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김민수 인턴기자】‘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해마다 5월 8일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어버이날 노래 ‘어머니의 마음’의 첫 구절이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헌신과 사랑을 담은 이 노랫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버이의 마음을 담고 있다. 낳고 길러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어버이날. 가정의 달 5월 부모 세대에 대한 고마움과 돌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하루다.
어버이날인 8일 따스한 초여름 햇살이 얼굴을 감싸고 벚꽃잎 대신 초록빛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이날도 어김없이 어르신들로 붐볐다. 공원 입구를 따라 이어진 무료급식 대기 줄은 수십 미터를 훌쩍 넘겼다.

운동화, 슬리퍼, 구두까지 서로 다른 발걸음들이 한 방향을 향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양산을 펴 들고 또 다른 이는 일회용 도시락 봉지를 들고 있었다. 가슴 부근에 카네이션을 단 이들은 급식 도시락을 받은 후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건물 그림자로 자리를 옮겼다.
탑골공원 돌담 주변을 돌아보니 삼삼오오 모여 앉은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편에서는 무료급식 도시락을 나누며 식사하는 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바둑과 장기를 두며 훈수를 주고받는 무리가 시끌벅적했다. 그늘진 자리마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조용히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맞고 있던 최모(90·남)씨의 가슴에도 카네이션 한 송이가 달려 있었다. 남색 바람막이 점퍼 위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리본이 붙은 빨간 꽃이 정갈히 달려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지팡이를 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집에 있어봐야 뭐 해. 날씨도 좋고 바람 쐬고 싶어서 나왔지.”
그는 탑골공원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버이날이라고 누군가를 만날 계획은 없었다. 자녀와 손주들의 연락은 없었고 지난 연휴 외손자가 밥 한 끼를 사준 것이 전부였다.
“멀리 살아서 자주 못 오는데 밥 한 끼 사주니까 고맙더라고.”
‘자식들이 안 오면 서운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에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마음이라도 가지고 죄송하다는 생각만 해도 그게 효자지. 바빠서 못 오는 거야 이해해.”
정오가 지나자 공원 안은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받아든 노인들,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사람들, 근처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찾아온 이들까지 하나둘 벤치와 돌 의자를 채웠다. 오전 11시 무렵까지 한산하던 공간은 금세 담소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 찼다.

돌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보던 김모(70·남)씨는 스마트폰 화면을 잠시 끄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점퍼에도 리본이 달린 붉은 카네이션이 정갈히 꽂혀 있었다.
“연락은 왔지. 근데 뭐 찾아오진 않아. 저번 주에 내가 직접 갔다 왔어.”
‘자녀들이 어버이날에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답했다.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오늘은 그냥 친구들 만나서 한잔하려고. 다들 바쁘잖아. 자주 보면 좋겠지만 요즘 세상에 부모 찾아오는 게 어디 쉬운가.”
김씨는 공원에서 자주 만나는 지인들과 정치, 시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어버이날이라고 해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이곳에서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이 이제는 더 자연스럽다고 했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는 또 다른 무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박모(72·남)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햇빛을 등지고 앉아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애들이 저기 지방에 살아. 그러니까 오늘은 못 오지.” 그는 어버이날인데도 별다른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 문자도 안 왔어. 뭐 그러려니 하지.”
박씨의 말을 들은 옆자리 노인들이 곧바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에이 그래도 자식이 돼가지고 전화 한 통은 해야지.”
“자식이라고 다 자식이 아니여. 요즘 것들은 몰라.”
옆을 지나던 또 다른 어르신이 툭 한마디를 건넸다.
“다른 노인네들 하는 얘기 들어보면 자식들 잘하는 집안 별로 없어.”
웃음 섞인 핀잔 속에는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박씨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바쁘니까 이해는 해.”

가정의 달 5월은 가족 간 정을 되새기는 시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1인 가구 수는 약 220만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노인 인구의 약 22%를 차지한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가족 구조 변화, 바쁜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사람 없는 어버이날’은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누구는 도시락 한 끼로, 누구는 벤치 위 대화로 어버이날을 보냈다. 어버이날은 그렇게 이해와 서운함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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