서 일본은 교대 조업 수역 확대, 정부 이행 보증, 일본 EEZ 내 입어 연승어선 대폭 축소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무리한 주장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까지 협상은 중단한 상태다.

현재 업계에서는 한국 어선이 일본 EEZ에 입어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액이 연평균 최소 600억원 이상이라 주장한다. 게다가 한중 EEZ 조업 구역 밀집 현상이 심화하면서 어민들이 어장 확보 어려움이 가중돼 한일어업협정 재개 바람이 커지고 있다.

어업승계어가·재해보험 지원 강화

어민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확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어업인 후계자 육성이나 어업승계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 이는 어촌 소멸 위기 대책과도 연계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가업 승계에 대한 지원은 있어도 어업승계에 대한 지원은 없다. 답답한 게 지금 자꾸 도시 사람들을 어촌으로 유인하는 데, 그 사람들 몇 년 버티기 쉽지 않다. 오히려 어촌에서 태어나 수도권에 가 있는 40~50세대가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하는 게 더 낫다. 그 사람들은 어릴 때 아버지가 배를 타고 고기 잡는 걸 보고 돕던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어촌으로 오면 다시 이탈을 안 한다.”

이 밖에도 고수온으로 양식 수산물 폐사가 잦아지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재해보험도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수산물 재해보험 가입률은 30% 남짓에 그친다. 어민들은 재해 발생 시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느낀다.

보험료 부담도 크다. 보험 보장도 제한적이어서 모든 어업이 보상받기 어렵다. 자기부담금이 절반가량인데, 보험료 자체가 수천만원대라 어민으로서는 국가가 절반을 지원하더라도 가입이 꺼려진다.

김 조합장은 “지금 정부에서는 전체적인 부분을 고려하다 보니 어업인이 희생당하는 것들에 대해 보호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며 “어촌 토목공사도 좋지만, 이제는 어민들이 생계를 버틸 수 있도록,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더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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