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시속 80km’까지 달리는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차량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정부와 관련 업계도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관계 법령을 정비하는가 하면 보험 상품까지 출시 준비에 한창이다. 하지만 기술적 완성도와 별개로 실전에서의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연말에 최신 전기차인 ‘EV9 GT 라인’에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출시할 예정이다. 고객들이 742만 원 상당의 ‘HDP(조건부 자율주행) 옵션’을 선택하도록 하는 형태다. 미국 테슬라는 현재 레벨 2∼2.5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혼다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레벨3 차량을 출시한 적이 있지만 시속 60km까지만 가능했다. 기아는 고속도로 주행을 염두에 두고 자율주행을 할 때 시속 80km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레벨3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등의 특정 구간에서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말한다. 악천후 등의 비상 상황에서는 운전자 개입이 필요해 조건부 자율주행이라고도 불린다. 레벨2는 국내법상 핸들에서 손을 떼면 15초 후 경고음이 발생하는데, 레벨3는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된다. 현대자동차도 내년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 ‘G90’에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넣을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레벨3 시대를 대비해 국제 기준에 맞춰 관련법을 정비해놓은 상태다. 자동차관리법의 하위 법령인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과 자동차 보험에 대한 내용이 담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각각 레벨3 자율주행차에 대한 안전 및 보상 규정이 마련돼 있다. 해당 법령에 따르면 레벨3 자율주행차 제조사들은 차량 내부에 자율주행정보기록장치(DSSAD)를 설치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자율주행 시스템이 작동 중이었는지, 운전자가 가속·제동 페달을 조작했는지, 운전자가 자리를 이탈한 것은 아닌지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항공기 ‘블랙박스’와 같은 개념이다. 이 기록을 토대로 국토부에 설치된 ‘자율주행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을 분석하게 된다.
보험사들도 관련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일단 피해자에 대한 보상 비용을 지불하고 나중에 사고 원인이 자율주행 오류 때문으로 결론이 나면 차량 제조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의 상품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사별로 레벨3 자율주행차가 출시되면 곧바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을 준비해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해온 테슬라도 주변 차량이나 장애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레벨3 차량 근처서 운전하다가 괜히 사고를 당할까 무섭다”는 반응이 벌써 나온다.
한편으로는 DSSAD에 대해서도 사고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내열성’이나 ‘내수성’에 대한 국제 기준은 아직 없다. 이에 따라 EV9 GT 라인과 G90은 이 장치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차량 뒤쪽 트렁크에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여러 방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기록장치가 무사한지 자기인증적합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문제는 화재가 발생하거나 차량이 물에 빠졌을 때를 대비한 규정은 아직 없다는 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벨3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의 내수성, 내열성과 관련해서도 국제 기준이 마련되면 이에 대해 관련 규정을 신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