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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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자료=중국 외교부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올해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미국의 강력한 중국 반도체 제재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을 들썩였던 키워드였고요.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도 아랑곳 않고 5나노(㎚·10억 분의 1m) 첨단 칩 제조에 나서기도 했니다.

그렇다면 내년은 어떨까요? 중국은 2024년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했고 무엇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낼까. 또 한국 반도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산 설비 투자부터 기술 진보, 중국을 둘러싼 각종 이슈들까지 몇 가지 데이터들을 가지고 예측해보겠습니다.

◇월 50만 장의 12인치 웨이퍼 투자

먼저 생산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하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취재 중 내년부터 2027년까지 중국에 갖춰질 주요 신규 반도체 팹을 종합한 자료를 확보했는데요. 아래를 함께 봅시다.

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막론하고 12인치 반도체 공장 증가 추세가 상당히 눈에 띕니다. 무려 11개죠. 이 중 8개 팹이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11개 회사들이 현지에 갖추게 될 생산 능력을 모두 합치면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50만 9000장입니다. 또 이들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내년에 갖춰질 생산 능력만 월 34만 6000장입니다.

어느정도 규모인지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자료와 비교해보면요. 세계 D램 1위 삼성전자(005930)의 올 2분기 전체 D램 생산 능력인 월 51만 3000장과 맞먹습니다. 또 세계 D램 2위 SK하이닉스(000660)의 최근 3년 동안 분기 최대 생산 능력이었던 월 41만 장보다 10만 장 가량 많습니다.

이 리스트에는 SMIC와 같은 파운드리 기업도 있고요. 중국의 D램 대표 선수인 CXMT도 포함돼 있어서 삼성·SK D램 라인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반도체 회사의 압도적인 간판 제품 생산 능력에 준하는, 엄청난 투자가 나라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소개 드린 업체 외에도 외국 업체와의 합작법인, 패키징 투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12인치 웨이퍼보다 더 레거시 공정인 8인치 웨이퍼 투자도 있습니다. 월 14만 장 규모인데요. 세계 10위권 파운드리 업체 DB하이텍의 8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인 15만 장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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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C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제공=SMIC

이 투자가 놀라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선 중국은 지금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ASML·도쿄일렉트론·KLA 등 미국·유럽·일본 국가들의 웬만한 고급 반도체 장비를 쓸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런 투자를 계속, 진심 멈출 의지 하나 없이 계속 단행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첨단 장비 수입이 힘드니까 레거시(구형) 공정을 활용할 수 있는 전력·아날로그 반도체 위주 라인 위주로 투자를 하지만요. SMIC, YMTC 등 중국 대표 업체들은 공장 한 편에 아주 집약적으로 첨단 공정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진행하는 이 투자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다가올 지 모른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앞 뒤 재지 않는 돌진입니다.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이 내년이 시황 회복세라지만 불안정한 경영 환경 탓에 투자를 망설이는 중에도 중국은 아주 공격적인 투자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 테일러 공장의 대량 양산 시점을 내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연기했죠. 미국의 보조금과 인허가 문제도 엮여 있으나 시황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게 작용했다는 배경도 있습니다. 중국은 이러한 시장 불확실성보다 ‘반도체 굴기’와 ‘내재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투자하는 움직임으로 추정됩니다. 중국 당국의 천문학적 자금 지원도 한 몫 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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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도 대만, 미국에 이어 ‘빅3’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전체 매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는 한국 패키징 매출 규모의 2배 이상입니다. 자료=욜 그룹

◇중국 반도체 투자의 명과 암

중국의 투자는 업계 관계자들을 알쏭달쏭하게 합니다. 중국 내 엄청난 반도체 붐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공급 과잉 현상을 더욱 촉진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한 기자 간담회에서 “자기 땅 안에 반도체 공장을 전부 짓거나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장이 하나였을 때처럼 수급 균형이 잘 맞는 형태로 흐르기가 어렵다”고 우려한 것에도 중국의 투자 이슈가 녹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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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EUV 없이도 스마트폰용 7나노 AP를 만들어서 세상에 충격을 줬던 화웨이. 자료출처=테크인사이츠

또 불리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칩 기술을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는 불안함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가 화웨이죠. 화웨이는 최근 7나노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이어서 5나노 노트북PC용 칩까지 생산에 나섰다고 합니다. 더구나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칩을 위탁 생산하던 SMIC가 3나노까지 DUV로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옵니다. 포토마스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이른바 TAT(TurnAround Time), 즉 생산 시간에서 경쟁사보다 느리더라도 꾸역꾸역 시장에 진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회사들의 수준도 매번 업그레이드입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패러다임을 뒤집을 만한 무언가를 개발 중인 게 특징인데요. 이번 달 미국에서 열린 ‘IEDM 2023’ 학에서 CXMT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활용한 D램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반적인 핀펫 구조를 탈피해서 소자를 수직으로 세워 면적을 줄인 D램 연구 결과를 선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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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D램업체 CXMT가 IEDM 2023에서 소개한 4F²(수직) D램 구조와 특성. 일정한 문턱전압 곡선을 보여주고, 소자가 켜지고 꺼질 때 누설 전류 정도를 의미하는 S·S곡선은 여태 세상에 나온 수직 D램 중 2번째로 좋다고 소개했습니다. 자료출처=IEDM 2023 CXMT 논문

이 연구 결과에서 CXMT의 표현이 재밌습니다. 이들은 “GAA 기술을 활용해서 성공적인 ‘4F²(수직) D램’을 제조했다”며 “10나노 이하 D램 시대에 상당히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표현도 썼고요.

기술적으로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 소자를 켜고 끌 때 불필요하게 새어나가는 전류와 관련이 있는 S·S(subthreshold Swing)가 62.5mV/dec라고 강조했습니다. 통상 업계에서는 상온(300K·약 27℃)에서 D램의 S·S를 60mV/dec 이하로는 가져가기 힘들다고 정의하는데요. CXMT 설명으로는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수직 D램 연구결과 중 S·S 결과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두 번째’ 성과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소자 구조의 혁신은 물론 GAA 구조로 한계에 가까운 전력 효율까지 보여줬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직 연구 단계이긴 해도요. 혹시 이 소자 구조든 3D D램이든 미래 기술에 대한 원천 기술 확보로 세계 반도체 씬(Scene)을 뒤집는 것은 아닐지 절대 가볍게는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점유율 70%가 넘는 D램 강국이긴 하지만 중국의 접근은 껄끄럽고 위협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심화하는 기술 유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문제가 대두하고 있죠. 그런데 한 두 곳이 아닙니다. CXMT, YMTC의 미래 기술 연구 부서 곳곳에는 한국 회사 출신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요. 소자 기술 뿐 아니라 최첨단 증착 기술로 손꼽히는 원자층증착(ALD) 장비 기술까지 아예 통째로 빼간 흔적을 최근 MBC가 단독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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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에스윈의 웨이퍼. 사진제공=ESWIN

핵심 소재도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스템 반도체 기업으로도 알려진 에스윈(ESWIN)은 반도체 칩의 근간인 실리콘 웨이퍼 사업도 영위하고 있는데요. 이 사업에서 우리나라 웨이퍼 회사인 SK실트론 출신 인사들을 스카우트해 고위 관리자·실무진을 꾸렸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반도체 장비 챔버 안에서 웨이퍼를 고정하는 소재인 실리콘카바이드(SiC) 링의 경우 국내 티씨케이(TCK)가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죠. 이 소재를 중국에서 내재화하려고 아예 한국에 R&D 연구소를 차리고 인재 영입을 시도하는 중국 회사까지 노출된 적 있죠. 중국 반도체 투자 러시가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력과 인력 수급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내년에는 경계 수위를 더욱 바짝 올려야 합니다.

반면에 중국의 적극적 투자가 꼭 나쁘지 만은 않은 우리나라 기업도 있습니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인데요. 몇 가지 예시를 짚어볼까요. 중국에서는 지금 블랭크마스크라는 소재가 동이 난 상황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첨단 7나노 칩을 EUV 노광 없이 만들려면요. EUV 빛으로는 한 번에 회로를 새길 수 있는 공정을 기존 심자외선(DUV) 빛으로는 2번에서 최대 4번까지 찍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최대 4개의 모양이 다른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거죠. 결국 회로 축소 연구는 물론 EUV를 쓸 수 없는 상황, 광기에 가까운 설비 투자까지 맞물려 중국 내 포토 마스크가 상당히 부족한 상태에 직면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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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에스앤에스텍의 블랭크마스크. 사진제공=에스앤에스텍

대표적인 국내 블랭크마스크 기업 에스앤에스텍(101490)을 보면요. 올 3분기 누적 수출액 합계가 420억 원입니다. 지난 한해 수출 매출액 412억원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율도 지난해 33%에서 올해 40%로 늘어난 모습이죠. 업계에서는 에스앤에스텍의 중국 수출 비중이 적잖고, 내년에도 블랭크마스크 현지 매출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넥스틴 검사 장비 ‘이지스’. 사진제공=넥스틴

넥스틴(348210)이라는 검사 장비 회사도 있죠. 이 회사는 미국 KLA,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이 강세인 검사 장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다크 필드’ 검사 장비 분야에서 눈에 띄죠. 동일 분야 KLA 장비보다 가격을 3분의 1 정도 낮춰 미 행정부의 중국 수출 규제의 빈틈을 잘 파고든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8월 중국 우시고신구, 우시산업발전그룹과 협력해 2억 달러(약 2600억원) 규모 반도체 장비 공장 설립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죠.

이 기업은 올해 중국의 다양한 반도체 업체에 장비를 납품했습니다. 국내 반도체 회사를 바짝 뒤쫓는 낸드 회사 양쯔메모리(YMTC)에는 65억원 규모 장비를 공급한다는 공시를 냈고요. SMIC의 자회사 파운드리 SMSC와도 155억원 상당 웨이퍼 검사 장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중국 반도체는 내년에도 '돌진'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결론적으로 내년에도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상당히 매섭게 진행될 것이고요. 중국의 반격에 이어 미국의 재반격도 무서울 듯 합니다. 이미 경고장이 날아갔죠. 미 상무부가 내년부터 자국 기업들이 레거시(구형) 반도체 공급망이 중국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조사에 착수한다고 합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통신, 자동차, 방위산업 기반과 같은 핵심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레거시 반도체는 필수”라며 “미국의 레거시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하는 외국 정부의 비시장적 조치를 해결하는 건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말했죠. 18나노·128단 이상, 14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규제 외에도 범용 분야까지 압박할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의 속도감 있는 반도체 투자와 빠르게 올라오는 기술을 매시 매초 체크하면서 고급 인력 유출 관리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할 한 해가 될 듯합니다. 더욱 치열해질 ‘칩워’ 속에서 독자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올 한해 정말 고생 많으셨고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쓴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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