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韓증시]① 세계 꼴찌 추락 이유 셋… 실적 부진·신뢰 훼손·대체 투자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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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가 올해 4분기 전 세계에서 가장 부진한 수익률에 허덕이고 있다. 트럼프발 ‘강(强)달러’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 이탈 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 무기력한 모습이다. 우리 시장 자체의 문제점도 크다는 의미다. 상장사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뻥튀기·쪼개기 상장, 기습 유상증자, 올빼미 공시와 같은 행태마저 잇따르며 투자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부의 자본시장 친화적 행보도 투자자 사이에 만연해진 패배주의 앞에선 무기력할 따름이다. 미국 증시로, 가상화폐로 뿔뿔이 흩어지는 개미를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 벼랑 끝 한국 자본시장 전반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편집자주]

코스피·코스닥지수가 전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채권 금리와 환율 등 거시 경제 지표가 요동친 여파다. 다만 한국 증시의 본질적 약세 원인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일러스트=챗GPT 달리3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복귀가 확정된 최근 일주일 동안 코스닥지수는 7.17%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5.72% 내렸다. 전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뒤에서 1·2등이다.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다시 4.4% 선을 넘나들고,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에 이르는 등의 거시 지표가 코스피·코스닥지수에 부담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계열을 넓혀봐도 코스피·코스닥지수의 부진은 두드러진다. 코스피·코스닥지수의 최근 1개월 하락률은 각각 10.42%, 7.87%로 역시 전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최하위다. 올해 연중 하락률로 보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RTS지수와 MOEX 러시아지수만 앞선다. 최근 시장 상황을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가 부진한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가장 핵심은 기업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만 하나증권 글로벌투자분석실장에 따르면 코스피시장 상장사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예상치는 지난 8월 말 기준 277조6000억원이었다. 현재 259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2025년 영업이익 예상치도 344조6000억원에서 319조9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코스피시장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향이 컸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지난 8월 45조3200억원에서 현재 36조1400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2025년 영업이익 예상치 역시 지난 8월 63조6000억원에서 현재 45조4500억원으로 눈높이가 낮아졌다. 삼성전자 주가가 7만4300원에서 5만600원까지 곤두박질친 것과 맞물린다.

고공 행진 중인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내 기업의 12개월 예상 순이익은 지난 8월 말 2조2180억달러에서, 현재 2조2450억달러로 더 올랐다. 이 실장은 “코스피지수의 밸류에이션(가치) 등을 고려할 때 저점 가능성이 크지만, 본격적 반적은 이익 추정치 하향 조정이 멈춘 뒤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코스피지수가 나흘째 급락세를 지속한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지수가 나흘째 급락세를 지속한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뢰 자본이 바닥난 것도 한국 증시가 부진한 요인이다. 공모가를 부풀린 ‘뻥튀기 상장’ 이후 정작 주가가 내림세를 걷는 문제, 미래 먹거리로 키웠던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 문제, 근거가 불분명한 ‘기습 유상증자’ 등의 사례가 잇달아서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후 대규모 유상증자를 연이어 추진하려다가 시장의 된서리를 맞았다. 자사주 공개매수가(89만원)에 비해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67만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결국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

이수페타시스도 유상증자를 두고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수페타시스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일부를 이차전지 소재 기업 제이오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했는데, 이수페타시스의 사업인 초고다층 인쇄회로기판(PCB)과 접점이 적어서다. 일부 주주들은 이수페타시스 유상증자로 같은 이수그룹 내 이차전지 소재 기업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을 밀어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여기에 더해 올해 내내 이어졌던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처럼 정책적 불확실성까지 반복되고 있다. 국내 대형 증권사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이제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는 수준”이라며 “실망도 기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거래 대금 규모가 바닥난 신뢰를 잘 보여준다.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었던 2020년과 2021년 국내 주식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23조원, 27조원이 넘었다. 현재는 19조6000억원으로 줄었다. 금리가 높아진 상황도 고려해야겠지만, 올해 미국과 한국이 금리 인하에 돌입한 이후인 10월과 이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5조~16조원대까지 더 줄어든 것을 볼 때 투자심리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굳이 묶여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다른 투자처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과 채권 보유 규모는 지난 12일 기준 1487억500만달러(약 209조원)에 달한다. 사상 최대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최근 2년 새 2배가량 늘었다.

가상화폐 시장으로도 떠나고 있다. 비트코인이 1개당 9만달러 선을 뚫으면서 불을 댕겼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24시간 평균 거래대금 규모는 최근 30조원을 넘어섰다. 거래 시간 차이를 고려해도 국내 증시의 1.5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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