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납기 걱정, 노동자는 피로
주 52시간제,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일이 몰리면 밤을 새워야 하는데, 법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결국 납품도 못하고 클레임만 받죠.”
금속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최근 홍콩 바이어의 항의를 받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은 넘쳐나는데, 법정 근로시간이 꽉 차 있어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A씨를 비롯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주52시간제 앞에서 일이 쌓여도 돈을 벌 수 없는 기묘한 현실에 놓였다.
서류 내다 지친다… 쓸 수 없는 유연근로

중소기업계는 주52시간제가 산업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제조업은 성수기에 수요가 몰리는 구조인데, 획일적인 근로시간 제한이 납기를 놓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한 수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제품은 팔릴 준비가 돼 있는데, 야간 공정을 못 돌리니 납기를 맞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이 제도 도입 이후 납기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제라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는 절차가 복잡해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최소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 이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제조업 대표는 “서류만 넘기다 시간 다 간다. 제도는 있는데,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단순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업종별, 지역별 유연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모든 기업을 하나의 규칙으로 통제하는 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할수록 삶 무너져… 시간이 전부 아니다

반면 노동자들은 ‘시간 늘리기’가 능사가 아니라고 반발하며, 특히 연구개발 인력은 장시간 노동이 오히려 집중력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최근 삼성전자 연구개발직 노동자 9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0%가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분명한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85% 이상이 근로시간 예외 시 삶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 답했다.
한 응답자는 “근무시간만 늘려서 성과를 내라는 건 결국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과 근무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며, 88%가 ‘업무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혁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숙련 인력을 잃게 한다”며 “이는 경영진의 착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해법은 없을까… 현장·제도의 간극 좁혀야

중소기업계는 주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노동계는 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맞선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제도 개선을 약속하지만, 현장에선 그 약속이 실행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산업 특성과 직무에 따라 유연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금 중국은 유연하게 근무체계를 운영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며 “한국만 법에 갇혀 현실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산업 현장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균형점이 필요하다.
업종별·규모별 맞춤형 기준 마련,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유연근로제 설계 등 구체적인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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