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전기차인 ‘EQE SUV’는 회사가 얼마나 전기차에 진심인지 느낄 수 있게 하는 모델이다. 벌써 벤츠의 7번째 전기차이다 보니 첨단 기술들을 한껏 접목해 개선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고급 내연기관 세단의 대명사였던 벤츠가 만들면 ‘그냥 전기차’가 아니라 ‘고급진 전기차’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9∼30일(현지 시간) EQE SUV를 타고 포르투갈 해안도로를 누비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DCU라는 기능이었다. DCU는 상황에 따라 4륜 구동과 2륜 구동을 자동으로 선택해준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지 말자는 취지의 기능이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서핑이 유명한 에리세이라로 이동하는 도중에 언덕길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때 저절로 4륜 구동으로 바뀌니 빠르고 힘 있게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평지에서도 2륜으로 달리다 속도를 낼라치면 스스로 4륜으로 바뀌며 가속이 빨리 붙었다. 2륜에서 4륜으로 전환될 때 불필요한 소리 없이 스르륵 바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벤츠 관계자는 “0.2초 만에 빠르게 4륜에서 2륜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운전자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라며 “DCU 덕에 연료소비효율이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초보 전기차 드라이버’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회생제동도 EQE SUV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통 회생제동 모드로 운전 중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빨리 떼면 차가 급정거하곤 한다. 하지만 EQE SUV는 네 가지(D+, D, D―, D오토) 회생제동 모드가 있어서 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 ‘D― 모드’를 적용하면 제동이 제일 심하게 걸리고, ‘D+ 모드’를 활용하면 제동이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걸렸다. 가장 유용했던 것은 ‘D오토’ 모드였다. 상황에 따라 차량이 스스로 제동의 강도를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유독 곡선이 많은 포르투갈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앞차와의 간격이 갑자기 가까워질 때가 있는데 이 경우 회생제동이 더욱 강하게 걸리곤 했다. 주로 ‘D오토’를 해놓고 달리다 보니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제동이 강해지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를 운전할 때와 비교해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EQE SUV는 전기차답게 첨단 공기역학 디자인 기술도 곳곳에 숨겨 놓았다. 바람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적게 받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최대한 늘리기 위한 복안이다. 뒷바퀴 바로 앞에 일종의 바람막이인 ‘에어로 파츠’를 설치해 1회 충전 주행거리를 8km 늘렸다. 문 손잡이도 필요할 때만 튀어 오르는 ‘매몰형’으로 설치해 주행거리가 200∼300m 늘었다. 차량 범퍼 좌우 측에는 각각 바람길을 뚫는 방식으로 공기저항을 낮췄다. 이러한 노력 덕에 EQE SUV의 공기저항계수(CD계수)는 0.25를 기록했다. 차체가 낮아 공기저항 부분에서 유리한 세단 전기차 수준의 공기저항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기록한 것이다. EQE SUV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유럽 기준(WTLP) 460∼596km에 달한다.
벤츠라는 이름값을 하겠다는 듯 곳곳에 배치한 ‘고급화 포인트’도 인상 깊었다. 일단 차량 내부 스피커가 15개에 달해 어느 자리에 앉아도 풍부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EQE SUV만을 위해 히비스커스와 레몬그라스를 조합해 만든 향이 차량 내부에 은은하게 퍼지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외관은 기존 벤츠 전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QE SUV의 전면부에는 벤츠의 상징인 ‘삼각별’을 300개 가까이 수놓은 패널이 설치됐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휠베이스(앞뒤 바퀴 차축 사이의 거리)가 3m를 넘어 좌석이 상당히 넓게 느껴졌다.
국내에는 올해 3분기(7∼9월) 공식 출시된다. 국내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7만9050∼9만6350달러(약 1억400만∼1억3000만 원)로 발표됐다.
리스본=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