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앤더슨이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팅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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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산업이 속도에 집착하는 가운데, 조나단 앤더슨은 예외적인 궤도를 그려온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언제나 내러티브와 속도를 주도적으로 조율해왔죠. 디올에서의 첫 쇼가 막을 내린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7월 7일,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JW 앤더슨의 프리뷰였죠.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프리뷰에서 시선을 끈 것은 다채로운 ‘사물들’이었습니다. 핸드메이드 윈저 의자, 19세기 빈티지 구리 물뿌리개, 호튼 홀의 꿀, 탄소강 못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출처, 기능과 형태를 지닌 오브제들이 로퍼 핸드백과 미니드레스 사이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냈죠.

웨지우드(Wedgwood)와 협업한 루시 리(Lucie Rie) 스타일의 티컵 세트. © Louis Dewynter

웨지우드(Wedgwood)와 협업한 루시 리(Lucie Rie) 스타일의 티컵 세트. © Louis Dewynter

1902년부터 수제 가위를 생산해온 어니스트 라이트가 만든 자수 가위. © Louis Dewynter

1902년부터 수제 가위를 생산해온 어니스트 라이트가 만든 자수 가위. © Louis Dewynter

오는 9월 1일에 출시될 JW 앤더슨의 새로운 컬렉션은 보다 개인적이고 미학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을 예고합니다. 약 560개의 아이템으로 구성된 이 컬렉션의 중심에는 ‘사물’들이 자리해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닙니다. 앤더슨이 직접 고르고, 만들고, 수집해온, 오래된 것들과 지금의 미감을 연결하는 물건들이죠. 앞서 언급한 윈저 의자를 비롯해 아이리쉬 리넨 티 타올, 고풍스러운 자수 가위, 앤틱 원예용 삽, 매 발톱에서 영감을 받은 스톤 훅, 19세기 실버 디캔터 태그처럼 단 한 점만 존재하는 빈티지 오브제, 도예가 루시 리의 아카이브 드로잉에서 착안해 웨지우드와의 협업으로 재발매한 컵, 한정판 노퍽 꿀 단지까지. 이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감도 높은 아름다움을 지니며 하나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지난 11년간 그가 매료돼온 공예, 예술, 제작 기법을 응축한 결과이자, 인테리어와 사물에 깃든 이야기들을 향한 집요한 애정의 총체이기도 하죠. 이번 프리뷰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요. 조나단 앤더슨이 이제 JW 앤더슨을 인테리어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오브제, 그리고 장인과의 협업을 아우르는 하나의 큐레이티드 유니버스로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요.

19세기에 주조된 은제 디켄터 태그. © Louis Dewynter © Heikki Kaski 앤틱 프렌치 워터링 캔. © Louis Dewynter © Heikki Kaski 핸드메이드 윈저 체어. © Louis Dewynter © Heikki Kaski © Heikki Kaski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장인들과의 협업입니다. 전통 있는 도자 브랜드 웨지우드(Wedgwood), 영국 금속공예가 루시 글래드힐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오브제들은 단순히 ‘예쁜 물건’이 아니에요. 수백 년의 기술과 현대적인 감각을 매끄럽게 연결해주는 매개체죠. 어쩌면 앤더슨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건 ‘브랜딩’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 만들기’인지도 모릅니다. 루시 리 스타일의 컵에 차를 따르고, 오크 스툴에 앉아 책을 읽는 일상의 순간이 곧 브랜드의 경험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는 사물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그것이 쉽게 버려지지 않는 가치를 갖도록 합니다. 앤더슨은 이제 우리에게 ‘빠른 소비’가 아닌 ‘느린 집착’을 권하는 듯합니다. 패션과 가구, 오브제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진정으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의 형태를 제안하는 것이죠.

아이리시 리넨 티 타올, Peach and Art tea towels. © Louis Dewynter

아이리시 리넨 티 타올, Peach and Art tea towels. © Louis Dewynter

그리고 JW 앤더슨엔 또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정기적인 컬렉션 쇼를 멈춘 것이죠. 조나단 앤더슨은 “필요할 때 선보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비전은 ‘현대판 호기심의 캐비닛’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브랜드를 역사와 장인정신,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과의 깊고 느린 대화 속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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