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제네시스 흰색 ‘GV70’이 바닥에 매립 설치된 카메라 위를 쓱 지나가자 근처 모니터 화면에 차량 하부 사진이 선명하게 찍혔다. 다시 카메라 위를 지나자 이번에는 타이어 네 개 각각의 상태가 모니터에 숫자로 표시됐다. 이후 냄새 측정기로 차량 내부를 검사하던 중 ‘19’라는 숫자가 떴다. 검수자는 “기준치인 20을 밑돌면 판매 가능한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석 시트를 고해상도로 촬영한 뒤 사진을 확대·축소해가며 상태를 살필 수 있고, 20초간 엔진 소리도 녹음해 들을 수 있다.
19일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전용 상품화센터’에서 이뤄진 일이다. 인증 중고차란 제조사가 직접 자사 브랜드 중고차를 매입해 차량 상태를 확인한 뒤 정비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3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위원회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대기업도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2020년 10월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지 3년 만인 24일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고 이날 밝혔다. 기아도 25일 서비스 개시를 알리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자사 브랜드 차량 중 ‘연식 5년, 주행 거리 10만 km’ 이내의 차량을 대상으로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운영한다. 사고 기록이 있는 차량이나 침수차도 제외했다. 이른바 ‘A급 중고차’만 취급하겠다는 얘기다. 유원하 현대차 아시아대권역장(부사장)은 “만든 사람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철학 아래 사업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덤터기’ 없는 중고차 거래문화 안착에 기여하겠단 의지다.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매입 중고차를 양산과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센터에서 상품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한 뒤 판매에 나선다. 현대차는 272개, 제네시스는 287개 항목을 점검한다. 기계로 차량을 완전히 들어 올려 하부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흠집이나 도장이 벗겨진 곳도 확인 후 조치한다. 배터리, 브레이크 패드, 타이어 등은 상태에 따라 교체한다.
100% 온라인 판매로 진행돼 실물을 못 보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차량의 냄새 수치, 차량 하부 사진, 타이어 상태, 운전석 시트 정밀 사진, 엔진 소리 등을 모두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량의 내외부를 360도 가상현실(VR) 카메라로 촬영해 온라인에서도 차량의 전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막상 차를 받아본 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띈다면 3일 내 왕복 탁송비만 내고 환불받을 수 있다. 구매 후 4∼7일 사이에는 차량 사용료 등을 추가 지불한 뒤 환불 가능하다. 구매 후 1년, 2만 km까지 무상 보증도 제공된다.
현대차는 연말까지 인증 중고차 판매 5000대를 목표로 잡았다. 2025년 4월까지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중고차 시장 점유율 4.1%, 2.9%를 목표로 점진적으로 몸집을 키울 계획이다.
다만 가격이 걸림돌이 될 수는 있다. 다른 중고차 플랫폼에서 파는 차량과 모델, 옵션, 연식, 차 상태가 비슷한데 인증 중고차가 확연히 비싸면 소비자들이 망설일 수 있어서다.
양산=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