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0년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 생산 현장을 방문했다. 중국과 러시아 시장에서 질주를 멈춘 현대차그룹이 최대 생산기지로 떠오른 인도를 중심으로 글로벌 신흥시장 전략의 새판 짜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전날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인도기술연구소를 방문한 데 이어 이날에는 첸나이 현대차 인도 공장을 찾았다. 정 회장은 장재훈 현대차 사장, 김언수 인도아중동대권역장(부사장) 등과 함께 생산시설을 살피며 인도에서의 중장기 전략을 긴밀하게 논의했다. 특히 첸나이 공장 방문을 앞두고는 타밀나두주 정부 청사에서 M K 스탈린 타밀나두주 총리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현대차그룹에 인도는 나날이 중요해지는 시장이다. 올 4월 유엔인구기금(UNFPA)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세계 최대 인구 국가(14억2860만 명) 등극을 인정받은 인도는 자동차 산업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꾸준한 경제 성장 덕분에 일반 대중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인도의 연간 내수 시장이 476만 대 규모로 커졌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 시장이다. 이 중 380만 대 규모인 승용차 판매는 2030년 5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1998년 첸나이 공장을 짓고 일찍부터 공들여 왔다. 정 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수차례 인도를 방문하며 신경을 썼다. 지금도 첸나이 공장 사무실 복도에는 정 명예회장이 2015년 서울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악수를 나눈 사진이 크게 붙어 있다. 정 회장도 현대차그룹의 수장이 된 후 첫 인도 방문에서 현지 주요 시설을 꼼꼼히 둘러보며 현장을 챙겼다.
인도는 현대차가 운영하는 해외 생산기지 중 가장 많은 차량을 생산하는 곳이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지난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중국과 러시아 양 시장이 한꺼번에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인도는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인도 현대차와 기아 공장에서는 지난해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생산기지 중 가장 많은 104만 대(도매 기준)를 판매했다.
인도 내수 승용차 시장에서는 올 1∼7월 현대차가 34만6711대를 판매해 2위, 기아는 15만6110대로 5위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9%, 8.5% 성장했다. 올해 판매 목표는 지난해보다 8.2% 많은 87만3000대다.
이번에 정 회장이 찾은 인도기술연구소는 전기차 전환 시대를 맞아 주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 전기차 시장은 2030년까지 전체 차량 판매량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 인도기술연구소는 이미 인도 현지를 겨냥한 소형 전기차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인도 현지어 음성인식 기술 개발 등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연구 중추로서의 역할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시운전해 볼 신규 시험 시설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인도 전기차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의 입지를 빠르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상품성을 갖춘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인도기술연구소가 인도 시장에서의 현대차그룹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