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내내 기운차 보였어요. 막 방영을 시작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 이어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이하 〈통역〉) 촬영까지 잘 마치고 푹 쉬고 있는 덕분일까요
맞아요. 제가 이렇게까지 쉬어본 적 없거든요. 감사하게도 항상 다음 작품이 정해져 있었고, 특히 〈통역〉 촬영은 〈언슬전〉 촬영 끝나자마자 바로 돌입하기도 했고요. 준비도 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가 되니 그 마음이 딱 5일 가더라고요. 너무 심심해요!

슬리브리스 니트 톱과 리본 헤어핀, 새 장식의 진주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은 모두 Chanel.
워낙 현장을 좋아하기도 하죠
요즘은 그나마 〈통역〉 후시 녹음 일정이 있어서 스튜디오에 놀러 가는 게 재미예요. 제 분량이 없는 날에도 먹을 걸 사서 놀러 가는데, 다행히 갈 때마다 감독님과 스태프들이고 반겨주세요. 함께 밥도 먹고요.
두 작품을 잘 준비해 둔 마음이 든든하겠습니다
이때가 제일 설레고 뿌듯한 것 같아요. 한 선배님이 수상 소감에서 배우가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은 회신 없는 편지를 쓰는 기분이라는 말에 공감했거든요.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 기다려주는 분들이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공개 전에는 덩달아 설레요.

체크 패턴의 옐로 트위드 수트와 실크 타프타 셔츠, 미러 플랫폼 샌들, 체인 스트링과 사이드 포켓 디테일의 샤넬 25 스몰 핸드백은 모두 Chanel.
〈언슬전〉의 율제병원 레지던트 1년 차 오이영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 캐릭터의 어떤 부분과 특성에 애정이 생겼는지
무뚝뚝하고 시니컬해요. 하지만 직설적인 표현 뒤에 악의나 의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레지던트들과 잘 지내는 데 관심 없는 이영을 보며 학창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죠. 회차를 거듭하며 이영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어떤 상황인지 잘 보이더군요.

체크 패턴의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로고 브레이슬릿과 볼드한 실버 로고 뱅글은 모두 Chanel.
〈언슬전〉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고윤정은 어떤 걸 배웠나요
집중력. 이전 작품보다 책임져야 할 분량이 많다 보니 촬영하면서 이건 집중력 싸움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동생들이 저에게 뭔가 물어보면 설령 저도 잘 모르더라도 대답을 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는 제 한 마디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은 거예요.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이 친구가 일하면서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저도 공부가 됐습니다.
동료들의 성장을 직접 목격한 촬영장이었겠네요
연기는 사실 다들 처음부터 정말 잘했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점점 현장에서 서로 편안해하는 게 느껴졌다는 거죠. 많이 가까워졌어요.

정교한 시스루 재킷과 팬츠, 진주 네크리스, 플랫폼 샌들은 모두 Chanel.
그나저나 완연한 봄날입니다. 최근 봄이 왔음을 실감한 순간이 있었을까요
지난해에는 벚꽃을 촬영 출퇴근길에 만났거든요. 깜깜할 때만 꽃을 보는 게 아쉬워서 대기 시간이 5~6시간 정도 생겼을 때 촬영장과 가까운 에버랜드에 가서 입구 쪽 벚꽃만 쓱 보고 온 적도 있어요(웃음). 올해는 시간이 생긴 만큼 평소 안 하던 산책도 해보고, 더 많이 느끼려고 해요.
‘슬기롭다’는 단어에도 마음이 갑니다
제목이 되게 좋았어요. 미숙한 사회초년생을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 아닌가 싶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선배들처럼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거라는 게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모슬린 케이프와 트위드 재킷, 스커트, 로고 이어링, 메시 체인 클러치백과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Chanel.
고윤정은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나요
일하는 건 겉으로 보이니까 1차적으로는 그게 현명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다른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불쾌한 상황에도 이성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상대의 감정까지 듣는 사람을 보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러지 못해서 후회하거든요. 화는 당연히 날 수 있지만 그걸 상대방에게 굳이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혼자 풀 수 있는 일도 밖으로 질러버리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되기도 하고요.
돌아보면 1년 반 전 샤넬과 첫 촬영을 〈엘르〉와 함께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2025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쇼 참석으로 함께 파리에도 다녀왔고요. 그사이 샤넬이라는 하우스의 지향점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면
파리의 샤넬 공방을 다녀와서 느낀 게 많아졌어요. 특히 오트 쿠튀르는 소매의 깃털 하나, 띠 하나 모두 사람들의 노고가 가득한 수작업이더라고요. 예전에는 트위드 재킷을 보면 주조를 이루는 컬러만 봤다면 이제는 그 안에 들어간 다양한 색, 단추 디자인까지 이전 시즌과 어떻게 변주하려고 고민했는지 디테일이 보여요. 시야가 넓어졌죠.

핑크 실크 드레스와 와이드 벨트, 로고 네크리스, 메탈릭 카프스킨 스몰 플랩 백은 모두 Chanel.
오늘은 어떤 디테일이 눈에 띄었을까요
레이스 디테일의 세트업을 입었는데, 일단 레이스 소재에 곧바로 시선이 가잖아요. 그런데 촬영을 준비하면서 보니까 라인에 여러 색이 들어가 있고, 단추도 너무 예쁜 거예요. 여성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인데 또 재킷과 팬츠 세트업이다 보니 샤넬 특유의 ‘쿨’함이 생기는 것 같아 이 룩이 너무 좋았어요. 평소 입기 힘든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정말 즐겁게 이야기를 하네요(웃음). 백상예술대상 신인여우상 후보로 처음 레드 카펫에 섰을 때 무척 긴장했던 에피소드가 유명하죠. 해외 행사에 참석하는 건 떨리지 않나요
그 긴장의 원인을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정말 세계 각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잖아요. 저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지 못하지만, 저를 초대해 준 곳은 주목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좋은 모습으로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긴장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상상해요. 나는 지금 화보 촬영 중이고, 여기는 야외 로케이션이라고(웃음).

체크 패턴의 옐로 트위드 재킷과 팬츠, 옐로 실크 타프타 셔츠, 블랙 벨벳 샌들은 모두 Chanel.
작품 밖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기도 합니다. 〈무빙〉 공개 당시 류승룡 배우와 함께 출연했던 유일한 웹 예능 프로그램 〈살롱드립2〉는 조회 수가 500만 회에 달하죠. 유튜브는 즐겨 보나요
요즘 〈디바마을 퀸가비〉를 즐겨보는데요. 가비님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요. 승헌쓰, 리얼가이즈 다 좋아해요. ‘패리스 은지 튼튼’ 이은지 님과 나영석 PD님, 퀸가비 세 분이 했던 라이브 혹시 보셨나요? 2시간 가까운 영상인데, 정말 거를 게 없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 첫 예능 프로그램 촬영도 했어요. 그렇게 카메라가 많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서 뭐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는 채로 끝났지만 기대됩니다.

레이스 디테일이 돋보이는 재킷과 진주 네크리스는 모두 Chanel.
촬영장 풍경이나 작품 속 한 장면처럼 어린 시절의 장면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대 중반 독립하기 전까지 한집에 쭉 살았어요. 그래서 집 앞에 공원이 생기던 순간부터 그 변화 과정을 다 지켜봤죠. 느티나무만 있는 공터였던 시절부터 놀이터가 생기고 발을 구르면 모래가 일어나던 흙바닥이 어느 순간 폭신한 우레탄으로 바뀐 것까지 기억이 나요. 부모님은 여전히 그 동네에 살기 때문에 그곳이 제 동네 같아요.
그 공원 앞을 매일 걸어가는 어린 시절의 고윤정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했을까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여름만 되면 〈커피프린스 1호점〉을 다시 봐요. 몇 년 전까지는 그 안의 인물이나 작품 자체가 좋았다면, 이제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여름이 소환되는 느낌이라 습관처럼 보게 돼요. 올해도 볼 예정이죠.

핑크 실크 크레이프 드레스와 메탈 장식이 있는 와이드 벨트, 네크리스는 모두 Chanel.
그렇다면 요즘의 고윤정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요? 끌리는 이유도 생각해 봤는지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해서 보는 이야기보다는 코미디 요소가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최근에 많이 이야기하는 작품은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지만요. 원 테이크로 찍은 작품이라는 걸 듣고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배우들 연기도, 촬영도, 에피소드마다 시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까지 너무 좋았어요. 다수가 하지 않는 시도를 할 때는 분명 장단점이 있을 텐데 도전한 것도 존경스러웠죠. 저도 이런 촬영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슬리브리스 니트 톱과 레이스 실크 스커트, 리본 헤어핀, 진주 네크리스와 양손에 착용한 로고 브레이슬릿은 모두 Chanel.
그런 마음이 든 이유는 뭘까요? 쉬운 도전은 아닐 텐데요
촬영 기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작품이면 연극처럼 리허설이나 함께 모여서 충분히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각자 캐릭터를 연습하고 준비해서 만나다 보니 함께 동선과 아이디어를 짜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경험에 대한 부러움과 갈증이 있어요. 일할수록 그런 갈증이 커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 부족한 게 보일 때 그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데, 내가 못 해본 경험이 그 이유는 아닌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보석 단추와 정교한 브레이드 장식이 돋보이는 레이스 재킷과 팬츠, 네크리스는 모두 Chanel.
그 모든 불안감과 의심은 연기를 잘하고 싶기 때문에 생기는 거겠죠. 하지만 배우는 또 ‘슛’ 들어가는 순간 자기확신이 가장 필요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긴 습관인데, 매니저님이 항상 그날 촬영한 모니터를 찍어서 보내주세요. 다양하게 촬영된 제 모습을 자기 전에 쭉 보고 자요. 그럼 오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연기해서 이런 모습이 나온 건지도 떠오르고, 적어도 내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어제보다는 잘하자!’ 항상 그런 마음입니다.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군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가 제일 궁금해요. 당신들 눈에 내가 잘하고 있는지, 별로라면 어떤 부분이 별로인지 묻고 싶어요. 어떤 답을 듣게 될지는 두렵지 않아요. 전 근거 있는 비판은 정말 귀하게 생각하거든요.

실크 모슬린 케이프와 체크 트위드 튤 드레스, 실크 드레스, 로고 이어링, 메리 제인 슈즈는 모두 Chanel.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덜 자유롭기도 해요. 그래도 고윤정은 슬기로운 배우가 되고 싶나요
그럼요! 연기력은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연기만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대화할 때나 행동 하나하나를 봤을 때 닮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선배님들처럼 ‘저 사람 괜찮더라’ ‘저 배우랑 현장에 있으면 되게 재미있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슬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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