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1∼3월)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린 전기차는 270만2000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2% 늘어났다. 글로벌 10대 브랜드가 모두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을 올린 가운데 한국 현대자동차그룹만 유일하게 판매량이 감소하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4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 비야디(BYD)가 전년 동기 대비 97.0% 증가한 56만6000대를 판매하면서 1위에 올랐다. 2위는 미국 테슬라(42만3000대)로 전년 대비 36.4% 판매량을 늘렸다. 판매량 3위와 5위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지리자동차는 각각 13.1%, 40.6% 성장세를 보였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17.4% 증가한 17만8000대로 4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은 1분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 등의 영향으로 11만9000대를 팔며 7위에 그쳤다. 전년 동기(12만2000대)보다 판매량이 오히려 2.2% 줄었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달리다 지난해 8월 시행된 IRA로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벤츠-아우디 등 전기차 후발주자
“최고급 모델 경쟁자 없다” 자신감
GM, 픽업-SUV 등으로 다양화
포드, 테슬라 이어 가격인하 경쟁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3월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 전 세계 자동차 기자들을 불러 모은 뒤 마이바흐의 첫 전기차를 공개했다.
다니엘 레스코우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글로벌 총괄은 ‘전기차 출시가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고급형 전기차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이라며 “마이바흐 전기차의 경쟁모델은 시장에 없다”고 자신했다.
전통의 자동차 강자인 벤츠는 전기차 시장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존 내연기관의 장점을 살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기차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신차를 100%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개발 총괄 부사장은 “벤츠의 유전자를 그대로 전기차에 이식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전환에 반 박자 늦었다고 평가받던 유럽, 미국 등의 전통 자동차 강자들이 ‘프리미엄’을 앞세워 대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친환경 흐름에서 ‘아이폰 모멘트’(신기술이 일상에 녹아드는 순간)가 찾아온 만큼 자칫 내연기관차의 영광에 안주했다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밑바닥에 깔렸다.
4일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글로벌 순수전기차(EV) 판매량은 지난해 730만 대에서 2025년 1600만 대, 2030년 3100만 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강력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사이 유럽과 미국의 기존 메이저 자동차 기업들도 공세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독일 네카르줄름 아우디 공장인 ‘뵐링거 회페’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전기차 전환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볼프강 샨츠 생산총괄은 “숙련된 인력은 전기차 시대에도 (아우디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인력’을 언급했지만 전기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도 독일 자동차의 경쟁력은 여전할 것이란 의미로 읽혔다. 다른 아우디 관계자도 “자동차 제조 노하우와 장인들이 완성하는 독일산 전기차는 성능과 승차감 등 모든 부분에서 보급형 전기차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독일 폭스바겐은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이란 구호 아래 2030년 유럽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8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BMW는 2026년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기업들의 공격적 전환 배경에는 2021년 유럽연합(EU)이 공개한 ‘핏 포 55(Fit for 55)’ 제도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이 제도에서 PHEV를 내연기관으로 분류하자 기업들이 EV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EU는 또 유럽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만들어 유럽에 생산 설비를 둔 업체들에 유리한 경쟁환경을 만들어줬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를 등에 업고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 혜택을 집중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테슬라는 ‘가격 정책’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미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보한 이상 지금부터는 보급형 모델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가져가겠다는 구상이다. 테슬라는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으로 전기차 생산비를 50% 감축하고 2030년까지 2만5000달러(약 3300만 원) 이하 전기차를 연간 2000만 대 생산할 계획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까지 다양한 전기차를 출시해 소비자 선택 범위를 넓히는 전략을 쓰고 있다. 2월 메리 배라 GM 회장은 “올해는 GM의 제품 라인업을 바탕으로 테슬라와의 격차를 좁히겠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머스탱 마하E’와 ‘F-150 라이트닝’을 앞세워 지난해 2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 포드는 가격 인하 경쟁에 합류했다. 머스탱 마하E의 가격을 올해만 두 번 인하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생산 비용을 2년 전보다 5000달러(약 670만 원) 절감하겠다. 가격을 공격적으로 책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동화로의 변신에 늦을 뻔했던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최근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며 “이들이 출시를 예고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쏟아지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네카르줄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리스본=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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