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프롤로그①] 여전히 헷갈리는 DB DC IRP, 대한민국 ‘400조 시장’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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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하는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프롤로그 글 싣는 순서
① 여전히 헷갈리는 DB DC IRP, 대한민국 ‘400조 시장’의 민낯
② 국민연금이 보장 못하는 국민 노후, 퇴직연금은 할 수 있다
③ 디폴트옵션 시행 1년, 여전히 대세는 원금 보장형
④ [인터뷰]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센터장
⑤ [인터뷰]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행복한 노후를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퇴직연금제도를 명확히 알고 DB, DC, IRP 등 각자에게 맞는 운용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DC, DB가 뭔지 모른다. 처음 들어봤다.” – 33세, 중소기업 2년차 직장인 A씨.

“아마 우리 회사는 DB일 거다. 근데 솔직히 잘 모른다. 퇴직연금에 큰 관심이 없다.” – 38세, 대기업 홍보팀 7년차 직장인 B씨.

“이직을 하며 퇴직금을 받을 계좌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IRP를 하나 만들었다. 퇴직금을 모아두는 곳으로 알고 있다.”- 35세, 이직 경험 3번의 직장인 C씨.

“퇴직연금은 사고파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퇴직연금 상품 영업을 다니다 보면 다짜고짜 ‘그런 거 안 산다’며 손사래 치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 45세,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 D씨.

2024년 국내 퇴직연금시장의 현실이다.

퇴직연금이 노후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관심과 인식이 턱없이 낮다. 퇴직연금을 장기투자 자산이 아닌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적립해뒀다가 퇴직할 때 받는 ‘목돈’ 정도로 보는 인식도 여전하다.

애초 퇴직연금제도를 잘 모르니 운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가상화폐 투자 등을 통한 자산증식에 관심이 높은 3040세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정적 노후를 위해서는 퇴직연금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통의 직장인이면 누구나 꼬박꼬박 쌓아갈 수 있는 만큼 퇴직연금을 적극 활용해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켜낸 퇴직연금은 당신의 노후 생활수준을 바꿔놓을 정도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계속 늘어 2033년이면 1천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투자신탁운용>

◆ 퇴직연금제도 도입 20년, 적립금 400조 눈앞이지만…

13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385조7천억 원에 이른다. 최근 5년만 봐도 해마다 적립금이 13~16% 가량 늘면서 지속해서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10년 뒤인 2033년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지금의 2.4배인 94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퇴직연금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2004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1년 뒤인 2005년 12월 본격 시행되면서 퇴직연금제도는 올해로 도입 20년차를 맞았다.

퇴직연금제도는 노동자의 노후 생활 안정성을 높이고 퇴직 때 적립금을 연금 형태로 받아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당시 법정 퇴직금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일시금으로 지급됐고 중간 정산도 많았다. 퇴직금을 외부기관이 아닌 자체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기업이 부도나면 퇴직금을 못 받을 때도 부지기수였다.

퇴직연금제도는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복지제도’인 만큼 노사 간 이견으로 번번이 합의도출에 실패했고 결국 정부 주도로 제도가 도입됐다.

이처럼 어렵게 도입된 퇴직연금제도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수령한 비율은 7.1%에 그친다. 나머지는 모두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노후 안전망 측면에서 연금 형태로 나눠 받는 것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잦은 중도인출도 국내 퇴직연금제도의 효용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퇴직연금 중도인출 인원은 4만9811명으로 이 중 절반가량인 46.6%가 주택구입을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중도에 찾아 썼다.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점도 단점으로 평가된다.

DC, DB가 헷갈리는 것은 물론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등 한글로 풀어써도 뜻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리금 상품에 묶여 운용 수익률이 낮다는 점도 큰 약점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퇴직연금의 80%에 가까운 자금이 수익률 1~3%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유입된다.

2023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 적립금에서는 89%가 원리금을 보장하는 초저위험 상품에 쏠렸다.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 운용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퇴직연금은 개인자산으로도 금융시장 자금조달 측면으로도 ‘잠들어 있는 돈’인 셈이다.

한국의 3단계 노후보장 체제. <금융감독원>

◆ DB DC IRP, 퇴직연금 제도를 알아야 진짜 ‘목돈’을 만든다

잠들어 있는 돈을 깨우려면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제도와 이에 따른 운용방식 선택지를 아는 것이 기본이다.

먼저 DB(확정급여형, Defined Benefit)는 개인의 ‘급여’와 근무기간 등에 따라 퇴직급여가 사전에 확정되는 방식이다.

회사는 해마다 1회 이상 사전에 확정된 퇴직급여 기준으로 법에서 정한 최소 수준의 부담금을 퇴직연금으로 적립한다. DB형은 결국 노동자가 퇴직 때 수령하는 금액이 기존 퇴직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주체도 회사다. 운용실적에 따라 노동자가 받는 금액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부담금이 달라진다.

DC(확정기여형, Defined Contribution)는 개인의 ‘기여’에 따라 퇴직연금이 확정되는 방식이다. 개인이 직접 퇴직연금을 운용하며 회사는 해마다 노동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연간 임금의 1/12 이상을 부담금으로 넣어주기만 한다.

각 개인이 투자상품을 정하는 만큼 운용실적에 따라 같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도 최종 퇴직연금 금액은 달라진다.

DC형은 개인이 운용하는 만큼 DB형과 비교해 인출이나 추가 납부 등에서 자율성이 높다.

DC형은 법으로 정한 사유에 따라 중도인출이 가능하고 노동자가 부담금을 추가 납부할 수 있다.

반면 DB형은 중도인출이 불가능하고 법정사유에 한정해 담보대출만 할 수 있다. 추가납부를 하려면 IRP(개인형 퇴직연금, Indivisual Retirement Pension) 계좌를 활용해야 한다.

IRP는 퇴직 또는 이직으로 수령한 퇴직급여를 보관, 운용할 수 있는 계좌다. 노동자는 퇴직 또는 이직으로 퇴직연금을 수령하려면 IRP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단 만 55세 이후 퇴직, 퇴직급여액 300만 원 이하인 경우는 일반계좌로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다.

IRP는 DC형과 똑같이 개인이 각자 선택에 따라 계좌에 들어있는 적립금을 운용할 수 있고 비과세 혜택도 주어진다.

전문가들은 안정적 노후를 위해서는 퇴직연금을 제대로 알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센터장은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은 재정문제가 있는 만큼 보험료를 엄청 올리지 않는 한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쉽지 않다”며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으로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퇴직연금은 노후 최소 생활비를 준비하기 위한 핵심”이라며 “DB형은 임금 상승률과 관계되는 만큼 운영 수익률이 의미가 없지만 DC형은 사람마다 수익률 편차가 커서 자산배분에 집중하는 교육, 문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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