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걸린 K반도체 기술유출…”인재 뺏기면 한순간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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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SK하이닉스에서 20년 넘게 몸담으며 HBM(고대역폭메모리) 핵심 인재로 근무했던 연구원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것이 드러나면서다. 세계 반도체 패권 다툼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의 인재를 포섭해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재 유출을 막지 않으면 ‘반도체 강국’ 한국의 위상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7일 반도체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는 최근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SK하이닉스에서 D램과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연구원 A씨는 지난 2022년 7월 돌연 SK하이닉스에서 퇴사한 뒤 미국 마이크론 본사 임원급으로 이직했다. A씨는 SK하이닉스 퇴직할 무렵 마이크론을 비롯한 전직 금지 대상 업체와 전직 금지 기간 2년이 명시된 전직 금지 약정서 등의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했으나 이를 어겼다.

SK하이닉스는 A씨를 상대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A씨가 회사에서 근무하며 얻은 HBM 관련 정보가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흘러갈 경우 이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의 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다.

업계에서는 그간 HBM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마이크론이 이번 영입을 계기로 국내 메모리 업체를 추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A씨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며 얻은 정보가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앞서 5세대 HBM3E 양산 소식을 가장 먼저 내놓고, 삼성전자가 마이크론 발표 직후 업계 최초로 12단 36GB(기가바이트)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는 등 차세대 개발·양산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HBM은 AI(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 부품이다. 생성형 AI 열풍으로 수요가 폭증해 성장세가 높아지자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반도체 업체들은 모두 HBM 관련 파격적인 투자를 선언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핵심 AI 메모리 칩 기술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HBM 공급 역량을 지난해 대비 2.5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핵심 기술 유출을 둘러싼 골치는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2018~2020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반도체 기술을 입수해 중국에 넘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연구원 등은 세메스의 영업기밀을 이용해 반도체 습식 세정장비를 만들어 수출했다가 적발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른 업체로 이직을 준비하던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된 중요 자료를 모니터 화면에 띄워놓고 이를 사진 촬영해 보관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반도체 패권 다툼이 곧 인재 싸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인재 유출이 단순 기업 경쟁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국가안보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다.

최병호 고려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인재 유출을 막지 않으면 한국은 한순간 무너진다”며 “국내 경쟁력이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또 “국가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타기업이 아닌 해외로 넘어간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도 “삼성·SK가 어려워지면 국가 반도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산업 기술 탈취 건수는 지속 늘고 있다. 2018년 이후 6년간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96건으로 이중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의 유출적발이 30건으로 가장 많다. 이 기간 피해 규모만 약 26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업계의 첨단 기술 경쟁이 격화하며 해외 경쟁 업체로의 기술 유출 우려도 그만큼 커진 상황이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세계 반도체 동향이 너무나도 빨리 바뀌고, 전 국가적으로 집중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산업이 더 이상 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일침했다. 이어 “고꾸라지느냐 위로 가느냐 결정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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