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최근 자국 전기차 기업에 중국산 부품만 사용하라는 내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또다시 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중국 당국의 전기차 업체 지원을 문제 삼아 관련 규제에 나서자 이에 맞대응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조치가 나올 때마다 중국 시장이 ‘외산 무덤’으로 변해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일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계 브랜드의 중국 시장 판매량은 848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1.2% 늘었다. 시장 점유율은 54.2%로 작년 같은 기간의 47.7%보다 6.5%포인트 올라섰다. 당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자국 시장 점유율의 과반을 확보한 것이다. 중국계 브랜드의 지난해 연간 시장점유율은 49.9%였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독일 폭스바겐과 일본 도요타 등 글로벌 수입차 브랜드들이 40여 년간 주도해 왔다. 중국 업체들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생산라인을 빠르게 확대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중국계 브랜드 점유율이 50%를 돌파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변화를 이끄는 건 현지 전기차 브랜드들이다. 올해 8월까지 중국 신에너지차(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의 현지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늘어난 464만7000대로 집계됐다. 이 중 40% 이상을 비야디(BYD)를 비롯한 토종 브랜드가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승용차연석회의(CPCA)는 지난해 연간 내수 신에너지차(승용) 소매 판매량에서 중국 브랜드의 비중을 47.2%로 집계했다. 미국 경영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스티븐 다이어 아시아 총괄은 “중국 현지 기업들은 2030년까지 내수 시장 65%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연간 2356만 대의 승용차가 판매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이런 시장이 점차 해외 기업에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독일계와 일본계 브랜드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각각 2019년 24.2%, 22.7%에서 올해 1∼8월 18.7%, 14.5%로 떨어졌다.
특히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전기차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에 밀리고 있다. 폭스바겐은 올해 상반기(1∼6월)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10.2%로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신에너지차로 시장 범위를 좁히면 점유율은 7.2%로, 순위도 3위까지 떨어진다. 이 부문 1위인 비야디(21.4%)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올해 1∼8월 합산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동일한 1.6%다. 한때 연간 판매량 200만 대를 목표로 삼았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4만 대 판매에 그쳤고, 올해도 30만 대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아가 지난달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5’를 중국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중국에서 재도약하겠다는 의지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근거로 언급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가격 경쟁력만 앞서던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전환기에 기술력까지 갖춰 가면서 현지에 불고 있는 ‘애국 소비’ 열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며 “한국 업체를 비롯한 수입차 업체들은 결국 고급화 전략으로 활로를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