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봄 윈도 디스플레이에 〈숲과 대화들〉을 선보인 작가 전현선.
특유의 스케일 때문일까. 전현선의 회화에선 언제나 몰입감이 느껴진다. 그런 작업이 쇼윈도라는 프레임에 들어서니 새롭다. 윈도 전시라는 독특한 배경에 접근한 방식은
초기 아이디어를 스케치할 때는 평면 작업에 집중하던 내 방식대로 깊이가 1m 남짓 되는 쇼윈도 공간을 자꾸 평면화했다. 주어진 공간에 레이어를 주기 위해 더욱 다양한 요소를 상상하려 했다. 한편 나는 평면 그림을 그리지만, 이걸 약간의 부조처럼 여겨 왔기에 이번 전시가 마치 부조처럼 한정된 깊이가 있는 구조로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숲은 전현선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배경이다.
예술가란 세상을 달리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숲은 당신에게 작업적 근원이 된 모티프이고, 이번에도 숲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현선에게 숲이란 무엇인가
내 작업은 어린 시절에 접한 고전 동화에 기반을 두곤 한다. 동화 속 서사는 보통 주인공들이 집을 떠나 숲으로 모험에 나서면서 시작된다. 결국 모험을 통해 성장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런 구성이 좋아서 이번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도 화가인 화자가 집 밖으로, 숲속으로 나가 영감을 얻고 다시 돌아오는, 안과 밖을 오가는 형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숲은 레이어가 풍부하고, 예상치 못한 경험과 맞닥뜨릴 수 있는 장소다. 사실 나는 도시에서 자랐다. 그래서 더욱 ‘이야기 속 숲’이라는 배경을 골똘히 생각해 온 것 같다. 나에겐 숲 자체가 주는 힘, 자유로움, 뭐든 가능한 배경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숲은 전현선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배경이다.
덕분에 도산공원 일대가 일찍 푸른 봄을 맞았다. 녹색 역시 작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요소다
녹색으로 뭘 그린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쾌감이 크다. 뭐든 그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된다. 많은 것이 떠오르고, 굳이 애써서 만들어내지 않아도 자유롭게 나온다.

나무가 무성하고, 어떤 대상과 마주칠지 모르는 숲은 그 자체로 화가에게 영감이 된다.
여러 개의 윈도 디스플레이로 구현한 시퀀스에 화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본인의 자전적 삶을 표현했다. 본인의 어떤 면이 녹아 있나
나도 언제나 안과 밖을 오가는 사람이다. 딱히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내 바운더리 안팎을 오가며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고, 그렇게 축적된 경험은 체화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유화가 아닌 수채물감 혹은 아크릴물감을 쓰고, 별다른 밑그림 없이 빠른 붓질로 작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안다. 완성된 작품에선 붓이 지나간 자리도 볼 수 있는데
나는 MBTI 유형 중 N이 아니라 S인 사람이다. 머릿속에서 상상을 많이 하기보다 뭔가 떠오르면 이게 눈앞에 빨리 구현되길 바란다. 놓칠 것 같고, 흘러가버리는 생각이 될까 봐. 머릿속에 떠올리고 조합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줄이고 아주 조그만 단상, 단편적 생각을 재빨리 그린 다음 현실에서 풍부하게 만들고 싶은 거다. 생각 속에서 너무 완벽해지면 재미가 없고, 이것저것 자세히 볼 게 너무 많아서 전체를 읽는 게 어렵다. 미대 입시를 준비할 때 석고상을 그리려면 머리카락 한 올부터 그렸다.

1m의 깊이감을 가진 쇼윈도 공간을 위해 평면 회화와 입체물을 함께 그렸다.
한국의 입시미술 교육 시스템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였겠다
보통 전체부터 구상해야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으니까. 작업 속도가 빨라진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부분부터 그리되, 빨리 그려서 완성해야 하니까.

부피를 지닌 그림으로 완성된 고양이 등 전현선의 회화 작업이 에르메스의 일상 사물과 조화를 이루는 장면.
그렇다면 이번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 그린 것은
이젤이다. 작업을 시작할 땐 막연했다. 그러다 에르메스 홈페이지에서 제품을 보는데, 아름답더라. 작품 같고 완벽한 오브제들이 내 회화 요소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뭘 그려야 할지 두려울 때면 이젤을 그린다. 그럼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젤을 그린 다음에는 주변의 숲을 만들었다. 레이어가 많은 숲속에서는 뭔가 불쑥 등장하고, 숨어 있고, 어떤 것은 빠르게 뛰어나와 도망가 버려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제주에 1년째 살고 있다. 그곳에선 더 많은 숲을 그리게 되나
자연을 그리는 이유는 자연과 도시적이고 인위적인 요소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하는 것, 이질적 요소가 낯설게 조화를 이루는 상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울에서 자연적 요소를 더 많이 그렸다. 제주도에 살면 검은 돌, 섬의 나무들, 육지와는 다르게 펼쳐지는 자연 요소를 따라 내 그림도 변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온통 자연인 환경에 살게 되니 더 기하학적 그림을 그리게 되더라. 그림이라는 건 결국 결핍에서 오는 것인지.

전현선은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쇼윈도 속 화가는 말을 산책시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말이 그를 산책시키는 것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화가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시간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갈구하니까
도시에 살 때와 비교하면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다. 제주 중산간 지역에 집이 있는데, 밖을 내다보면 저 멀리 바다의 끝인 수평선과 아주 가까이 있는 이끼들, 작은 생명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주 먼 것과 너무나도 가깝고 구체적으로 보이는 요소 사이의 거리감이 확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평면에 무엇인가를 평평하게 구사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감각과 맞닿아 있다. 내가 담고 싶은 것은 헷갈리고 혼동되는 화면과 상황, 그 자체다. 내 그림에는 계속해서 이것과 저것의 사이사이, 해상도가 낮은 부분과 고해상도의 아주 선명하고 구체적인 부분, 먼 부분과 가까운 부분이 공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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