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칼럼] 전기 동력 모빌리티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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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일본의 자동차와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그 특징에서 매우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차들이 일본 차와 비슷한 인상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성장의 중요한 과정의 하나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영향을 완전히 극복해 온 과정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최근의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도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관점에서 일본의 성장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글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일본의 과거 성장을 되돌아 보자는 것이지, 그 어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1991년에 미국의 출판사 하퍼 퍼레니얼(Harper Perennial)에서 출간한 책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세상을 바꾼 기계)’는 1980년대부터 미국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일본제 자동차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기 위해 일본 자동차 기업의 생산방식을 면밀하게 분석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도 1990년대에 저 책을 비롯한 많은 자료로 일본 자동차 기업을 분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서두는 1950년 봄부터 일본인 엔지니어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 Toyoda Eiji)가 디트로이트(Detroit) 시에 있는 포드 자동차의 루지(Rouge) 공장에 3개월 동안 머무르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산업과 기술의 보안이 철저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이었던 이때에도 미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 든 간에 외국인 엔지니어를 자국의 공장에 들여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었던 미국이 패전국 일본을 원조하는 기술전수 차원에서 그런 혜택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이용해 일본인 기술자 도요다 에이지는 포드의 루지 공장을 치밀하게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토요타 자동차에 응용하기 위한 생각에 몰두합니다.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은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생산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국력이 절정이었던 전승국 미국과 패전국 일본은 사정이 전혀 달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의 패전국 일본의 내수시장은 빈약했으며,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에 일본에 도입되기 시작한 노동법에 따라 일본 근로자들의 지위는 상당히 강화되기 시작하고 노동운동의 강도도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헨리 포드(Henry Ford)가 추구한 대량생산방식에서 공장의 작업자는 조립라인(assembly line)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차량 부품 조립 작업 자체를 기계로 자동화 시킬 수 없으므로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개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장 관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장에는 혹시 결근할지 모를 작업자를 대신 해줄 잉여 인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포드의 방식은 만약에 조립 도중에 어떤 이유로든 조립 불량이 발생하거나 혹은 앞 공정에서 불량으로 조립된 것을 발견하더라도, 작업자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조립 라인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드 자동차의 조립 라인이 끝나는 곳에 가면, 공정의 어디선가부터 불량의 원인을 가지고 조립이 완료된 ‘불량품 차량’을 손보기 위한 작업자와 작업공간이 별도로 존재하였고, 거기에서는 ‘불량으로 조립된 차량’을 수리하기 위한 인원과 시간이 엄청나게 투입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헨리 포드에게 조립라인 가동 중단은 곧 손실을 의미했기 때문에 라인의 끝에서는 불량품이든 아니든 완성된 차가 굴러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립 라인의 중단을 막기 위해서는 부품의 재고량 역시 충분히 확보되어야 했으며, 재고를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부품의 종류는 단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작업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 내에 주어진 작업을 작업 지시서에 요구된 방법으로 마쳐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도요다 에이지가 보았을 때 불량품은 당장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량품을 고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토요타 자동차’의 조립라인에서는 불량을 발견하면 누구든지 조립 라인의 가동을 즉각 멈출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불량이 발생한 작업에 소속된 작업자와 팀장이 모여 불량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개선’작업을 한 뒤에 라인을 다시 가동시켰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면 당연히 최종 생산 댓수는 포드의 방식보다는 적었지만 추가의 수리가 전혀 필요치 않은, 즉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완성차만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도요다 에이지는 부품의 재고량을 제로(zero)로 유지하고 생산에 필요한 만큼만을 즉시 납품 받을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부품업체를 조립공장으로부터 2시간 이내의 거리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토요타의 차량은 1970년대의 오일 쇼크로 유가가 크게 치솟으면서 소형 승용차로 관심이 모아지면서 오히려 일본 차가 1980년대에 이르러 기술을 가르쳐준 미국 시장을 크게 잠식하게 됩니다. 그 이후 서구의 산업공학이나 경영학계에서는 일본의 생산관리 기법에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본 기업의 방식을 영어로는 JIT(just-in-time) 생산시스템, 또는 적시 관리(適時管理)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무 재고(無在庫; zero inventory) 시스템 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자동차 기업 역시 대부분 JIT 시스템의 개념을 받아들여 우리의 여건에 맞게 재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요다 에이지의 방식은 공장의 변화만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부분들이 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류(物流) 등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 이외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도요다 에이지의 생산방식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작업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인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자동차산업에는 초기에 포드가 정착시키고 발전시킨 것보다 더 유연성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즉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디지털 정보기술과의 결합으로 부품이나 품질관리에서 과거보다 더 유연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메이커의 조립 라인은 외형적인 모습은 컨베이어에 의해 움직이는 포드의 대량생산방식과 비슷해 보이지만, 운영방법에서는 헨리 포드나 도요다 에이지의 방식과는 또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동차 소비 패턴도 결부돼 있으며, 차량의 설계나 생산방식에도 우리의 생활 양식이나 문화, 기술에 대한 태도, 그리고 우리의 디자인 감각을 반영한 요인이 더해져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특징을 발견해 그것을 우리나라의 전기 동력 차량이나 모빌리티 디자인으로 발전시킨다면,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독창적 상품으로 인식될수 있지 않을 까요?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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