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이발소에 가고 1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꽃을 심고 평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_영국 속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하며, 자연 속에서 지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초록색을 보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숲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적은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연구는 과학적으로 입증돼 온 바 있다.
자연식을 먹거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건강을 되찾았다는 일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회색빛으로 하늘을 가리는 건물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 사이에서 ‘촌캉스(농촌+바캉스의 합성어·농촌으로 떠나는 휴가를 뜻함)’, 귀촌이 유행하는 현상은 현대인들의 자연 결핍과 자연을 향한 회귀본능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모노리서치가 2023년 실시한 ‘농촌관광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농촌관광을 선호했다. 그 이유로는 ‘자연 풍경 감상’이 41.5%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 환경부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 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자연과 격리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올바른 생태감수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가로수나 정원용 식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이들은 점차 사라지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경제성 논리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계산된다. 식물이 살아 있다는 것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는 여전히 사회적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
식물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전파하고 보호 의식을 확산하고자 2023년 발표된 ‘식물 존엄성 선언’은 전문에서 “우리는 인간과 식물의 존중과 배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하며 종과 개체로서의 식물 존엄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르면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좋음을 지닌 존재이며, 원칙적으로 식물 역시 다른 생명체처럼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인간과 식물은 식물의 복지와 번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식물과 인간이 도구와 이용자의 관계 이상으로 나아가 연대하는 것, 이것은 미래세대와 생태계의 지속을 위해 현 인류가 받아들여야 할 필수적인 인식 전환이다. 식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물음 앞에서 이미 식물과 윤리적인 관계를 맺고 그 생명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식물해방일지’는 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식물이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보고자 했다.

미술관 자작나무숲, 그리고 ‘숲지기’ 원종호 관장
“인생을 내 의도대로 살기 위해, 인생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무를 심고 이 숲에 살고 있다”_원종호 관장
횡성군 우천면의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숲 미술관이다. 미술 전시관 내부는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듯한 나무 그림 수 점을 찾아볼 수 있도록 꾸몄고, 전시관 외부는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해 더욱 자연스러운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 겨울에 아름답다고 알려진 자작나무들은 따뜻한 봄날에도 은빛 껍질 아래 연둣빛 새잎을 틔우며 새로운 생명의 얼굴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제외한 모든 기간 숲에서 살아온 원종호 관장은 1990년대 초 백두산 천지의 자작나무숲을 발견했다가 숲을 가꿔야겠다는 강렬한 이끌림을 받아 숲지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됐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기본적으로 식물과 가까운 삶을 살아왔음에도 백두산 천지에서의 경험은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는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이발소에 가고 1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꽃을 심고 평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예전에는 그 속담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숲을 가꾼 뒤로 그 말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심었던 작은 나무가 매일 자라는 모습. 그들이 모여 숲이 되는 모습을 보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안내 지도와 표지판이 없어 발길 닿는 곳이 길이 되는 공간이다. 맑은 공기 속 흙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풀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보행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길목엔 들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며 특별한 경관을 자아낸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에서 방문객은 걸을 수 있는 길을 제외한 모든 풍경을 자연에게 양보하게 된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조성함을 통해 그곳에 방문한 이들을 자연과 뒤섞이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가 애정을 담아 전시회에 남겨둔 나무 그림과 사진에도 작품 설명이나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다.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원종호 관장이 직접 촬영한 사진. [사진제공=미술관 자작나무]](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6/CP-2022-0036/image-cc260e6d-0a46-44e7-b50b-e9bab4ee6a09.jpeg)
원 관장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시스템화 돼 있는 도시 속에서 산다. 하지만 숲은 정반대라 그런 매뉴얼이 없다. 이곳의 생활은 모든 것이 창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도시 시스템의 강압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숲속에서 도시민들이 가진 형식과 틀에 대한 억눌림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소원했다.
그가 한눈에 반한 자작나무는 추운 기후를 선호하는 수종으로, 국내에서는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주로 자생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 자작나무숲을 조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따뜻한 기후에 서식하는 해충이 자작나무에 피해를 주기 시작했지만, 자연을 위해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쓰지 않겠다는 철학은 오히려 이를 막는 데 장애물이 됐다. 최근에는 급격한 기후 변화로 국내 평균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자작나무숲의 나무들도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원 관장의 눈빛에 잠시 수심이 비쳤다.
원 관장은 자작나무의 외관에 이끌려 숲을 조성한 데 대해 “자연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겠구나,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감상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보통은 묘목보다 씨앗으로 심었을 때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란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묘목이 아닌 씨를 심거나 자작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를 가꿨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고민은 결국 식물도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지닌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생명을 온전히 존중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작나무숲의 숲지기로서, 자연 속에 살아가는 한 명의 일원으로서 식물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대중과 자연을 연결하다…식물의 벗, 이호영 소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 이 시처럼, 이름을 알고 나면 식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_한길숲연구소 이호영 소장
‘호쌤이랑 식물수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길숲연구소 이호영 소장은 식물의 생태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알리는 데 힘써온 식물 연구자다. 그는 자신이 아는 식물의 매력을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방안을 찾다가 영상물 제작이라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식물을 ‘그 친구’라고 지칭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식물에 대한 짙은 애정이 묻어났다.
‘호쌤’이 생각하는 식물과 친해지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름 불러주기’이다. 그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인용하며 “이름을 알고 나면 그 식물을 자꾸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만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인파 속에서 자신이 아는 친구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딱 한 명만 알아보게 되는 것과 같다”면서 “이름을 알고 나면 저절로 친해지게 된다. 다른 식물들은 녹색 배경이지만 이름을 안다면 그 식물의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독자를 향한 애칭도 ‘호박’이다. 이전에 공모전을 통해 수렴한 아이디어 중 “서로서로 대박나자”는 의미로 제시된 ‘호박’(서로 호·互와 대박의 ‘박’ 자를 따온 단어)을 채택했다.
이 소장이 호박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식물의 매력은 다양하다. 그에 따르면 겸손하고도 고요한 식물의 삶의 태도는 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식물은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과유불급의 자세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조건 취한다. 이같이 식물이 생태 공동체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은 인간이 닮아야 할 일면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최근까지 독도와 태백산을 바쁘게 오갔다. 이 소장이 가장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식물은 분비나무로, 구상나무의 사촌쯤 되는 이 상록침엽수는 빙하기 시절 한반도로 내려왔다가 고산지대에 고립돼 살아남은 ‘잔존종’이다. 대학원 시절 분비나무를 연구 주제로 설정한 이 소장은 “기후위기로 인해 구상나무가 주목받고 있지만 분비나무도 같은 처지”라며 “기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나무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했다.
대중이 식물에게 갖는 애정이 강한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의 동력이었다. 이 소장은 “식물 서식지에 무차별적인 개발이 일어나는 이유는 식물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식물의 존재와 그들의 매력을 알게 된 시민들이 막아설 때 무차별적인 개발은 저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전문 연구자와 대중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식물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조력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영상을 본 이들은 “식물을 알고 보니 사랑스럽다”, “식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됐다”며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동네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의 이름을 알아와 궁금증을 해소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친구가 되듯, 그의 신념을 통해 인간과 식물의 관계 또한 재정립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물의 동반자, 그들이 그리는 공존의 미래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유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숲에서 살아가는 숲지기, 나무의 역사를 관찰하고 알리는 기록자, 대중과 자연을 연결하는 식물의 친구.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택했다.
식물의 어떤 점이 좋은지에 대한 대답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자신만이 느끼는 식물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면 모두의 목소리에 한층 생기가 돌았고, 결국은 웃음으로 말을 맺었다. 식물을 향한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식물과 동행하는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시카고대학교 심리학자 마크 버먼(Marc Berman) 박사와 그의 연구진이 2019년에 발표한 리뷰에 따르면 자연과의 접촉은 사람의 인지 기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린이들은 학교 근처에 녹지 공간이 많을수록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되며 집 주변의 자연 경관은 자기 통제력 향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인의 경우 자연 환경에 더 가까운 공공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주의력 기능이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결과도 자연 환경 노출이 작업 기억력, 인지 유연성, 주의 집중 능력을 향상시키는 반면 도시 환경은 주의력 결핍과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바이오필리아 가설’이 제시된다. 바이오필리아 가설은 인류의 조상들이 자연 속에서 진화하며 생존해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현대 도시 생활이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오필리아 가설에는 두 가지 이론이 포함된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생리학적 반응이 일어난다는 ‘스트레스 감소 이론’과 자연이 우리의 인지 자원을 보충해 집중력과 주의력을 회복시킨다는 ‘주의 회복 이론’으로 바이오필리아 가설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갈 때 건강과 여유를 얻을 수 있지만 이제껏 식물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개발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과 멀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식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생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왔기 때문이다.
식물 존엄성 선언에 따르면 식물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정서적인 유대관계, 즉 반려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생명체다. 우리가 식물의 소중함을 알고 이들을 다시 벗으로 여길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지며 편안해지며 자연 또한 억압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명의 충만함을 되찾는 공존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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