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서울 강남구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복원한 현대차의 첫 번째 콘셉트카(개발 방향성을 담은 시제차) ‘포니 쿠페’를 비롯해 포니 왜건, 포니2 픽업 등의 차들, 포니 쿠페 디자인과 생산 관련 정보를 담은 각종 사료 등을 볼 수 있죠.
소비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습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전시장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9일부터 14일까지 4735명, 하루 평균 약 790명이 찾았다고 하죠.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 ‘가이드투어’는 매진된 날이 상당수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포니를 향한 사람들의 향수가 예상보다 큰 것 같다”고 합니다.
‘포니의 시간’의 중심에는 ‘포니 쿠페’가 있습니다.
포니 쿠페는 현대차가 1974년 선보인 최초의 콘셉트카입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문은 2개이고, 자동차 지붕이 뒤쪽에서 날렵하게 떨어지는 쿠페형 스타일입니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됐죠. 선진국에 수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차량입니다.
다만 현대차는 2도어 대신 4도어 세단 형태를 우선 생산하기로 하고 1975년 첫 번째 고유 모델 포니 양산에 돌입합니다. 1976년 2월부터 소비자들은 포니를 몰고 다니게 됐죠.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실됩니다. 토리노 모터쇼 이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 거죠. 이탈리아에 그대로 남았는지, 한국으로 들여오기는 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더군다나 2도어 포니 쿠페는 양산 직전까지 추진됐으나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기 침체, 경영 환경 악화 등의 이유로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죠.
한편 현대차는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 4도어 세단(당시 명칭은 포니 살룬)도 함께 출품했는데요. 이 차량은 양산 조건을 상당수 맞춘 시험 제작 차량(프로토타입)으로 콘셉트카와 구분된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입니다. 이 차량 역시 현재 보관되어 있지 않다고 하네요.
이처럼 포니 쿠페에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합니다. 당시 포니 쿠페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의 전설적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자로(86)가 살아 있다는 점도 현대차 입장에서는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포니 쿠페의 외형만 복원하는 게 아니라, 차를 디자인할 때 중시했던 부분과 디자이너의 감성까지도 살려낼 수 있어서일 겁니다.
기자 입장에서 현대차가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한 시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판매 순위를 집계한 결과 처음으로 세계 3위에 올랐습니다. 내연기관차뿐만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좌우할 전기차, 친환경차 판매량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상은 상당한 위치에 올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비해 급성장하다보니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회사의 역사’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는 소홀했죠.
7일 ‘포니의 시간’ 전시회 사전 행사에 참석한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구입할 때 그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함께 봅니다. ‘포니’를 통해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보다 매력적이고 흥미로우며, 감성적인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순위가 떨어졌거나, 위기론이 나오는 시점이었으면 현대차가 이런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행사를 통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콘셉트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콘셉트카는 어떤지 한 번 살펴볼까요.
세계 최초로 콘셉트카를 만든 건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의 브랜드 뷰익입니다. 1938년 제작된 ‘Y-Job’은 GM의 표현대로라면 세계 첫 번째 ‘드림 카’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반영하고 싶은 모든 요소를 제한 없이 마음대로 넣어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양산되던 자동차와 차별화되는 디자인과 미래 기술 등을 대거 적용한 모델이었습니다. 특히 자동차에서 디자인이 갖는 매력을 시장에 인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GM은 이 차를 관리하고 있죠. 때때로 실물을 전시하기도 합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메르세데스벤츠도 브랜드 첫 번째 콘셉트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1969년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벤츠 C111’을 선보였는데요. 이 차는 사실 신형 엔진을 실험하기 위해 제작됐으나, 낮고 날렵한 차체에 오렌지색 색상을 결합한 과감한 디자인 덕분에 소비자들의 흥미가 컸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 독일 등의 자동차 회사들은 일찌감치 콘셉트카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브랜드의 역사 차원에서 관리하고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회사들이 콘셉트카 관리를 전담하는 직원들을 둘 정도입니다. 최근 프랑스 브랜드 푸조는 한국에 전기차 디자인을 반영한 ‘푸조 인셉션 컨셉트’를 들여와 전시했는데요, 이 기간 동안 본사에서 콘셉트카를 전담하는 직원도 한국을 찾아 함께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푸조의 첫 번째 콘셉트카(푸조 Quasar, 1984년 공개) 등 다른 콘셉트카들도 본사 박물관에 잘 보관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콘셉트카는 완성차 업체에도 중요하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한 회사에 소속된 수십, 수백 명의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그린 자동차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채택된 단 하나의 디자인만이 콘셉트카로 제작되고, 양산으로 이어지게 되죠. 한 완성차업체 디자이너의 말입니다. “실제 양산차는 제작과 관련된 각종 법률적 문제들 때문에 초기 디자인과는 많이 달라지고, 현실과 타협한 형태가 되죠. 반면 콘셉트카는 이 같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생각이 많이 반영됩니다. 양산차보다 콘셉트카를 디자이너의 진정한 자식으로 볼 수 있는 거죠.”
다만 최근 완성차업체들은 콘셉트카 제작을 줄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콘셉트카는 수제로 제작되는 만큼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제작 이후에도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모터쇼에 출품하거나 주요 시장에 전시하기 위해 비행기 등으로 운송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손을 막기 위해서도 큰 비용이 소모됩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콘셉트카 제작을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죠. 가뜩이나 오프라인 모터쇼가 위축되면서,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는 콘셉트카를 제작할 이유도 줄어들고 있다고 하네요.
다시 현대차 이야기로 돌아가면, 현대차는 포니 쿠페 콘셉트카 복원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한 차원 강화해나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휴머니즘’을 중심에 두며 기술(독일), 효율성(일본) 중심의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화도 시도하고 있죠. 콘셉트카와 같은 콘텐츠를 보다 매력적인 회사가 되려는 현대차의 시도가 어떻게 끝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