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 하더니…” 롤스로이스보다 안 팔린 재규어의 슬픈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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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재희 에디터

결국 재규어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 몇 해 전부터 여러 차례 브랜드 철수설이 제기될 때마다 ‘철수는 없다’고 못 박아왔던 재규어이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신차 출시 중단과 그에 따른 판매 부진 등 제기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상황이 악화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재규어 차량은 전국적으로 80여대의 재고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 철수에 따라 해당 모델들의 판매가 완료되면 당분간 신차 판매를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시장에서 재규어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재규어는 지난 5년간 한국 시장에서 총 7561대를 판매했다. 연도별로 2018년에는 3701대로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2019년 2484대 / 2020년 875대 / 2021년 338대로 우하향 하더니, 급기야 지난해에는 163대로 처참한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수억원을 호가하는 람보르기니(403대)와 벤틀리(775대), 롤스로이스(234대)보다 판매량이 낮다. 올해는 1~4월 동안 10대가 판매됐다.

재규어의 판매량이 꾸준히 떨어지는 결정적 이유는 신차 부재에 있다는 분석이다. 품질이나 성능, AS 등 고객 만족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신차가 출시되지 않으면 자동차 브랜드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동일 그룹 내 랜드로버만 보아도 다양한 신차 출시를 통해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규어가 한국 시장에 판매 중인 모델은 중형 세단 XF, 중형 SUV F-PACE, 스포츠카 F-TYPE 등 총 3가지 차량이다. 올해 XF는 사실상 판매 중단되었고 F-페이스는 4대, F-타입은 6대 판매되었다. 현행 F-페이스와 F-타입은 모두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지난 2021년 출시된 것이 전부이다.

독일 3사를 비롯해 캐딜락, 볼보, 렉서스 등 프리미엄 수입차의 신차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재규어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 무엇보다 자동차 디자인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지금,  재규어 특유의 매끄러운 선과 아름다운 실루엣도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만으로 낙담하긴 이르다. 재규어는 전동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동면에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오는 2025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더 나은 도약’을 위해 고급 브랜딩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1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재규어가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되고 훨씬 더 고급스러운 포지셔닝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새로운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더 이상 벤츠-BMW-아우디와의 경쟁이 아닌, 벤틀리-포르쉐 등과 경쟁할 럭셔리 제품군을 출시하겠다는 당시 재규어 CEO 티에리 볼로레의 계획도 언급했었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재규어가 2025년 출시할 전기차 가격대는 약 1억5천만원 수준으로, 주문 생산 예정이며 2~3개 차종으로 판매가 시작된다.

한편 판매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는 재규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볼보에게 수입차 3위를 내주며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아우디가 있다. 이제는 독일 3사라는 말 대신, 독일 2인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우디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물론 아우디의 실적이 재규어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예전만 못한 실적과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1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아우디의 신규 등록 대수는 473대로 전월(2260대) 대비 79.1% 감소했다. 판매 순위는 3위에서 10위로 일곱 계단이나 하락했다.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메르세데스 벤츠가 6176대, BMW가 5836대를 판매해 1, 2위를 차지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아우디는 2만1402대를 판매해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8만976대, BMW 7만8545대 와도 3배 이상 뒤처진다.

베스트셀링카 순위를 비교해도 아우디 존재감은 옅어졌다.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모델 1~10위 중 벤츠가 3개, BMW가 5개를 차지한 반면 아우디는 A6 모델 단 1개로 9위에 머물렀다.

다시 돌아와서 재규어가 선언한 2025년은 코앞이다. 만약 재규어가 전동화 및 럭셔리 브랜드로 이미지를 재설계 한다고 해도, 재규어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고려한다면 과연 성공적일지 의문이 든다. 공백기를 거쳐 호기롭게 돌아왔을 때 이전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재규어에게 주어진 3년여의 시간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 판단은 잠시 보류하겠지만, 브랜드를 재건하기에 터무니없이 짧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재규어는 패자의 핑계로 남지 않고 결과로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늘 내일 하더니…” 롤스로이스보다 안 팔린 재규어의 슬픈 결말 
글 / 다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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