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쿄 골목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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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은 편안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쿄에 갔다. 일정 중 하루 여유가 있어 골목을 걸었다. 걷는 동안 깨달은 게 있다. 불법 주차가 없다는 사실. 초행의 도보 여행자에게 일종의 감동이었다. 걸리적거리는 차가 없으니 걷기 수월했고 작은 식당과 가게, 주택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자전거조차 건물 벽에 바짝 붙여 세워 놓았다. 

일행에게 들으니 도쿄뿐 아니라 일본엔 불법 주차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 중인데, 차를 살 때 거주지 인근에 주차장을 확보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차량등록증을 받을 수 있다. 도쿄는 ‘주차비 몇 년이면 차가 한 대’란 말이 있을 만큼 주차비가 비싼데, 심지어 자전거에도 주차비를 물린다. 자전거 주차료는 한 달 5만 원 정도. 불법 주차 과태료도 엄청나다. 최소 12만 원 이상으로 우리의 세 배가 넘고 단속도 철저하다.

아파트에 살아도 주차 면이 부족하면 추첨을 통해 결정하는데, 떨어지면 인근 주차장을 유료로 사용해야 한다. 도쿄 골목마다 크고 작은 주차장이 빼곡한 이유다. 동그란 돌출 간판에 ‘滿’ 또는 ‘空’ 글자가 붉고 푸른 사인으로 표시돼 직관적으로 주차 상황을 알아볼 수 있게 해놨다. 주차장 아니면 차를 세울 수 없도록 강력히 규제하고, 주민 편의를 위한 주차환경을 제대로 정비해 놓은 것이다.

시행 초기에는 서민 부담이 과중하고 자동차 판매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불만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도쿄 어디서도 불법주차로 인한 난삽한 풍경은 보기 어렵다. 제도가 문화로 자리잡은 모범 사례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끈질기게 기다려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건널목뿐만 아니라 주차장 출입구에서 보행자가 길게 줄지어 지나가도 아무도 경적을 울리거나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한 보행자 우선이 몸에 밴 듯했다. 인성이 좋아서, 제도가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습화된 문화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일본인은 자녀에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옷깃만 스쳐도 “스미마셍”이 튀어나온다. 골목 불법 주차가 사라진 것이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집단 의식의 산물인지, 아니면 강력하게 시행한 제도의 결과인지 판단하긴 어렵다.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일본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다른 일본어, ‘유도리(ゆとり)’가 생각난다. 융통성이나 신축성, 여유 등의 의미인데, 우리는 흔히 ‘그때그때 형편과 상황을 보아가며 적당히 일을 처리하는 것’ 정도로 사용한다. 우리가 겪는 많은 참혹한 상황 대부분은 ‘유도리’를 용인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특히 안전과 관련된 것들. 적당히 ‘유도리 있게’ 넘긴 일들이 일으킨 끔찍한 재앙을 우린 똑똑히 보았다.

이쯤에서 한창 논란인 ‘우회전 일시정지’가 겹친다. 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경찰과 시민이 길에서 언쟁을 벌인다. 규칙은 지키고 어기면 처벌하면 되는데 왜일까. 기본을 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정지선에서는 일단 멈춘다(일단정지, 우선멈춤이라고 써 있다). 사람이 지나면 멈춘다(당연하다)…. 너무도 기본적 소양 아닌가.

배려는 아름답지만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법과 질서는 강제가 필요하다. 준법에는 이견이 없다. 시승을 위해 미국과 유럽에 가면 사전에 반드시 듣는 엄정한 주의사항이 있다.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 범칙금과 처벌이 무시무시하다. 그러고보면 선진 교통문화를 자랑하는 나라에 처벌이 엄정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문화는 오래 걸린다. 그리하여 편안하고 한가롭게 거저 만들어지는 게 아님을, 편안하고 한가로운 골목을 걸으며 새삼 떠올렸다.

글·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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