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모습.
에이티즈산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낭만은?”이라고 물었을 때 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사실 낭만은 별게 아닙니다. 그리고 낭만에 낭비란 없죠. 제게 낭만은 바쁘게 흘러가는 순간에 ‘굳이’라는 말이 붙을 만한 일도 꿋꿋이 섬세하게 해내는 거예요.” 최산의 말을 떠올리며 바쁜 마감을 일단 뒤로 하고 ‘굳이’ 컨버터블의 루프를 열어젖힌 채 강원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낭만을 찾으러. 낭만에 낭비란 없다고 했으니 마음껏 소비하리라 마음먹고!
이 여정을 함께 한 주인공은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트로페오. 고성능의 스포츠카 그란투리스모를 기반으로 하는 4인승 컨버터블 모델이다. 사실 컨버터블에 대한 로망을 품어온 나로서는 이번 여행을 아주 기대했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기다란 보닛, 쿨 하게 활짝 열리는 루프, 투도어가 주는 압도감. 거기에다 ‘와르릉’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만큼 쌩 질주하겠지? 왠지 모르게 컨버터블의 이런 구석들이 나를 유혹해왔다. 그란카브리오의 긴 보닛과 4개의 펜더가 교차하는 차체와 유려한 비율, 마세라티의 고유한 자태가 그대로 묻어난 디자인이다. 여기에 고성능 버전인 ‘트로페오’ 단일 트림이 추가됐다. 역삼동 한복판에서 마주한 차는 짙은 흑색에 그 분위기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일단 차와 친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만졌다.

새빨간 타공 가죽 시트가 돋보이는 실내. 클래식한 감성과 디지털의 혁신이 하나로 모인 디자인.
실내는 외관만큼이나 감각적. ‘대조적 요소들의 균형(Balance of the Opposites)’이라는 디자인 철학 아래, 클래식한 감성과 디지털의 혁신이 하나로 녹아 있었다.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와 8.8인치 컴포트 스크린은 심플하게 배치돼 시선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인 조작을 가능케 했다. 특히 스티어링 휠 중앙에 자리 잡은 시동 버튼과 주행 모드 셀렉터는 본격적인 드라이빙을 시작할 나를 위해 존재감을 발했다. 새빨간 타공 가죽 시트와 브러시드 알루미늄 패들 쉬프트, 그리고 다양한 컬러로 분위기를 바꾸는 앰비언트 라이트까지. 이 차의 실내는 단순히 ‘탈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무드 공간 같았다.
강남대로를 달리며 첫 호흡을 맞췄다. 빽빽한 도심 속에서도 그란카브리오는 인상적이었다. 정체된 교통 흐름에선 우주선처럼 조용히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가속이 필요한 찰나에는 550 마력의 힘을 감추지 않았다. V6 네튜노트윈터보 엔진의 반응성은 낮은 RPM에서도 민첩했고, F1 경주차에 탄 듯 막힘 없는 시프트로 나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시선을 끄는 외관만큼이나, 도심에서의 승차감은 고급 세단처럼 부드러웠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GT, 스포츠, 코르사 모드로, 다양하게 변주를 주어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다 비로소 고속도로로 진입한 순간, 차는 마치 숨겨뒀던 본색을 드러내듯 변했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후 진입로에서 엑셀러레이터를 깊게 밟는 순간, 억눌려 있던 출력이 터져 나왔다. 굵고 낮은 배기음이 울려 펴졌고, 시트 아래에서 진동이 뚜렷하게 전해졌다. 속도계는 순식간에 올라가고, 도심의 점잖은 얼굴은 어느새 사라졌다.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고, 바람은 창문 너머가 아닌 얼굴 위로 직접 스쳐 갔다. 스포츠 다음 단계인 코르사 모드는 보다 더 역동적이고 과감한 드라이빙을 위한 것. 아무튼 이 차는 속도를 낭비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느덧 두 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달렸더니, 다급한 듯 대시보드에 커피 아이콘이 떠올랐다. 나의 눈 깜빡임 횟수를 세어 한계에 다다르면 ‘쉬었다 가라’는 문구와 함께 뜨는 알람이다. 정말 귀여운 구석이다! 내가 졸릴까 봐 걱정돼서 그토록 시끄럽게 울어 댄 것. 하지만 난 쉬지 않겠어. 이토록 고속도로를 내달려 어떻게든 양양에 빨리 도착하려 한 이유는 강원도 향토 음식인뚜거리탕을 먹기 위해서다. 뚜거리탕 맛집인 ‘천선식당’으로 달렸다.
그란카브리오의 진가는 속도를 높일수록 분명해졌다. 시속 150km를 넘어서면서도 차량은 바람을 유려하게 가르고 나아갔다. 헤드레스트에 내장된 넥워머가 목 뒤를 포근히 감싸주고, 바람의 저항은 윈드 스토퍼 덕분에 실내로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컨버터블이 지닌 고질적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차는 단순한 ‘오픈카’가 아닌, 마세라티가 해석한 새로운 주행 철학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고성능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강한 엔진음은 감성을 자극했고, 그란카브리오가 뿜어내는 낮고 굵은 ‘와르릉’은 드라이빙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사실 ‘양양’이라는 목적지는 이 차를 타고 가기엔 너무 순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바람 부는 해변과 질주하는 그란카브리오의 조합은 뜻밖에도 완벽했다! 동해를 옆에 두고 달리는 구간에서는 루프를 개방한 채로 음악을 크게 틀었다. 대시보드에 그란카브리오 이미지 아래 화살표를 지그시 누르면 루프가 슬그머니 개방되기 시작한다. ‘헤이 마세라티’라고 부르자, 내 말에 반응한 음성 비서가 사운드를 조정하고, 시트 위치를 살짝 바꿔줬다. 마치 비서를 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주변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이 차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양양 해변에 도착했을 때, 모래에 발을 담그기도 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란카브리오의 독특한 실루엣과 부메랑을 닮은 LED 테일램프는 주목받기에 충분했던 것. 루프를 닫았을 때는 쿠페처럼 단단한 인상을 주고, 열렸을 때는 이탈리아 감성이 흠뻑 느껴졌다. 네로 아쏠루토(Nero Assoluto) 컬러의 외장과 소프트탑은 그 조합만으로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첫째 날 저녁은 양양 현지인들 사이에서 ‘원픽’이라 불리는, 앞서 언급한 뚜거리탕으로 따끈하게 마무리. 거친 드라이브 끝에 맛보는 이 투박한 국물 한 그릇은 몸 안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걷어내 주었다. 텐션 높았던 스포츠 모드에서 슬쩍 컴포트 모드로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은은하게 반짝이는 외장과 부드럽게 천으로 감싼 소프트 톱이 인상적이다.
숙소는 양양 해변 바로 앞, 파도가 발아래까지 들리는 곳이었다. 차의 굉음 대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든 밤은 묘하게 낯설면서도 평온했다. 둘째 날에는 속초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소소한 관광객의 삶도 잠깐 체험했다. 점심은 매콤한 형제냉면으로, 저녁은 숙소에서 조촐하게 요리를 해 먹으며 휴식에 집중도 하고. 마세라티의 넥워머가 몸을 감싸던 첫째 날의 감각이, 둘째 날엔 따뜻한 수프와 손으로 휘젓던 국자에서 이어졌다. 다시 떠나는 셋째 날 아침, 속초와 양양 사이에 있는 감나무식당에 들렀다. 진한 육수의 황태해장국 한 그릇은 깊고 묵직했다. 이 묵직함을 안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 그냥 곧장 올라가긴 아쉬워 춘천에 들러 닭갈비까지 챙겨 먹었다. 소나기처럼 확 퍼붓는 양념과 철판 위에 지글거리는 닭고기. 순간 다시 스포츠 모드를 켠 듯, 몸과 마음이 동시에 깨어났다. 컨버터블의 루프를 열고 닭갈빗집을 나서던 그 순간이 이 여정의 마지막 낭만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용산의 네온 아래 그란카브리오를 세워 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는 일상과 비일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기계다. 루프를 닫으면 현실로 돌아오고, 열면 다시 상상 속으로 진입하는 느낌. 컨버터블은 결국 낭비가 아닌 여백이고, 그 여백 덕분에 삶은 풍요로워진다. 최산이 말했듯, 낭만에 낭비란 없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트로페오, 이 차는 그 말을 직접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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